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子思)가 일러주는 교훈

기사입력 2013.04.02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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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를 놓고 여야가 치열하게 대립하면서 새 정부 출범이 늦어졌다. 방송진흥에 관한 사업을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하느냐 방송통신위원회에 그대로 두느냐를 놓고 지루한 공방전을 펼쳐 왔는데, 세간에서는 도대체 이 문제가 국정을 마비시킬 만큼 중차대한 일인지 기가 막힐 일이라는 반응이 나오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여야의 대치 정국이 길어지면서 인사청문회가 열리기도 전에 내정자를 둘러싸고 확인되지도 않은 유언비어들이 나돌기 시작하는 와중에 급기야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는 “대통령 면담조차 거부하는 야당과 정치권의 난맥상을 보면서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던 마음을 지켜내기가 어려웠다”면서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던 마음을 버리려 한다.”고 전격 사퇴를 선언했다.

그는 미국에서 알카텔-루슨트 벨연구소 사장으로 벤처기업가에서 세계 최고 IT(정보기술) 연구기관의 수장이 된 살아있는 IT 신화의 주인공으로 평가된다. 박 대통령이 IT 융복합을 통해 미래 먹거리를 창조하겠다는 이른바 ‘창조경제’를 이끌고 나갈 핵심으로 신설한 미래창조과학부의 수장직을 맡기기 위해 삼고초려한 인사다.

그는 벤처산업의 성공신화를 우리 사회에 접목시켜 대통령이 공약한 ‘창조경제’의 가치를 완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면서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귀국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사청문회조차 열어보지 못한 채 스스로 사퇴한 것이다. 민주통합당 소속인 강운태 광주광역시장도 민주당 간담회에서 “식당을 지키는 주인이 밥을 짓겠다는데 찰밥이든 흰밥이든 짓게 하지 왜 민주당은 그러는가 하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고 언급할 정도였다.

청(淸)나라 때 오승권(吳乘權)이 쓴 《강감역지록(綱鑑易知錄)》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자사(子思)가 위후(衛侯)에게 구변(苟變)이라는 사람을 대장군으로 추천했다. 위후는 “그가 그런 재목이라는 것은 알지만, 지방관으로 일할 때 백성들의 세금을 올렸고 남의 집 계란을 두 개나 그저 먹은 것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인품이 좋다고는 할 수 없소. 그 때문에 중책은 맡길 수 없소.”라고 말했다.

이에 자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관리를 뽑는 것은 마치 목수가 나무를 고르는 것과 같이 좋은 점은 취하고 모자라는 점은 버리는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전국시대에 충성스럽고 용감한 신하를 고르면서 달걀 두 개 때문에 나라를 지키는 장수를 버리려 하시니 이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면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로 달걀 두 개 때문에 나라를 지키는 능력 있는 장수를 버리는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때의 본의 아닌 말과 행동 때문에 남다른 능력을 한 번 써보지도 못하고 무대 뒤로 사라지는 인재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저지르는 집단적인 오류들을 실감하곤 한다.

후한 말 서기 200년, 조조(曹操)는 철기군 1만의 병력으로 원소(袁紹)의 10만 정예병과 관도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른 바 ‘관도대전(官渡大戰)’으로 불리는 이 싸움에서 조조는 대승을 거두고 유비(劉備), 손권(孫權)과 함께 천하를 삼분하면서 중원의 패자로 등장하게 되었다. 싸움이 끝나고 전리품을 수습하던 조조 진영의 장수들이 원소군의 진영에서 여러 통의 편지를 발견했다. 조조 진영의 몇몇 장수들이 비밀리에 원소와 내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측근들은 내통한 장수들을 찾아 모조리 처형해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고를 받은 조조는 태연하게 말했다.
“원소군이 워낙 막강해서 나도 이 싸움에서 이기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소. 나 역시 스스로를 보호하기 힘들었는데 하물며 장수들이야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그리고는 한 통의 편지도 열어보지 말고 한 데 모아 불태우라고 명령을 내렸다(戰官渡本初敗績 劫鳥巢孟德燒糧. 《三國演義》). 전전긍긍하고 있던 장수들이 조조의 대범한 결단에 감동을 받았고 그들은 그 후 각종 전투에서 죽음으로써 그 은혜를 갚으려고 노력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조조의 인재모시기 전략의 하나이긴 하지만 그가 정치가로서의 큰 도량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최근 한 야당의원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 지명됐다 자진 사퇴한 김종훈 전 후보자에 대해  “미국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미 CIA 관련자인 ‘검은 머리 미국인’인 그의 낙마는 지극히 정당했다.”고 주장하며 일부 사람들의 극단적인 편협한 인식을 대변했다.

