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한반도여.

기사입력 2012.02.0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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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남한은 선거에서 잇따라 돌풍을 일으킨 2030세대 표심(票心)을 놓고 그 속마음을 읽느라 정치권이 속을 태우고 있는 가운데, 북한에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20대 후반의 젊은이가 후계자로 등극하면서 한반도가 또 다시 지구촌 이슈의 중심에 섰다. 중동의 민주화 바람을 잠시 옆으로 밀어내고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수 있을 만큼 한반도를 둘러싼 문제는 언제든지 세계인의 관심거리가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남북한 모두 그 중심에는 2030세대의 동향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 해 10·26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20대의 69.3%, 30대의 75.3% 지지를 얻었다. 젊은 층은 4월 성남분당을 보궐선거에 이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여당을 차갑게 외면했다.

그렇다면 2030은 진보, 야권 성향일까. 이연주 한국청년유권자연맹 운영위원장은 “민주당의 환호나 한나라당의 공포는 둘 다 착각”이라며 “2030세대는 이념의 틀로 묶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정당을 평가해 보라고 하면 “민주당도 재수 없지만 한나라당은 더 재수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즉, 여야 모두 2030세대를 바라보는 초점이 틀린 것이다. 결국 2030세대는 정치판 모두가 백성을 위한 정치를 외면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무소속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 것이다. 요즈음의 상황을 말하자면, 문자 그대로 정당정치의 위기이자 민주주의의 위기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를 두고 모 일간지 논설위원은 2030세대에게 아예 정치판을 더 세게 몰아붙이라고 주문하고 있다.

예로부터 비록 지존(至尊)의 지위에 있다고 하더라도 덕(德)을 갖추지 못한 군왕을 평범한 한 사내, 즉 ‘독부(獨夫)’라 하여 왕조 교체의 명분으로 삼았다. 바로 ‘일부론(一夫論)’이다.

제선왕(齊宣王)이 맹자에게 물었다.
“탕(湯)이 걸(桀) 임금을 쫓아내고, 무(武)가 주(紂) 임금을 정벌했는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맹자가 그런 사료(史料)가 있다고 대답하자 선왕이 다시 물었다.
“신하로서 그 임금을 시해(弑害)하는 것이 옳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인(仁)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고 하는데, 잔적(殘賊)은 한 사람의 사내(一夫)에 불과합니다. 한 사내(一夫)인 주(紂)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맹자》〈양혜왕(梁惠王)〉조에 실린 이야기로서 인의(仁義)를 해치는 자는 임금이 아니라 잔인한 도적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상서(尙書)》〈태서(泰誓)〉에 보면 “나를 어루만져주면 임금이지만 나를 학대하면 원수다.(古人有言曰 撫我則后 虐我則讐)”라는 말이 나온다. 정치를 잘못하면 임금이 아니라 바로 원수라고 단언하는 대목에서 옛 어른들이 민심의 향배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짐작할 수 있다.

조선 초기 태종이 어느 날 세자(양녕대군)에게 “걸주(桀紂)를 왜 독부(獨夫)라고 부르는지 아느냐?”라고 물었다. 세자가 “인심을 잃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하자, “걸주는 천하의 주인이었지만 인심을 잃자 하루아침에 독부가 되고 말았다. 하물며 너와 내가 만약 인심을 잃는다면 하루도 이 자리에 있지 못하게 될 것이다(上嘗問世子以桀紂爲獨夫之義 世子對曰 以失人心 上曰桀紂爲天下主 而失人心 一朝至爲獨夫 况予與爾 若失人心 則必不能一朝居是位也 其可忽哉”라고 경고하고 있다.(태종실록 태종 5년 8월 19일(壬午)조)

요즈음 정치권은 초대형 외교안보 이슈에 초당적 대처를 다짐하고 있지만 속내는 온통 총선과 대선에 쏠려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지난 세월동안 격렬하게 대립하다 총선을 앞두고 한 살림을 차리면서 날이면 날마다 당명이 뒤바뀐다는 비아냥거림까지 나온다. 백성들이 정치권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여야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꼼수를 부린다. 선거 때만 다가오면 정당을 새로 만들거나 이름만 다른 간판으로 바꾸어 달고 ‘나는 아니다’라고 항변하곤 한다. 백성들을 우습게 여기는 오만방자한 작태의 극치에 불과하다. 그런 얄팍한 술수로 민심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기 그지없는 일이다.

사마천은 전한(前漢) 때 명장 이광(李廣)에 대한 기록을 실은《사기(史記)》의〈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에서 이광의 사람됨을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는 스스로 불러 모으지 않아도 사람들이 그 열매의 단 맛에 이끌려 모여들기 때문에 어느덧 그 나무 아래 길이 새로 생긴다.(桃李不言 下自成蹊)”라고 기록하고 있다.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는 열매가 맛이 있어서 따 먹으러 오는 사람이 많은 까닭에 자연히 길이 생긴다는 뜻으로, 덕(德)이 있는 사람은 교묘한 언변이나 능란한 처신으로 자신을 드러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흠모하여 모여드는 것을 비유하고 있다. 이 말은 오늘날 ‘성혜(成蹊)’라는 고사성어로 회자되고 있다. 민심은 이런 식으로 얻어야 한다는 교훈이다.

