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신드롬
기사입력 2011.10.1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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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은 정치하는 사람들이 좌파니 우파니, 진보니 보수니 하면서 싸우는 게 싫다.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리더십의 출현을 바라고 있다.”
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지난 23일 퇴임한 이용훈 대법원장이 대법원 출입기자단 만찬에서 “최근 안철수씨가 우리나라 희망처럼 떠올랐는데 왜 그 사람이 갑자기 국민적 지지를 받게 됐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며 한동안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른 바 ‘안철수 신드롬’의 원인을 이같이 분석했다.
최근 무상급식 방법론을 둘러싼 정치권의 갈등으로 촉발된 무상복지 문제가 마침내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퇴로 이어졌고, 그 후폭풍으로 갑자기 등장한 ‘안철수 대안론’이 국민들 사이에 회자되면서 어느새 정국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차기 대권선거로 옮겨가고 있다.
‘안철수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안철수는 요즈음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성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 인정받고 있다. 서울대 의대 출신으로 컴퓨터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해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독파하며 낮에는 의사로, 밤에는 백신 개발에 몰두해 마침내 7년의 노력 끝에 백신 프로그램 V3를 개발해 국민들에게 무료로 보급했다. 그리고 그는 의대 교수직을 포기하고 백신 연구소를 설립해 지금까지 우리나라 사이버 안보를 지켜주고 있다. 돈으로 환산하면 수십 조 원의 가치가 있는 공익적 일이었다.
그는 일반적인 유명인사와 다른 점이 많다. 항상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독서하고 노력하는 것은 물론 사회에 대한 봉사정신이나 애국심도 투철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의사, 프로그래머, 베스트셀러 작가, CEO, 석좌교수, 대학원 원장 등 모든 방면에서 최고의 역량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도덕성, 진정성, 소통능력, 열정, 탈권위주의 및 수평적 사고, 경영과 기술의 융합, 공감과 감성, 통합력 등 다양한 능력도 많이 보여준 인물이다.
문제는 그런 그가 이 대법원장이 언급한 것처럼 국민을 통합해 낼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을 갖춘 인물인가 하는 점이다. 비록 사회적 공헌도가 높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정치적으로 보면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기 때문에 그 정치적 능력을 검증받을 기회를 갖지 못한 약점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서울시장 출마를 양보하자마자 곧바로 세간의 관심은 그의 대권 출마설로 옮겨갔다. 과연 그는 국민들이 갈망하는 것처럼 갈라지고 찢어져 상처를 입은 민심을 통합할 수 있는 리더십의 궁극적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예로부터 ‘천강대임(天降大任)’이라 하여 하늘이 어떤 사람을 선택하여 그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릴 때는 반드시 역경과 시련을 주어 시험한다는 말이 있다.
《맹자(孟子)》에 보면 역경이야 말로 위대한 인물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하늘이 주신 선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 임무를 맡기시려고 할 때에는(天將降大任於是人也), 반드시 그의 마음과 뜻을 고통스럽게 하고(必先苦其心志), 그 사람의 근육과 뼈를 수고롭게 하며(勞其筋骨), 그 사람의 몸과 피부를 말리게 하고(餓其體膚), 그 사람의 몸을 공핍하게 하나니(空乏其身), 그 사람이 하는 일을 그토록 힘들게 하는 이유는 그 사람의 마음을 더욱 불태우고 본성을 더욱 강하게 하여 그의 능력을 더욱 더하려 함이다(行拂亂其所爲 所以動心忍性 曾益其所不能). 그러므로 근심과 고통이 너를 키울 것이오. 편안함과 안락이 너를 죽일 것이다(生於憂患 死於安樂).