김종훈 전 내정자는 얼마 전 이메일을 통해 “약 2주간 한국 사회 한복판에 있으면서 한국의 ‘한쪽이 피를 봐야 하는 정치(blood sport politics)’와 뿌리 깊은 관료주의는 나 같은 외부인을 받아들여 새 부처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놔두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면서, “돌이켜보면 지금 (한국 정치와 사회에 대해)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아마 장관 제의를 거절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대신 아직도 민간 부문에서는 한국에 기여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주변에서는 그가 인사청문회가 열리기도 전에 장관직 업무수행 능력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자신을 둘러싸고 사실이 확인되지도 않은 유언비어들이 나돌면서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오로지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자신의 의지가 왜곡되는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을 보면서 매우 당혹해 했다고 한다.

진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하자 진나라의 종실 사람들과 대신들이 진 나라 출신을 제외한 다른 제후국 출신의 신하들은 신뢰할 수 없으므로 쫓아내야 한다는 ‘축객(逐客)’의 상소를 올렸다. 이사(李斯)는 자신도 그 명단에 포함된 사실을 알고 진시황제에게 〈상진황축객서(上秦皇逐客書)〉라는 상소문을 올렸다.
“무릇 물건이 진(秦)나라에서 나지 않았더라도 보물로 여길만한 것이 많고, 선비가 진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진나라에 충성되기를 원하는 이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제 밖에서 온 재주 있는 이들(客)을 내쫓아 적국에 보탬이 되게 하고, 찾아온 백성을 버려 원수의 나라에 이익이 되게 한다면, 이는 안으로는 나라를 비게 하고, 밖으로는 그 원망하는 마음을 적국에게 옮겨 심게 하는 격이니, 나라가 위태롭지 않기를 바란다고 해도 그렇게 될 수 없을 것입니다.” (《史記》 列傳 李斯傳)

그가 올린 명문(名文)에 감동을 받은 시황제는 즉시 모든 빈객에게 내렸던 축출령(逐出令)을 취소했다.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라고 한다. 인사에 실패한 조직은 생존이 위협 받게 된다는 것은 역사가 늘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이다. 일찍이 자사(子思)가 지적한 것처럼, 관리를 뽑을 때 좋은 점은 취하고 모자라는 점은 버리는 된다. 더욱이 우리 사회는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기에 능력 있는 인재를 고르면서 확인되지도 않은 달걀 두 개를 소문으로 흘리면서 그를 버리고 말았다. 중국은 외국에 나가 있는 인재를 불러들여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데, 우리는 오히려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다면서 돌아오려고 하는 인재를 문전박대하며 돌려보내고 말았으니 우리 사회에 만연한 옹졸하고도 편협함을 생각하면 참으로 개탄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일을 두고 벌어지는 문제 인식의 차이나 정치적 견해의 차이는 늘 일어나는 일이다. 여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사상과 가치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정치적 입장에서 비롯되는 문제일 수도 있으며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에서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자신과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배척해서는 안 된다. 일단 새 정부의 틀을 갖추게 한 후 단점이 드러나면 개선해도 될 일이다.

동쪽으로 흐르는 황하(黃河)를 바라보고 있는 공자에게 제자인 자공(子貢)이 그 까닭을 물었다. 이에 공자는 “강물이 일만 번을 꺾여 굽이쳐 흐르더라도 반드시 동쪽으로 흘러간다(化其萬折也必東志).”고 설명하면서 군자가 큰물을 볼 때 반드시 살펴야 할 점이라고 일렀다. 《순자(荀子)》의 〈유좌(宥坐)〉 편에 실린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는 고사성어의 유래다. 

역사는 흐른다. 어떤 일이 곡절을 겪게 되더라도 결국은 원래 뜻대로 된다는 만절필동의 고사를 기억하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개인이나 집단의 작은 이익에 연연하는 옹졸하고 편협함 때문에 모여드는 능력 있는 인재를 몰아내는 어리석음으로 인해,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로부터 못난 선조로 평가받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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