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열들의 항일투쟁, 그 길을 걷다(1)

기사입력 2025.12.2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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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을 맞는 2025년 10월 25일, 필자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주관한 답사단과 함께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어온 그 길을 나섰다. 

일제강점기 조선 독립군의 요람이자 오늘날 국군의 뿌리로 일컬어지는 중국 만주 일대 항일 유적지인 신흥무관학교 옛터를 직접 밟아보기 위해서였다. 특히 고향 울진 출신으로 이 학교에서 교관을 지낸 원병상) 선생의 회고록을 읽은 뒤로는, 언젠가 반드시 이곳을 찾겠다는 다짐이 더욱 깊어졌다.

 

140여 년 전, 낯설고 혹독한 타국에서 피눈물로 항일투쟁을 이어갔던 선열들의 발자취는 오늘 우리에게 차츰 잊혀져 간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그들의 길을 따라가 보는 일은 더욱 의미가 있다. 얼어붙은 강을 건너며, 모진 바람 속에서 조국의 새벽을 기다렸던 이들의 흔적을 되짚어보며, 필자는 그날의 함성과 절박함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고자 한다.

이번 답사기는 그렇게 만주 일대에 남아 있는 항일 독립투쟁의 자취를 따라가며, 선열들이 남긴 이야기와 그 현장의 숨결을 작은 기록으로 남기려는 시도이다. 이제 그 여정의 첫 장을 펼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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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 지도

 

이번 답사 일정과 답사 지도는 다음과 같다. 제1일(10월 25일, 토) 인천공항(12:15) 출발→ 하얼빈 태평국제공항 도착(13:30)→ 하얼빈 정율성기념관, 조린공원(안중근의사 유묵비)→ 하얼빈 금곡호텔

 

제2일(10월 26일, 일, 7:30 출발) 하얼빈 731부대 유적→ 하얼빈역 안중근기념관→ 하얼빈역(15:37) 고속열차출발→ 이도백하역(19:40) 도착→ 이도왕조온천호텔


제3일(10월 27일, 월) 백두산 천지: 기상악화로 무산됨)→ 대체 프로그램으로 보트 유람, 백두산 천지 일대 3D 영상물 감상함→ 통화이동(버스 4시간)→ 통화 라툰모건호텔


제4일(10월 28일, 화, 08:00) 버스로 길림성 출발, 신흥무관학교 합니하→ 추가가→ 고산자→ 양세봉장군 동상→ 심양으로 버스 이동(4시간 30분)→ 심양 화부호텔


제5일(10월 29일, 토, 08:00) 심양고궁(청나라 누루하치고궁)→ 9·18 기념관(만주사변을 기념하는 역사박물관)→ 심양공항(16:35 출발)→ 인천공항 도착(19:40)


이번 답사는 민족문제연구소, 역사와 책임,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이석영 선생 후손 김창희 선생, 그리고 여행사 후라(Hura) 등이 공동으로 주관하고 후원한 ‘이석영 선생 탄생 170주년 기념 신흥무관학교 옛터 답사’였다.


10월 24일 오후 2시, 인천공항을 출발해 아시아나 비행기를 타고 중국 하얼빈으로 향했다. 비행기가 서해를 건너 하얼빈에 가까워지자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만주벌판이 눈에 들어왔다. 아득한 평원―이곳은 한때 고조선·고구려·발해의 터전이던 땅이지만, 이제는 그림 속 떡과 같은 남의 나라 영토일 뿐이다.


곧 기내 방송이 울렸다. 하얼빈 공항에 착륙한다는 안내였다. 비행기 바퀴가 활주로에 ‘철컥’하고 닿는 순간, 가볍지만 묵직한 울림이 전해졌다.

우리는 두어 시간 만에 이곳 만주 땅에 도착했지만, 백여 년 전 조선의 독립을 꿈꾸며 이 땅을 밟았던 선열들은 몇 날 며칠을 걸어오거나 기차를 타고 이 머나먼 길을 왔을 것이다.

“아, 드디어 하얼빈이다. 역사의 현장에 왔구나.”

그 순간 안중근 의사가 떠올랐다.

‘민족이란 무엇이며, 역사는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이 시대에 역사 부름 앞에 얼마나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그 물음이 내 안에서 울려 퍼졌다. 현지 시각 2시 30분에 하얼빈 공항 도착, 답사단 일행은 공항에 대기한 버스를 타고 곧바로 하얼빈시 정율성 기념관과 조린공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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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역 광장에서 답사단 일행

 

첫째 날(2025. 10. 25) 

- 정율성 기념관과 안중근 의사 유묵비를 둘러보다

정율성!

