[장원섭 교수의 자투리 한국사] 제1화 호남(湖南)이 없으면 조선(朝鮮)도 없다

웅치전투의 영웅, 장렬공(壯烈公) 정담(鄭湛) 장군
기사입력 2023.08.2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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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충무공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3년 7월에 사헌부 지평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현덕승(玄德升)에게 보낸 편지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호남은 국가의 보루이다. 만약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竊想湖南國家之保障 若無湖南是無國家)”라고 썼다. 곡창지대인 호남 사수의 중요성을 지적한 것이다.

 

이처럼 당시 국난을 극복하는 데 호남이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순신 장군이 해전에서 제해권을 장악하고, 전주로 진격하는 일본군을 ‘이치·웅치전투’에서 격퇴한 것이 호남을 지킨 양대 축이었다. 

 

이치·웅치전투는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알려진 한산·행주·진주대첩에 비견될 정도로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있다. 특히 전북 진안고원에서 완주군으로 이어지는 웅치(곰티재)전투는 임진왜란 동안 육지전투의 백미로 꼽힌다. 이 전투에서 영웅적인 활약을 보인 장렬공(壯烈公) 정담(鄭湛) 장군은 바로 우리 고장 울진이 배출한 인물이다. 이런 사실은 우리 울진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필자는 호남의 곡창을 보전함으로써 나라를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웅치전투의 현장을 여러 차례 답사하였다. 특히 최근에는 진안군과 완주군의 학예연구사, 이치·웅치전투기념사업회(두세훈 상임대표)의 도움을 받아 현장에서 당시의 전투 상황을 재구성하기도 했다.

 

필자는 이번 연재를 통하여 웅치전투의 영웅 정담 장군의 활약상을 재조명함으로써 그의 업적을 우리 고장에 널리 알리고, 나아가 만고의 충신을 배출한 충절의 고장 울진의 위상을 높이는 데 작은 보탬이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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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치전투전적지 답사 현장에서

(왼쪽부터 최형근 두목마을 이장, 두세훈 이치·웅치전투기념사업회 상임대표, 필자)


제1화 호남(湖南)이 없으면 조선(朝鮮)도 없다

- 웅치전투의 영웅, 장렬공(壯烈公) 정담(鄭湛) 장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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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곰티재(웅치) 전경. 진안에서 오르는 고개

 

웅치전투의 서막

“탕, 탕…”

쇠붙이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 고함과 처절한 비명 사이로 간간이 들리던 조총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찌는 듯한 8월의 무더위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었다. 이날따라 바람도 불지 않아서 체감온도는 거의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드문드문 우거진 소나무 사이로 우산살처럼 내리쬐는 오후 햇살은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산 아래 전투 상황을 보고받은 김제군수(金堤郡守) 정담(鄭湛)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쉴 새 없이 좌우를 오가면서 군사들을 독려했다. 바람조차 불지 않은 산속의 공기는 후텁지근한 날씨에 갇혀 숨이 막혀 왔다. 두텁게 껴입은 갑옷 사이로 땀은 비 오듯 흘러내렸다. 

 

정담은 골짜기 입구의 제1방어선에서 후퇴한 의병장 황박(黃璞)과 골짜기 중간지점의 제2방어선에서 급히 퇴각한 나주판관(羅州判官) 이복남(李福男)과 함께 산 정상 부근의 진지에서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조총을 앞세운 왜군들이 좁은 골짜기를 따라 새까맣게 산 정상을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조선군의 화살은 거의 동이 났다. 이제는 맨몸으로 부딪히는 수밖에 없다.

 

정담은 칼을 뽑아 들고 좌우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모두 듣거라. 오늘 여기가 우리의 무덤이 될 것이다. 한 놈도 살려두지 말라. 끝까지 싸워 조선 사람의 기개를 보여주자.”

“와아~~”

 

조선 군사들이 정담이 외치는 고함에 숨 가쁘게 정상을 오르던 왜군들이 순간 놀라 주춤했다. 굵은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화살 사이로 총소리와 비명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왜군의 선발대가 정상에 거의 다다랐다. 