예로부터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라 했다. 제왕인 천자(天子)는 하늘로부터 그 명을 받은 사람이라 하여 절대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명분으로 삼았다. 따라서 천자의 지지기반은 하늘, 즉 만백성이다. 만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천하는 저절로 다스려지지만 민심을 잃으면 그 절대권력은 유지해나갈 명분을 잃게 되는 것이다.

제(齊)나라 왕이 조(趙)나라의 위태후(威太后)에게 사신을 보내 문안인사를 전하도록 했다. 사신을 맞이한 위태후는 왕의 서신을 보기도 전에 제나라 사신에게 물었다.
“한 해도 무양한가(歲亦無恙耶), 백성들도 무양한가(民亦無恙耶), 왕도 무양하신가(王亦無恙耶).” 제나라의 사신은 대답 대신 불편한 기색으로 되물었다.
“나라에는 왕이 첫째이므로 왕의 안부를 먼저 묻고 그 다음에 백성의 안부를 묻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 그러자 위태후가 얼굴색을 고치며 말했다.
“풍년이 들고 난 다음이라야 백성은 그 생활을 유지할 수가 있고, 백성이 편한 뒤라야 임금은 그 지위를 보존할 수가 있다. 그 근본부터 먼저 묻는 것이 어찌 순서가 바뀐 것이 되겠는가?”

제나라의 사신은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다. 그 후로 세상 사람들이 국가 간의 외교적인 문안인사에는 해(歲)와 백성, 임금의 3가지 무양(無恙)으로 인사말을 주고받았다고 한다.《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편에 실린 이야기다.

우리 정치인들에게 ‘국민’은 몇 번째에 해당할까? 백성을 잘 살게 만들기 위한 군주의 기본 도리와 책무를 강조하는 이 고사(故事)는, 오늘날 정치를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추앙받고 있는 요(堯) 임금이 천하를 다스린 지 50년이 되었을 때, 백성들이 어떻게 사는지 그 실상이 궁금했다. 민정(民情)을 살피기 위해 미복(微服) 차림으로 강구(康衢)라는 넓은 거리에 이르렀을 때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놀고 있었다.

우리가 이처럼 잘 살아가는 것은 모두가 임금님의 지극한 덕이네.(立我烝民 莫匪爾極)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임금님이 정하신 대로 살아가네.(不識不知 順帝之則)

어린이들의 노랫말에 마음이 흐뭇해진 요 임금은 마을 끝에서 한 노인을 발견했다. 머리가 하얀 그 노인은 우물우물 무언가를 씹으면서 손으로 배를 두드리고 발로 땅을 구르며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네.(日出而作 日入而息)
밭을 갈아 먹고 우물을 파서 마시니(耕田而食 鑿井而飮)
임금님의 힘이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帝力何有于我哉)

《십팔사략(十八史略)≫〈제요편(帝堯篇)〉에 나오는 ‘고복격양(鼓腹擊壤)’, 즉 배를 두들기고 흙덩이를 친다는 이야기로서 모든 백성들이 천하의 태평무사(太平無事)를 즐기는 모양을 이르는 말이다. ‘강구동자(康衢童子)’와 ‘격양노인(擊壤老人)’이라는 말이 이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백성들이 스스로의 생업에 자족한 나머지 통치자의 존재조차 까맣게 잊고 있으니, 과연 요임금의 치세(治世)는 태평성세(太平盛世)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모두가 제위에 오를 때의 초심을 잃지 않은 요 임금의 처신에서 얻어진 결과라 할 것이다.

유난히 사건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신묘년(辛卯年)이 가고 임진년(壬辰年)이 밝았다. 올해는 역사상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긴 전란의 하나였던 임진왜란(1592)이 일어난 지 꼭 420년이 되는 해다. 당파싸움으로 인해 국가의 안위를 생각하지 못했던 무능했던 위정자들 때문에 7년 동안 우리 강토는 왜군의 말발굽 아래 철저하게 짓밟혀야 했고 백성들은 살아남기 위해 정든 땅을 버리고 떠돌아야 했다. 초토화된 한반도를 두고 진행된 휴전협상에도 정작 피해 당사자인 조선은 없었고 명나라와 일본 사이에서 진행되었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역사적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요즈음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정세는 그 당시와는 시간적으로 다를 뿐 강대국 간의 역학구도는 거의 비슷하다. 이런 외우내환(外憂內患)의 상황에서 우리 정치권이 시급히 해야 할 일이란 무엇이겠는가? 당리당략은 잠시 접어두고 국익을 위해 갈라진 국론(國論)을 한 데 모으고 표류하는 민심을 수습하여 천하를 안정시키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다. 스스로 생업에 만족한 나머지 통치자의 존재조차도 까맣게 잊고 살았다는 요 임금의 치세(治世)만큼은 아니더라도, 국가의 안위(安危)를 걱정하면서 생업에 매달리는 것조차도 불확실한 세상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이합집산으로 분주한 남한, 20대 젊은이가 후계자로 등장한 북한의 불투명한 내일이 함께 맞물리며 국제적인 이슈로 떠오른 한반도. 부디 정치권이 일치단결하여 이를 잘 극복하고 통일을 앞당기는 초석을 다지는 국운대통의 2012년(임진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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