이름은 들었지만, 자세히 알지는 못했던 인물이다. 광주 출신 항일음악 작곡가로, 오히려 한국보다 중국에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정율성(鄭律成, 1914~1976)은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중국으로 건너가 사회주의 항일투쟁에 헌신한 음악가이다. 하지만, 한때 한국에서는 논란이 있었던 인물이다.

그는 항일단체 조선의열단 출신으로 뛰어난 음악가이지만 한편으로 사회주의에 공헌한 인물이라는 이념 논쟁과 시대의 아픔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그가 1939년에 만든〈중국인민해방군행진곡〉은 오늘날까지 중국 인민해방군의 공식 군가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이후 중국의 영화음악과 혁명가요를 다수 남기며, ‘중국 혁명 음악의 아버지’라 불렸다. 한국에서는 ‘광주 출신 항일음악가’로 기억된다. 전남 광주에 그의 기념관이 있다.


하얼빈의 정율성 기념관에는 그의 일생이 사진과 기록물로 자세히 소개되어 있었다. 중국 현대사 속에서 음악으로 항일투쟁한 그의 업적이 높이 평가되고 있었다.

나는 이때 독일의 윤이상)을 떠올리며, 시대의 비극을 음악으로 이겨낸 예술가라는 점에서 묘한 공명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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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율성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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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음악가 정율성에 대해 설명하는 민문연 방학진 실장(좌측 위), 인민음악가정율성기념관 표지판(우측 위).

기념관 관람객(좌측 아래), 정율성 중학교 성적표(우측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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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율성이 남긴 악보 일부


- 靑草塘

정율성 기념관을 나온 우리는 조린공원으로 향했다. 조린공원(兆麟公园)은 하얼빈 도리구에 있는 시민공원으로, 벤치와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다. 우리가 갔을 때 연못가에는 부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곳에 세워진 안중근 의사 유묵비는 높이 1미터 남짓, 단정한 비석에는 안 의사의 친필로 새긴「青草塘(청초당)」과「砚池(연지)」라는 글씨, 그리고 단지장인(斷指掌印)이 또렷이 새겨져 있었다.

짧은 글자 속에서도 ‘푸른 풀이 돋는 언덕, 새싹이 움트는 못가’ 이미지가 떠올랐다.

봄의 새싹처럼 독립 희망이 반드시 돋아날 것이라는 안 의사 염원이 담겨 있다.

이 유묵비는 하얼빈시에서 세운 것으로 중국 당국도 안중근 의사의 항일 투쟁을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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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린공원 청초당 비석

 

- 1미터가 넘는 꼬치구이 

그날 저녁 우리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몇 사람들과 하얼빈 시내를 걸었다. 우리네 밤거리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사람들은 하얼빈을 끼고 흐르는 송화강가에 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저 멀리 송화강을 가로지르는 큰 다리의 불빛이 찬란하다.

어느 꼬치구이 가게 앞, 주인이 큰 소리로 손짓하며 손님을 불러 모았다. 중국어를 잘 모르는 내 귀에는 그 말소리가 ‘월라앨라, 짜짜’처럼 들릴 뿐이었다. 

우리는 멀리 갈 것 없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 자릴 잡고 술과 안주를 주문했다. 그 가게에서는 양고기, 소고기, 돼지고기를 1미터가 넘는 긴 꼬챙이에 꿰어 구워 팔았다. 꼬치 대꼬챙이를 뻗치면 앞사람에게 닿을 정도이다. 

우리는 꼬챙이를 들고 먹을 수 없어 이를 빼내어 쟁반에 덜어 안주 삼아 약간의 술과 함께 즐겼다. 그날은 첫날이어서인지 모두 들뜬 기분으로 금곡호텔로 돌아와 숙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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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시 송화강가의 밤풍경(좌측 위), 사람들이 붐비는 인민광장(우측 위)

꼬치가게. 양고기, 돼지고기, 소고기를 구워서 판다.(좌측 아래), 하얼빈 시내 밤거리(우측 아래)

 

하얼빈은 중국 헤이룽장성의 성도(省都)이며 부성급시인 대도시다.

