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시] 홍 시

기사입력 2025.12.24 17:07  
댓글 0
  • 카카오톡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아침에 

감나무 밑에 가서

바알간 홍시 하나

단풍잎으로 받쳐 먹고

쪽빛하늘을 쳐다보니

아, 우리 하느님

내 머리 위에서

홍시 먹고 짹짹짹짹

좋아라 날아다니고 있었네

꿈에도 잊지 못할

금수강산

나의 조국

그 하늘에!

<이오덕 시집 고든박골 가는 길 ‘홍시’ 전문>

 

가을하늘은 한여름의 뜨거운 숨결을 다 털어낸 듯, 눈이 시릴 만큼 깊고도 맑았다. 나무들은 바람의 손길에 잎을 하나둘 내려놓으며 마침내 속살을 드러낸다. 찬란하고 화려했던 계절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나무의 골격처럼, 우리 삶에서도 덜어내고 비워낼 때 선명해지는 무언가가 있다.

 

아파트 마른 풀숲에 서리가 내려앉은 아침, 잎이 모두 떨어지고 난 뒤에야 붉은 감 홍시가 눈에 들어온다. 그 고운 빛은 구름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과 맞닿아 잠깐 시간을 멈추게 한다. 가을의 고독과 따뜻함이 한 알의 붉은 열매에 고스란히 깃든 듯하다.

 

이 순간, 자연의 변화와 함께 아이들의 마음을 노래하고 지켜내고자 했던 이오덕(1925-2003) 선생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평생 참교육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그리고 겨레의 얼이 깃든 우리말글 바로 쓰기 운동으로 당신의 길을 걸어간 그의 꼿꼿한 모습이 겹쳐진다.

 

감나무에 달린 붉은 홍시에서 그는 삶의 정직한 무늬를 읽었다. 하느님을 보았다. 짹짹거리는 새도, 감나무도, 쪽빛 하늘도 그에게는 모두 하느님이다. 누가 하느님이 어디 천상 옥좌에 있다고 말할 건가. 자연 모두가 하느님이다. 

바알간 홍시 하나, 그는 고운 단풍잎으로 하느님을 받쳐 먹었다. 

하늘(天)을 따르고 하늘로부터 먹고 산다는 뜻으로 사람 안의 하늘을 자각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한다는 동학의 이천식천(以天食天)’처럼 말이다.


나는 올해 후학들이 마련한 이오덕 탄생 100주년을 맞는 어느 모임에서 이 시를 다시 읽으며 이름 없이, 가난하고 정직하게 살다간 그의 참교육 실천 사상을 생각한다. 그것 또한 그 홍시처럼 다시 피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그에게 감 홍시는 단순한 열매가 아니었다. 세상의 거친 말과 서둘러 흐르는 삶 속에서도 끝내 스스로 빛깔로 익어가는 존재, 바로 아이들의 마음! 

동심을 잃지 않는 사람의 삶이었다. 

 

그는 교육자로, 어린이 문학가로, 시인으로, 비평가로, 교육운동가로 한글연구로 온몸을 바쳤고, 저서를 150여 권을 남긴 우리 현대 교육사에서 굵은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된다.


잎이 떨어져야 비로소 보이듯, 

우리의 삶에서도 불필요한 것을 내려놓아야만 선명해지는 진실이 있다. 

그 진실을 위해 평생 어린이의 말과 삶을 지키고자 했던 이오덕 선생! 

감 홍시는 오늘도 그의 시처럼 말없이 맑은 빛으로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 무엇으로 익어가고 있는가.” (김진문)

<저작권자ⓒ빠른뉴스! 울진뉴스 & www.ulji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02290
 
 
 
 
 
    울진뉴스/월간울진(http://uljinnews.com |   창간일 : 2006년 5월 2일   |   발행인 / 대표 : 김흥탁    |   편집인 : 윤은미 
  • 사업자등록번호 : 507-03-88911   |   36325. 경북 울진군 울진읍 말루길 1 (1층)   |  등록번호 : 경북, 아00138    |   등록일 : 2010년 7월 20일                         
  • 대표전화 : (054)781-6776 [오전 9시~오후 6시 / 토, 일, 공휴일 제외(12시~1시 점심)]   |  전자우편  uljin@uljinnews.com / ytn054@naver.com
  • Copyright © 2006-2017 uljinnews.com all right reserved.
빠른뉴스! 울진뉴스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