 

마침내 더 이상 화살을 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양측의 군사들이 가까워졌다. 순간 호각과 징 소리를 신호로 참호 속과 나무 사이에 숨어있던 조선군들이 함성을 지르며 뛰쳐나왔다. 산 정상 부근에서는 치열한 육박전이 벌어졌다. 조선군은 창을 꼬나들고 용감하게 왜군과 맞섰다. 정담은 소리를 지르며 분주하게 군사들을 독려했다. 종사관 이봉(李葑), 강운(姜運)과 박형길(朴亨吉)이 정담의 좌우에서 그를 그림자처럼 따르며 호위했다. 훗날 웅치전투로 역사에 기록된 곰티재 전투의 서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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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티재 정상으로 오르는 길


왜군의 호남공략

곰티재 정상에서 마지막 전투가 벌어지기 하루 전인 8월 12일(음력 7월 6일) 오후, 안코쿠지 에케이(安国寺恵瓊)가 이끄는 1만여 명의 왜군부대가 진안(鎭安)에서 전주부성(全州府城)으로 진격하기 위해 이곳 곰티재 아래에 도착했다. 정찰 척후병으로부터 조선의 관군과 의병부대가 곰티재를 오르는 좁은 골짜기를 따라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안코쿠지는 먼저 지형 정찰에 나섰다. 

 

사실 곰티재는 별로 높은 고개가 아니다. 그러나 곰티재의 정상으로 오르는 골짜기는 계곡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러므로 지형지물을 잘 이용해서 방어진지를 구축한다면, 소규모의 병력으로 골짜기를 방어하기에 매우 유리한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이미 조총이라는 신무기를 앞세워 여러 전투에서 전공(戰功)을 세운 적이 있는 안코쿠지는 조선군의 동향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총소리 한 방에 겁을 집어먹고 달아나는 조선군을 매번 전투 때마다 익히 보아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안코쿠지는 조총부대를 앞세워 조선군을 정면으로 돌파한다는 작전을 세우고 부하 장수들에게 새벽에 동이 트기 전에 공격을 개시하도록 지시했다. 지형으로 보아 조선군을 따돌리고 골짜기를 따라 산기슭으로 오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노출이 안 되는 동트기 전 새벽 야음을 이용하기로 했다.

 

마침내 8월 13일(음력 7월 7일) 새벽 사방이 밝아오자, 전투준비를 마친 왜군이 전주부로 향하는 곰티재 마을 입구에서 본격적으로 골짜기를 오르기 시작했다. 황박(黃璞)의 의병부대와 오정달이 지휘하는 조선 관군부대는 미리 짜놓은 전략에 따라 마을 입구부터 덕봉리 주막까지 골짜기를 오르는 좁은 산길 양쪽 기슭 100여 미터에 길게 진(陳)을 치고 있었다. 

“타…앙. 탕… 탕…”

 

엄청난 굉음이 고요하던 골짜기의 적막을 깨뜨렸다. 미리 어둠을 이용하여 소리 없이 접근해오던 왜군 선발대가 조총의 사거리 안에 조선군이 들어오자 사격을 신호로 조총을 앞세워 총공격해 왔다. 

 

어둠 속에서 왜군의 동향을 살피던 척후병이 보내는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황박과 오정달은 깜짝 놀랐다. 조총의 위력에 대해서는 익히 소문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한꺼번에 쏘아대는 총소리에 조선군은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 더구나 이들은 대부분 군사훈련 경험이 없는 농민으로 구성된 의병부대였기 때문이었다.

“놀라지 마라. 화살을 쏴라.”

 

황박과 오정달은 바위틈과 나무에 기대어 소리를 질렀다. 화살이 장마철 장대비처럼 왜군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골짜기를 오르던 왜군들이 화살을 맞고 나뒹굴었다. 왜군들은 수적인 우세를 앞세워 조총으로 조준사격을 하면서 계속 밀고 올라왔다. 

 

황박의 의병부대는 화살이 주 무기여서 상대적으로 불리했지만, 좁은 골짜기로 접근해오는 왜군에게는 아주 효과적인 방어무기이기도 했다. 골짜기에는 몸을 숨길만 한 엄폐물이 별로 없었다. 조선군은 숨어서 계속 화살로 조준하면서 쏘았다. 왜군의 피해는 예상보다 훨씬 컸다. 조선의 의병부대쯤이야 하고 얕잡아보고 밀어붙이려던 왜군장수 안코쿠지는 상황이 맘대로 흘러가지 않고 피해가 속출하자 당황했다. 