송화강 남쪽 기슭에 있으며, 중국 동북부 만주의 공업 요지다. 인구는 서울과 비슷한 일천만 명쯤 된다. 이 도시에는 우리 근현대사와 밀접한 안중근기념관과 일제가 저지른 전쟁범죄 유적인 731부대가 있다. 더구나 하얼빈역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오히로부미를 저격한 곳이다. 내일은 이곳을 답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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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1부대 유적지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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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세균전 실험에 사용된 방독면(좌측), 생체 실험장과 시신 처리장(우측 위), 생체 실험을 간접 체험해보는 관람객들(우측 중간), 두 모자를 뜨거운 열 속에 넣어 인내의 한계를 

측정하는 끔찍한 장면을 재현해 놓았다(우측 아래)

 

둘째 날(10월 26일, 오전) 

- 악명높은 731부대 범죄현장을 가다

둘째 날 오전, 우리는 일정은 일제 731부대 유적지와 하얼빈역 안중근기념관 답사했다.

맑은 날, 하얼빈 시내의 싸늘한 아침 공기가 몸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호텔을 나선 우리는 버스에 올라 이른바 ‘인간 생체실험 기관’ - 악명높은 일제 731부대로 향했다.


유적지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하늘로 비스듬히 솟아오른 거대한 굴뚝이었다. 그 건조한 형태 하나만으로도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비명이 사라져갔는지 묵직하게 드러내는 듯해 등골이 서늘해지는 듯한 느낌이다.

기념관 입구에는 이미 많은 관람객이 줄을 서 있었다. 중국 정부가 이곳을 보존·전시하는 까닭은 분명했다.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기록하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기억하기 위함이다.

이곳은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생체실험 조직으로 악명 높은 일제 731부대의 본거지, 전쟁범죄와 인권유린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저, 치 떨리는 만행의 역사 증거들을 직접 보아라!

이곳은 인간 도살장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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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의 공간, 생체실험 희생자 중에는 조선인 이름도 있었다(위)
731부대 생체 실험실 일본군 주범들 모형(좌측 아래), 생체실험 도구들(우측 아래)

 

- 그날의 비명, 그 현장 기록물과 증거들

전시실에는 인간 생체실험의 과정과 그 은폐된 비밀을 드러내는 사진, 실험 기구 등 수천 기록물들이 놓여 있었다.

십자가형 틀에 사람을 묶어 혹독한 실험을 촬영한 실제 기록물이 영상으로 재현되어 있었다. 관람객이 팔을 벌려 그 자세를 직접 취해볼 수 있도록 만든 체험 공간도 있었는데, 그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등줄기를 타고 냉기가 흘렀다.

생물·화학전 실험 코너에는 풍선 모양의 살포 장치가 전시되어 있었다. 화학물질과 세균을 넣어 공중에 날리던 실제 실험 장비라고 했다.

또 다른 재현물에는 어린아이를 품에 안은 채 뜨거운 방에 갇힌 어머니가 보였다. 인간의 인내 한계를 측정하기 위해 고열 속에 가두었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장기가 드러난 사진, 절규가 그대로 멈춰버린 얼굴들… 더는 눈길을 두기 어려운 장면들이 이어졌다.

2층에는 생체실험과 각종 범죄를 지시한 일본 군 간부들의 사무실이 복원되어 있었다. 당시 모습 그대로라 했다. 여기에 서 있으니, 전후에 “나는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라고 말하던 전범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학자들이 말한 ‘악의 평범성’)이란 것이 이렇게 인간을 폐허로 만들 수 있다니, 절로 허 참! 한숨이 새어 나왔다.


- 추모 공간

전시동을 내려오자 복도 끝에 희생자들을 기리는 공간이 있었다. 벽면엔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고 그중에는 조선인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우리는 그 앞에 국화를 놓고 묵념했다.

이어 비어 있는 실험장 시신 처리 터를 둘러보았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겨울바람만이 스산하게 불어오며, 과거의 참혹한 시간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었다.

동행한 세종의 김 선생은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그는 관람 내내 작은 목소리로 “나무아미타불”을 외웠다. 그 소리는 마치 이곳에서 스러져간 이름 없는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기도처럼 들려 마음을 울렸다.


- 역사 앞에 일본은 사죄해야

그러나 이런 역사가 존재함에도, 일본 정부는 아직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과연 이런 나라를 선린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우리는 이 끔찍한 범죄 앞에서 분노를 거둘 수 있는가?

이 땅에 남은 깊은 상처와 고통을 생각하면, ‘불구대천의 원수’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기념관 출입구 벽면에는 731부대를 다룬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그것은 이곳의 역사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일깨우는 듯, 차가운 눈빛으로 관람객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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