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망 효과(Overview Ef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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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동원대학교 교수)
우리는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며 우주의 신비와 그 끝없는 공간에 대해 상상해 보곤 한다.
우주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지금까지 인류가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었다. 바로 지구를 멀리 떠나 머나먼 우주공간에서 지구를 돌아보는 관점이다. 우주공간에서 작디작은 지구를 보며 새로운 인식의 변화를 경험하는 것을 ‘조망 효과(Overview Effect)’라고 한다.
2022년 미 항공우주국(NASA) 무인 우주선 아르테미스 1호가 머나먼 우주공간에서 찍어 지구로 전송한 사진은 우리 인류에게 지금 살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했다.
1972년, 아폴로 17호를 타고 달로 가는 길에 우주 비행사들은 태양 빛을 받아 빛나는 푸른 유리구슬처럼 보이는 지구 전체의 모습을 렌즈에 담았다.
‘블루마블(Blue marble)’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사진은 역사상 가장 많이 복제된 사진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사진은 ‘지구’라는 행성이 인간이 독점하고 있는 곳이 아니라 그 위에서 생존하는 모든 생물체가 공유하는 행성임을 보여주었다.
지금까지 가장 먼 깊은 우주에서 지구의 모습을 본 것은 1990년 보이저 1호가 보내온 사진이었다.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의 요청에 따라 보이저 1호는 해왕성 궤도 부근인 60억km 거리에서 태양 빛의 위험을 무릅쓰고 마지막으로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돌렸다.
여기에서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고 이름 붙여진 인류역사상 가장 철학적인 사진이 탄생했다.
‘블루마블’이 연약한 지구를 연상시킨다면, ‘창백한 푸른 점’은 우주에서 볼 때 지구는 한낱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준 매개체였다.
칼 세이건은 이 사진의 해석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다시 저 점을 보라. 저것이 여기다. 저것이 우리의 고향이다. 저것이 우리다.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 당신이 아는 모든 이들, 예전에 그네들이 살아왔던 모든 인류가 바로 저기에서 살았다.”
그는 먼 우주공간에서 본 지구를 말하면서 환경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거대한 우주에서 티끌이나 먼지와 같은 인류가 방자하게 저지르는 증오와 폭력 그리고 전쟁의 무익함을 아프게 지적한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제 우리 인류는 더 이상 지구의 중력에 붙잡혀 있지 않고 언제든 지구를 떠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담아내고 있다.
우리는 우주의 어디에 있는가?
이제 우리도 일상에서 이 넓은 우주에서 우리의 작은 위치를 깨우치며 더 큰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워 나가야 할 때가 아닐까? 우리가 모두 지구라는 이 아름다운 행성의 공동체 일부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세대는 갈수록 자기중심적인 경향을 강하게 드러낸다. ‘나무만 보고 산을 이야기한다. 나무가 모여 이루어내는 숲은 보지 못한다.’ 순간의 시시비비와 사사로운 것에 집착하고 큰 그림을 놓치기 일쑤다.
우주인들이 작은 한 점에 불과한 지구를 보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던 것처럼, 이제 우리도 시야를 더 넓힐 필요가 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몇 발짝만 떨어져 바라보기만 해도 객관적으로 상황을 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모두 옳은 것이라고 믿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
깜깜하고 공기도 없고 그저 무한히 펼쳐진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느낌, 바로 우주 비행사들이 겪는 ‘조망 효과’가 우리가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서로 다른 가치관에서 비롯된 진영 논쟁과 치열한 경쟁,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저잣거리의 정서에 묻혀 살아가면서, 마치 신(神)이 지구를 내려다보며 혀를 끌끌 차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저 좁쌀 크기와도 같은 공간에서 우리가 그렇게 싸우고 있었던가?’
굳이 싸우지 않고, 도와주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도 있을 텐데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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