 

그러나 왜군은 병력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 세동리를 지나 곰티재가 시작되는 초입의 곰티재 마을 삼거리는 이미 몰려든 왜군으로 꽉 들어찼다. 사람들이 피난을 떠나고 없는 몇 채 되지 않는 빈집은 왜군들이 지른 불로 주변을 훤하게 밝히고 있었다. 

 

동이 트고 햇살이 곰티재 숲을 밝히기 시작하면서 왜군의 공격이 점점 강해졌다. 길게 진을 치고 있던 황박의 군대가 골짜기 중턱으로 하나둘 물러서면서 조선군의 1차 방어선은 쉽게 무너졌다. 무기라고는 화살 외에 특별한 것이 없는 수백 명의 조선군으로서는 이만큼 버틴 것도 장한 일이었다. 이 소규모 첫 전투에서 관군을 독려하던 오정달이 왜군의 총탄에 장렬하게 전사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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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치전투 발굴 현장


황박은 미리 약속한 대로 부하들을 이끌고 골짜기 중턱의 덕봉마을에 진을 치고 있는 제2방어선으로 후퇴했다. 제2방어선에서 전황을 보고받고 있던 나주판관 이복남은 황박이 후퇴해서 올라오자 왜군의 규모와 전투 경과를 물었다. 

“왜군이 얼마나 밀고 올라오는지 그 수를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계속 조총을 쏘면서 접근하는 바람에 화살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황박은 첫 전투의 상황을 이복남에게 보고하면서 골짜기를 오르는 왜군의 규모가 대적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나다는 것을 말했다. 이복남은 부하 장수들과 후퇴해온 황박을 불러 부대를 재배치하고 전투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방어가 어렵다고 판단해 후퇴 신호를 하면 약속한 대로 정상으로 재빨리 피신하여 정담 장군의 본대에 합류할 것을 지시했다. 이복남은 진지를 돌면서 큰소리로 군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들어라. 왜놈들이 올라오고 있다. 여기서 막아야 한다. 모두 지형지물을 잘 이용해서 대응하라. 여러 장수는 당황하지 말고 내 신호를 기다려라.”

 

첫 번째 방어선을 비교적 쉽게 돌파한 왜군이 함성을 지르며 올라왔다. 왜군의 본격적인 공세가 시작되었다. 조선군은 바위틈과 나무 사이에 숨어 줄기차게 화살을 쏘며 맞섰다. 조총을 앞세워 올라오는 왜군들에게 화살의 위력은 별로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조선군의 저항은 예상보다 약했지만, 왜군은 첫 전투에서 제법 손실을 보았다. 조선군의 주 무기인 화살이 부족한 것으로 판단한 안코쿠지는 공격을 독려했다. 마침내 왜군이 골짜기 중턱의 비교적 넓은 공터에 도착했다. 이제 이곳을 돌파하면 가파른 정상만 남는다. 어렵사리 덕봉마을에 진입한 왜군은 어설프게 구축된 조선군의 방어진지에 도달했다. 상황을 파악한 안코쿠지는 공격을 명령했다. 수적으로 우세한 병력과 무기를 앞세워 거침없이 밀고 올라왔다. 

 

화살을 쏘면서 버티던 조선군의 기세가 약해지면서 양 군의 거리는 점점 좁혀졌다. 조선군은 더 이상 바위틈과 급조한 참호 속에서 버틸 수 없게 되었다. 나무와 바위를 이용해서 저항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이복남이 칼을 빼 들고 진지 밖으로 나와 소리쳤다.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이복남이 벼락같이 소리를 지르며 선두에 서서 올라오는 왜군에게 달려들었다. 이를 신호로 조선군은 함성을 지르며 모두 진지에서 나와 왜군과 맞붙었다. 마침내 치열한 육박전이 전개되었다. 이복남은 칼을 뽑아 들고 진두에 서서 소리를 지르며 용감하게 왜군과 맞서자 그를 호위하던 부하 장수들이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황박의 의병부대도 용감하게 맞서 싸웠다.

 

지형적으로 산을 오르는 골짜기가 좁은데다 정상을 오르는 가파른 산세 때문에, 산 아래에서 올라오는 왜군으로서는 백병전으로 단숨에 조선군을 제압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수적으로 열세인 데다가 조총 사격으로 큰 피해를 당한 조선군으로서는 버티기 어려워졌다. 

