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學(도학)은 爲己之學(위기지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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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호 전)성균관 전인, 심리상담사 1급
道學(도학)의 基本 精神(기본 정신)은 爲己之學(위기지학) :自身(자신)을 爲(위)한 學問(학문)이지, 爲人之學(위인지학) : 他人(타인)을 爲(위)한 學問(학문)이 아니다.
人間(인간)의 本性(본성)은 根本的(근본적)으로 모두가 善(선)하다는 性善說(성선설)이 道學(도학)의 바탕이다.
儒家 思想(유가 사상)에서 敬(경)의 意味(의미)는 참되고자(眞實) 努力(노력)하는 自我實現(자아실현)의 精進(정신)과 聖人(성인)의 學文 硏究(학문 연구)에 不可缺(불가결)한 마음가짐인 것이다.
道學(도학)의 現實 重視思想(현실 중시사상)은 健全(건전)한 人間性(인간성)에 基盤(기반)을 두는 것이며, 이는 個人(개인)에서 家政(가정)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中心(중심)은 活動(활동)하는 主體(주체)로서의 개개인의 人格的(인격적) 自我(자아)이다. 또한 道學(도학)은 古來(고래)의 儒學的(유학적) 이상인 修身(수신)을 根本(근본)으로 하는 修養論(수양론)을 根幹(근간)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大學(대학)에 이른바 格(격), 致(치), 誠(성), 正(정)(格物격물, 致知치지, 誠意성의, 正心정심)은 個人的(개인적) 修道(수도)의 要諦(요체)이며, 修(수), 齊(제), 致(치), 平(평)(修身수신, 齊家제가, 治國치국, 平天下평천하)은 社會的(사회적) 行道(행도)의 綱領(강령)이다. 道學(도학)은 이러한 儒學(유학)의 根本精神(기본정신)을 本領(본령)으로 하여 成立(성립)되어 있다.
修己治人(수기치인) : 내 몸을 닦아 正道(정도)로 감. “스스로 修養(수양)하여 眞實(진실)한 모습으로 사람을 대한다”
敬(경) : 精神(정신)을 한 가지 일에 集中(집중)하는 것(經典경전을 바탕으로 精神 修養정신 수양)
治(치) : “모습” “참된 모습”(眞實진실한 모습)
治(치)(11) : 사람의 길 治(치)(正道정도) 人之大倫曰(인지대륜왈)(太玄經태현경)
治(치)는 단순히 지배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바른 모습”을 갖도록 만드는 形態(형태)의 行爲(행위)와 영향을 統括(통괄)하는 槪念(개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기 때문에 “남을 가르치려 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어머니(가정교육) : 남에게 지지 마라(傲氣오기)
중국의 어머니(가정교육) : 남에게 속지 마라(智慧지혜)
일본의 어머니(가정교육):남에게 폐를 끼치지 마라(禮義예의)
메이와쿠(민폐)오가케루나 “폐를 끼치지 마라” “메이와쿠 文化(문화)”가 先進國(선진국)으로 이끌었다.
爲人之學(위인지학) : 다른 사람을 위하여, 즉 世上(세상)을 다스리는 일을 위하여 工夫(공부)하는 것은 다른 사람은 늘 잘못됐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我是他非(아시타비) - 나는 옳고 너는 아니다 이다.
남을 險談(험담)하는 사람은 바람을 일으키는 사람이고, 自身(자신)을 내세우기 위해 相對(상대)를 짓눌려 自身(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利己的(이기적)인 사람이다. 自己(자기)가 일으키는 바람으로 그 사람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여기저기서 남의 險談(험담)을 한다.
바람의 길목에 사는 우리의 삶에 불어오는 바람은 피할 수가 없다. 그러나 自我(자아)가 숨겨진 사람에게 바람은 자취도 없이 가볍게 지나가고 自我(자아)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에게 바람은 恒常(항상) 暴風雨(폭풍우)와 같다. 큰 나뭇잎은 흔들리고 바늘 같은 솔잎은 別微動(별미동)이 없다.
無我(무아)의 境地(경지) 自我 (자아)를 내세우지 않으면 바람을 맞을 일이 없다. 누가 무엇이라 하던 못 들은 것으로 하고 넘어가면 되는 것이다.
利己的(이기적)인 사람은 自身(자신)의 利益(이익)에 符合(부합)하는 대로 判斷(판단)하고 말을 하며 行動(행동)한다.
이는 道學(도학)을 모르거나 實踐(실천)하지 않는 死信德(사신덕)이다. 道學(도학)의 實踐的(실천적) 올바른 判斷(판단)은 是非的 判斷(시비적 판단)이다.
周邊(주변)의 가까운 사람일지라도 恒常(항상) 옳고 그름으로 判斷(판단)하는 사람이 올바른 道學(도학)의 實踐的(실천적)인 사람이고 大人(대인)이며 信仰(신앙)의 길인 것이다.
많이 아는 사람보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좋고 아는 것이 많아 辭典(사전)처럼 척척博士(박사)지만 傲慢(오만)하고 利己的(이기적)인 사람보다 착하고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좋다.
間或(간혹) 完全無缺(완전무결)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람이 가장 理想的(이상적)인 사람일 까는 생각해 봐야 한다.
競爭 商業主意(경쟁 상업주의)가 만든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歪曲(왜곡)된 人間像(인간상)이 오히려 正常的(정상적)으로 보이게 된다.
眞正(진정)한 나를 찾아 다듬고 가꾸는 길 어쩌면 그것은 現代人(현대인)이 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도 切實(절실)한 當面 課題(당면 과제)일 것이다.
나의 利益(이익)을 위해서라면 相對方(상대방)은 어떻게 되어도 좋다가 아니라 남의 不幸(불행)을 보면 가슴 아파하는 사람, 슬픈 일을 보면 슬퍼할 수 있고 기쁜 일을 보면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올바른 길이다.
知識(지식)이 많은 사람보다 가슴 속에 참이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純粹(순수)하고 眞實(진실)한 사람이며, 人間的(인간적)인 思考方式(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다.
利己的(이기적)인 判斷(판단)을 하는 사람은 차가운 머리로 判斷(판단)하고, 是非的(시비적)인 判斷(판단)을 하는 사람은 따뜻한 가슴으로 判斷(판단)한다.
똑똑하기만 한 사람들이 사는 索莫(삭막)한 社會(사회)보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정겨운 곳, 그런 곳이 삶의 基準點(기준점)이고 目標(목표)가 아닐까? 道學(도학)은 人間(인간)의 道德的 完成(도덕적 완성)이 目標(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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