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동(多同)의 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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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戰國時代) 중국 서남부, 오늘날 구이저우성(貴州省)과 윈난성(雲南省) 일대의 소수 민족 중에 야랑(夜郞)이라는 비교적 큰 부족국이 있었다.
진시황(秦始皇)이 천하를 통일하자, 야랑국은 진나라의 속국이 되었다. 진나라 말기에 이르러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여러 제후국이 다시 일어났다. 항우가 이끄는 초(楚)나라가 영지 탈환에 성공하자, 야랑국은 주변 여러 나라와 함께 초나라에 항복하여 제후국이 되었다.
항우와 천하의 패권을 다투던 한(漢)나라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자 야랑국은 다시 한나라에 항복했다. 그러다가 한나라가 북방의 흉노 침략을 막아내느라 서남 지방을 돌볼 겨를이 없는 틈을 이용하여 이 지역의 소수 민족과 함께 스스로 왕을 칭하면서 제후국으로 자립했다. 그 가운데 야랑국은 정예 병사가 10여만 명에 이를 정도로 제법 규모를 갖추고 있었다.
당시 야랑의 왕 다동(多同)도 야랑후(夜郞侯)를 자칭하면서 야랑국이 세상에서 가장 큰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날 다동은 신하들을 이끌고 사냥을 나갔다가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 좌우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 세상에서 어느 나라가 제일 큰가?”
신하들이 재빨리 대답했다.
“야랑이 제일 크옵니다.”
다동이 맞은 편에 우뚝 솟은 산을 가리키며 물었다.
“천하에 저보다 더 높은 산이 있느냐?”
신하들이 재빨리 대답했다.
“저보다 더 높은 산은 없사옵니다.”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일행이 강가에 이르자, 다동이 주위를 돌아보며 또 물었다.
“이 강이 세상에서 가장 큰 강이겠지?”
“물론이지요.”
신하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야랑후 다동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한나라는 무제(武帝) 때 이르러 통일제국으로서의 정비를 마치고 북방의 흉노를 제압하는 데에 온 국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 때문에 중국의 서남부 일대는 이때까지도 한나라의 통치력이 크게 미치지 않는 지역으로 남아있었다.
북방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한무제(漢武帝)는 실크로드 개척에 큰 공헌을 한 장건(張騫)을 통하여 촉군(蜀郡)에서 서남이(西南夷)를 거쳐서 인도로 가는 길이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인도로 가는 길을 뚫기 위해 그 가는 길목인 서남이 지방의 우두머리들에게 사신을 보내 협력하도록 했다.
어느 날, 한무제가 보낸 사신 당몽(唐蒙)이 군사를 이끌고 야랑국에 이르렀다. 야랑후는 사신에게 물었다.
“한나라와 우리나라 중 어느 쪽이 더 큰가(漢孰與我大)?”
당몽이 어이없어하며 대답했다.
“한나라는 수십 군(郡)을 가지고 있는데, 야랑은 그 하나의 군보다도 작습니다.”
그동안 세상 물정에 어두워 대륙을 통일한 한나라를 자신들과 같은 하나의 주(州) 정도로 생각하고 있던 다동은 기가 질린 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중국 변방 서남부의 작은 나라에 불과한 ‘야랑’이 세상의 판세를 제대로 알지 못해 스스로를 강대한 나라로 여기고 있었다는 뜻의 성어 ‘야랑자대(夜郞自大)’의 고사이다.
식견이 좁은데다 부하들의 아부에 세상 물정을 몰라 자신이 가장 잘난 줄로 착각하는 사람이 자기 역량을 모르고 위세를 부릴 때 쓰는 말이다. 『사기(史記)』 「서남이열전(西南夷列傳)」에 나온다.
요즈음 여의도 정가를 들여다보면, 야랑후 다동만이 어리석은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두머리가 된 자는 다수의 힘을 업고 원하는 방향으로 판세를 주무르고 있다. 어느새 그 멋대로 요리하는 기술이 가히 입신(入神)의 경지에 올랐다.
그의 주변에는 아부하는 대가로 원하는 자리를 차지하여 권력의 맛에 취한 줏대 없는 부하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여의도가 자기 손바닥 위에 있으니 이제 곧 자기 세상이 될 것이라고 착각할 수밖에 없으리라.
여의도 사람들이 ‘야랑자대(夜郞自大)’의 과대망상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날은 언제쯤일까?
그때가 되면 여기 수많은 당몽이 그동안 어이없어하며 지켜보고 있었음도 알게 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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