 

조선군은 끈질기게 저항했으나 왜군이 수적으로 우세한데다가 조총 끝에 예리한 장검을 꽂아 찌르는 바람에 조선군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무너져 갔다. 전세가 완전히 기울어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한 이복남과 황박은 살아남은 관군과 의병들에게 미리 약속한 대로 산 정상에 있는 정담 장군의 진지로 후퇴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조선군은 계속 버티면서 서서히 정상으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전력의 열세를 어찌할꼬

한편, 정담 장군은 산 정상에서 제2 방어진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받고 있었다. 골짜기 아래에 제1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던 의병장 황박의 부대는 막강한 왜군의 조총 앞에 이미 뚫렸고, 산 중턱에 제2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던 나주판관 이복남의 군대도 왜군과 치열하게 백병전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시시각각 보고받고 있었지만, 전황은 이미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기울어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산 정상 쪽으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조선군 무리가 숨을 헐떡거리며 숲 사이로 앞다투어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숲속에는 흰 적삼을 입은 조선군 병사들이 마치 숨바꼭질하듯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올라오고 있었다.

“자… 자… 장군…”

 

선혈이 묻어 핏빛으로 얼룩진 하얀 적삼을 입은 조선군의 모습은 소나무 숲 사이로 선명하게 보였다. 산 중턱에서 제2방어선을 구축하고 왜군을 맞아 치열하게 백병전을 펼치면 버티던 이복남 휘하의 군졸들이었다. 뒤따라 이들을 추격하며 능선을 오르는 왜군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정담은 기어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고 생각하면서 어금니를 깨물었다. 

“저들을 구해라. 왜놈들을 막아라!” 

 

정담이 장검을 빼 들고 한 손으로 땀을 훔치면서 군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두꺼운 갑옷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다. 등줄기 사이로 땀이 물 흐르듯 흘러내렸다. 게다가 바람조차 불지 않으니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뜨거운 열기가 전신을 휘감았다.

“화살을 쏴라. 놈들을 막아라.”

 

정담의 우렁찬 목소리가 잠시 겁에 질려 움츠리고 있던 조선군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산 정상으로 오르는 왜군의 숫자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정담은 산 중턱에 방어진지를 구축했던 이복남의 군대가 무너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화살을 가져오너라. 화살을 쏴라. 놈들을 막아야 한다.”

 

정담은 진지를 나와 좌우로 오가면서 고함을 치며 군사들을 독려했다. 투구에서 이마로 비 오듯 흘러내리는 땀을 연신 훔치며 그는 이리저리 뛰었다. 정담의 심복으로 처음부터 그를 수행해오던 종사관 이봉, 강운과 박형길이 그를 보호하기 위해 바짝 따라붙었다. 강운은 정담의 오른편에, 박형길은 정담의 왼편에서 그림자처럼 그의 곁 곁을 지키며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정상을 향해 오르던 왜군들이 갈수록 늘어났지만, 정담이 지휘하는 조선군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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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티재(웅치) 정상

 

치열한 공방전은 오후 늦게까지 계속되었다. 산 정상을 오르는 왜군들과 조선군은 곳곳에서 백병전을 벌였다. 아직 정상의 방어진지까지 뚫리지는 않은 상태였다. 산 아래의 방어진지에서 물러났던 황박의 부대와 산 중턱에 2차 방어선을 구축했던 이복남의 군사들이 정상으로 후퇴하여 정담 군에 합세하면서 조선군의 숫자도 약간은 불어났다.

 

전투는 오후 내내 지루하게 펼쳐졌다. 산 아래와 산 중턱의 1, 2차 방어선을 어렵사리 돌파한 왜군은 산 정상 가까이 오르면서 정담이 지휘하는 조선군의 완강한 저항에 잠시 주춤했다. 왜군과 조선군의 전투는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장비와 병력의 수에서 압도적인 우세를 점한 왜군이었지만 예상외로 강하게 버티는 조선군을 상대하면서 힘겨워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정상 진지를 눈앞에 두고 왜군은 조선군이 포진하고 있는 방어진지 가까이에서 올랐다 물러섰다를 반복하면서 치열하게 맞붙었다. 때로는 몇 군데 진지를 돌파하여 조선군과 백병전을 벌이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조선군은 용감하게 버텨내며 왜군을 정상 아래로 밀어냈다. 예상치 못한 조선군의 완강한 저항에 골짜기를 따라 급경사를 오르내리던 왜군들도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우산살처럼 쏟아져 내리던 햇살도 서산으로 넘어가는 태양을 따라 걷히고 있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이 숲속에도 어둠이 내릴 것이다. 밤이 되면 상황이 또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부상자가 점점 늘어나면서 정담은 조바심이 났다. 어둠이 오기 전에 이 상황을 끝내야 한다. 옆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종사관 이봉(李葑)에게 명령했다.