우리의 첫 번째 관심은 하늘이 과연 그에게 그런 역경과 시련의 기회를 갖게 할 것인가라는 것이다. 만약 그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그가 어떤 그릇(器)인지 검증할 수 있는 기회를 동시에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릇(器) 또한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큰 그릇은 만드는 데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성어가 있다.《노자(老子)》41장에서 나온 말로 노자는 이 장에서 옛글을 인용하여 “아주 큰 사각형은 귀가 없고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大方無隅 大器晩成). 아주 큰 소리는 들을 수 없고 아주 큰 형상은 모양이 없다(大音希聲 大象無形).“고 도(道)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보듯 ‘만성(晩成)’이란 본래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로 거의 이루어질 수 없다는 뜻이 강하다. 그런데 훗날 이 말은 다음과 같은 고사를 통해 ‘늦게 이룬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삼국시대 위(魏)나라에 최염(崔琰)이라는 장군이 있었다. 그에게는 최림(崔林)이라는 사촌동생이 있었는데 외모도 보잘 것 없고 출세가 늦어 친척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주 멸시를 당하곤 했다. 하지만 최염 만은 그의 재능을 꿰뚫어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큰 종(鐘)이나 큰 솥(정(鼎))은 그렇게 쉽사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큰 인물도 성공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내가 보기에 너도 그처럼 대기만성(大器晩成) 형이다. 그러나 좌절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해라. 그러면 틀림없이 너는 큰 인물이 될 것이다.”
과연 그의 말대로 최림은 훗날 황제(皇帝)를 보좌하는 삼공(三公)의 지위에 올랐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용어는 오늘날에 이르러 나이가 들어 성공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흔히 사용되고 있다.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명장 마원(馬援)은 어려서부터 큰 뜻을 품고 글을 배우고 예절을 익혔을 뿐만 아니라 무예에도 정통하였다. 그의 맏형 마황(馬況)은 동생의 재주를 알아보고 늘 그를 격려하면서 ‘대기만성(大器晩成)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마원은 항상 친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대장부는 뜻을 품었으면 어려움을 당할수록 더욱 굳세어야 하며 늙을수록 더욱 건장해야 한다(大丈夫爲者 窮當益堅 老當益壯).”
훗날 광무제의 휘하(麾下)로 들어간 마원은 공을 세워 복파장군(僕波將軍)에 올랐고 북방의 외적이 쳐들어오자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군대를 이끌고 정벌 길에 올랐다. 그 뒤 대장군으로 임명되어 반란을 평정하고 흉노(匈奴) 토벌에 큰 공을 세움으로써 마침내 그의 형이 말한 대로 대기만성을 이루었다.《후한서(後漢書)》〈마원전(馬援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안철수 대안론’이 회자되면서 그를 둘러싼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하나 둘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세상에 흔히 나도는 평판이란 반드시 그것이 옳다고 말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정의를 실현하고자 할 때에는 그에 따른 많은 사람들의 평가란 결국 작은 꼬투리를 문제 삼고 비난을 함께 쏟아내기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의 두 번째 관심은 만약 그가 대권에 뜻을 세운다면 정치권에 가까이 한 적이 없는 그가 때로는 혹독하기까지 한 검증과정을 무사히(?) 치를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어쩌면 그는 이미 하늘이 내린 시련과 고난의 과정에 입문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맹자를 찾아온 맥계(貉稽)가 말했다.
“저는 사람들의 입에서 여러 말을 듣고 있습니다.”
맹자가 대답했다.
“그것은 상심할 일이 못되오. 선비는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여러 말을 듣는 법이오.(無傷也 士憎玆多口)”
맹자는 스스로 정도(正道)를 세워 가는 일에는 오직 자신의 올바른 태도가 중요할 뿐이므로 그 밖의 일에는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므로 선비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모함을 받고 시기를 받는 것이 이와 같은데 하물며 정치인이 되려고 한다면 그런 정도는 아무 것도 상심할 일이 아니지 않겠는가.
자신을 희생하며 공익을 우선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지성인이라는 것 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한 인물을 두고, 국민 통합을 위한 ‘새로운 리더십’이기를 기대하는 국민들이 제법 많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들을 도출해 낼 수 있다.
우리는 지금 난세(亂世)를 구해줄 영웅(英雄)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국민 전체가 집단적으로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나라 안팎의 상황은 점점 더 오리무중이라 이래저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울진뉴스 기자 uljin@ulji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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