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시] 식물성 사랑

기사입력 2025.11.2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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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가까이 서 있는 두 나무는 

서로에게 팔을 뻗어도

껴안지 않습니다


닿을 듯 가까이

알맞은 거리에 서서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를 기뻐할 뿐

팔을 뻗어 힘껏 잡지는 않습니다


서로에게 귀를 기울여

땅에 그림자 나란히 드리우고

하늘 아래 걸어갑니다


그대 가슴으로 팔을 깊이 뻗는다는 것은

그대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

그대를 두 팔로 껴안는다는 것은

그대를 품속에 두고 태양빛을 가리는 일


땅 속으로 깊고 은밀히

영혼의 뿌리를 얽고

강물처럼 속삭이며 흘러 별까지

서로를 마음으로만 가지는 나무

서로를 눈으로만 가지는 두 나무


                  이성선의 시 <식물성 사랑> 전문

 

진정한 사랑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성선의 시, 식물성 사랑은 그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서로 깊이 사랑하면서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거리를 두는 사랑, 겉이 아닌 뿌리로 이어진 영혼의 교감처럼 조용하지만 깊은 여운을 남기는 사랑, 요란함보다 진실한 마음으로 통하는 사랑, 가까이 있으면서도 얽히지 않고 바라보며 기뻐하는 사랑, 시인은 사랑의 본질을 나무에 비유해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다.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의 행위이며, 지배도 복종도 없는 관계”라고 했다.

그는 한쪽의 지배나 복종이 따르는 사랑을 ‘의존’ 혹은 ‘착취’라 보며, 진정한 사랑을 ‘상호적이고 평등한 인격적 만남’으로 정의했다.

이성선의 식물성 사랑」은 이러한 프롬의 사상과 맞닿아 있다.

자연을 노래하면서도 그 안에서 인간의 근원적 관계를 성찰하는 시인은 예술가이자 철학자라 할 수 있다.


그대를 품에 두고 태양빛을 가리는 사랑은 지배의 사랑이요,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없다.

강물처럼 속삭이며 별까지 흘러가는 사랑, 그것이야말로 참된 사랑이 아닐까.

낙엽이 지는 계절이다. 나무들은 불타는 빛으로 만산홍엽을 이루며 인간보다 먼저 참사랑이 무엇인지 말해주는 듯하다.


이성선(李成善, 1941~2001)은 강원도 고성 출신으로, 자연과 인간의 내면을 탐구한 서정시를 많이 남겼다.

김용택이 섬진강의 시인이라면, 그는 설악산의 시인이라 할 수 있다.

고향에는 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김진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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