“빨리 왜놈의 지휘관을 찾아라. 그놈을 죽여야 한다.”

“예. 장군.“

 

정담의 지시를 받은 군사들은 화살을 겨누며 재빨리 산 아래의 왜군을 훑어나갔다. 아무래도 싸움터에서 적군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지휘관을 사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담은 칼을 빼 들어 오른손에 들고 소리를 치면서도 왼손으로는 활을 잡고 있었다. 왜장을 빨리 찾아 그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정담은 군사들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독려하면서도 정상 가까이에 올라오는 왜군들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저기… 저기 있습니다. 저놈입니다. 저… 저기…”

 

아래쪽을 살피던 종사관 이봉이 정담의 소매를 잡아끌며 소리쳤다. 그는 이봉이 소리치며 가리키는 쪽을 보았다. 지휘관 복장을 한 왜장이 칼을 빼 들고 정상을 향해 올라왔다. 그는 뒤를 돌아보며 공격 신호를 보내면서 악을 쓰며 소리치고 있었다. 틀림없는 왜군 지휘관이었다. 정담은 들었던 칼을 칼집에 다시 넣고 활을 들어 화살을 메기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비장한 힘이 배어 나왔다.

“저놈이다. 모두 저놈을 향해 쏴라. 저놈을 죽여야 한다.”

모두가 일제히 활을 들고 정담이 가리키는 왜군 적장을 향해 겨누었다.

“터…엉”

 

정담이 적장을 향해 겨눈 화살이 활대를 벗어나 튕겨 나가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동시에 몇몇 조선군의 화살이 적장을 향해 날아갔다. 화살을 맞은 듯 적장이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갑자기 적장 주변으로 왜군 몇 명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서로 손짓과 발짓을 해가면서 뭐라고 아우성을 치며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정담이 쏜 화살이 운 좋게도 정확하게 적장의 목을 꿰뚫은 것이다. 

 

적장이 쓰러지자 왜군의 전열이 급격하게 흐트러졌다. 쓰러진 왜장 주변으로 몰려든 왜군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이리저리 허둥대기 시작했다.

“왜놈 장수가 죽었다. 모두 진지를 나와 돌격해라. 모두 죽여라…아….”

 

상황을 직감한 정담이 다시 칼을 빼 들고 소리쳤다. 조선군은 힘차게 함성을 지르며 진지를 나와 아래로 돌진했다. 순식간에 곰티재의 8부 능선은 조선군과 왜군 사이에 치열한 육박전이 전개되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조총을 쏘면서 호기롭게 정상을 향해 올라오던 왜군들은 자신들을 지휘하던 장수가 쓰러지고, 조선군이 함성을 지르며 밀고 내려오자 우왕좌왕하면서 앞다투어 산 아래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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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야카와 다카카게. 호남을 공략하기 위하여 안코쿠지 에케이를 앞세워 1만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곰티재(웅치)를 공격해 왔다.


원래 왜장 안코쿠지는 조선군의 수가 적고 무기도 변변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쉽게 곰티재를 공략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특별한 전략이나 전술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일 생각이었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와보니 좁고 길게 형성된 골짜기를 따라 정상으로 가는 길은 적은 병력으로 방어하기에 유리해서 병력 면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가진 왜군이 효과적으로 공략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게다가 예상 밖으로 조선군의 저항이 강하였으므로 적잖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안코쿠지는 시간이 흐르면서 곰티재를 단숨에 공략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진두에서 지휘하던 장수가 조선군의 화살을 맞고 죽었다는 보고까지 받았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즉시 공격을 중지시키고 후퇴를 명령했다. 

 

산 중턱의 조선군 제2차 방어선이 있던 덕봉마을까지 후퇴한 안코쿠지는 즉시 수하 장수들을 불러 모았다. 왜군의 피해는 예상보다 컸다. 아직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루어진 접전이었지만 꽤 큰 피해였다. 조선군을 너무 쉽게 본 대가였다. 

화가 난 안코쿠지는 서둘러 부대를 재편성하고 전열을 정비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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