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곳간이 비어간다.

기사입력 2014.01.0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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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고구려와 백제는 같은 부여계의 동족이면서도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피비린내 나는 상잔(相殘)을 벌였다. 근초고왕 24년(369년)부터 고구려의 공격으로 시작된 두 나라의 전쟁은 서로 배신과 보복, 간계와 반간계가 난무하는 치열한 싸움의 연속이었다.

371년 고구려가 다시 남침해 왔지만 이 싸움에서의 승리는 백제에 돌아간다. 전력 면에서 열세였던 백제가 승리할 수 있었던 데는 간첩 사기(斯紀)가 있었다. 원래 그는 백제의 고위관료로서 왕의 측근이었다. 대외교섭과 해상교역에서 책사로 활동하다가 왕이 타는 말의 말굽을 상하게 하는 죄를 짓고 고구려로 도망갔다. 그리고 이 때 다시 백제로 귀순하면서 고구려군의 군사기밀을 근초고왕에게 제보한다. “고구려 군사가 비록 많기는 하나, 주력인 적기부대(赤旗部隊)를 제외하면 모두 숫자만을 채운 엉터리 군사일 뿐입니다.(《삼국사기》근구수왕조).” 사기(斯紀)의 제보에 따라 백제군은 대대적인 반격에 나선다. 마침내 고구려군의 주력인 적기부대를 공격하여 격파하고 고국원왕까지 죽이면서 평양성을 함락시킨다.

크고 작은 다툼을 이어가던 두 나라는 장수왕이 즉위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만주일대를 장악하면서 중원을 위협하던 광개토대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그는, 본격적으로 백제 공략에 나선다. 그 전략수립의 중심에 이번에는 간첩 도림(道琳)이 있다. 
 
《삼국사기》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장수왕이 백제를 도모하고자 간첩을 구하니 승려 도림이 응모했다. 그는 거짓으로 죄를 짓고 도망하여 온 것과 같이 하여 백제로 들어왔다. 신묘한 경지에 이른 바둑실력으로 도림은 백제 개로왕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는 기회를 보아 왕을 꼬드긴다. ‘존귀하고 고상한 위세를 떨쳐 왕의 권위를 보여 주소서.’ 어리석은 왕은 그의 말을 좇아 궁실과 누각을 화려하게 쌓고, 이미 죽은 부왕의 곽을 화려하게 만들어 다시 장사지냈으며, 성곽과 제방공사에 백성들을 동원했다. 계속되는 대형 공사에 나라 곳간은 비어갔고 백성들의 생활은 점점 도탄에 빠져갔다. 이 때문에 ‘나라의 위태로움은 알을 쌓아 놓은 것보다 더 심했다(是以倉有虛竭 人民窮困 邦之陧杌 甚於累卵)’”.

간첩 도림이 도망쳐 와서 이런 사실을 보고하자 장수왕은 쾌재를 불렀다. 대기하고 있던 3만의 고구려군은 일시에 백제 한성(漢城)을 쳤다. 백제군은 이레 밤낮을 싸우며 버티었지만 중과부적이었다. 개로왕은 필사의 탈출을 시도하다가 고구려 장수 재증걸루(再曾桀婁)와 고이만년(古尒萬年)에게 사로잡혔다. 이 두 사람이 누구인가. 둘 다 백제에서 죄를 짓고 고구려로 망명한 배신자들로서, 함께 고구려군의 선봉에 섰던 인물이다. 걸루는 말에서 내려 개로왕에게 절한 뒤 얼굴에 침을 뱉고, 아차성(阿且城)으로 끌고 가 목을 쳤다.

간첩의 말 한마디에 속아 재정을 탕진하면서 국가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만들고, 민심의 이반을 불러일으켰던 개로왕은 뒤늦게 후회했지만 이미 형세는 돌이킬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나라를 등진 배신자들의 손에 그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백제의 국운은 이때부터 완전히 기울었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하여 나라의 흥망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것은 국가재정의 파탄이다. 서민경제가 무너져 먹고살기가 막막해지면 인심은 흉흉해질 수밖에 없다. 달콤한 유혹과 선동이 난무하면서 이를 진압하는 공권력이 동원되면, 자연스럽게 불순세력에 의해 정당방위를 가장한 대중적 선동과 폭력이 등장한다. 간첩은 늘 거기로 파고들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어떤가. 여야가 재정 건전성은 도외시한 채 표심을 겨냥한 친서민 정책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면서 복지예산은 늘어만 간다. 도로나 항만, 산업단지 시설 등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축소하고 그 대신 기초연금, 무상보육 확대, 육아수당 지급 대상 확대, 반값 등록금, 서민 의료비 경감, 무상급식 확대 등 서민을 위한 예산을 늘리기 위해 여야가 경쟁적으로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가안보를 위해 꼭 필요한 국방예산까지 줄여가면서 복지예산을 늘이려고 하는 데는, 우선은 선거에서 표를 얻어 보겠다는 얄팍한 계산이 숨어 있다.

문제는 여야 모두 서민예산을 확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구체적인 재원 마련 대책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서울시가 2015년경에는 무상보육과 기초연금 등 각종 복지수당을 제때 지급할 수 없는 ‘복지 디폴트’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자체 분석 결과를 발표한 것을 보면, 사태의 심각성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증세나 지방세수 확대 등 추가 조치 없이는 2년 안에 복지 공약을 지킬 수 없는 날이 온다는 얘기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복지 공백 시점이 훨씬 더 빨리 올 수도 있다.

게다가 정부가 도덕적 해이에 빠진 공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하면서 그동안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상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민들은 공기업들이 하나같이 주먹구구식 사업방식으로 인한 예산낭비와 지나친 복리후생을 비롯한 한심한 경영실태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국민의 세금이 줄줄 새는 현장을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나랏돈이 새는 곳이 어디 이뿐인가. 통합진보당에게 올 4분기 국고 보조금 6억 8천 여 만원이 지원되었다. 통진당이 2011년 12월 창당 이후 지금까지 받은 국고보조금이 100억 원을 넘었다. 뿐만 아니다. 대선 후보를 가장하여 국민을 속이고 27억 원을 받아 챙긴 그들이다.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고 전복하려는 종북세력에게 아까운 국민의 세금이 그것도 합법적으로 지급된 것이다. 나라의 곳간은 과연 화수분인가?

북한이 “애국역량”이라고 지칭하는 종북세력. 그들이 지속적으로 외치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무상복지”다. 튼튼한 나라 재정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말한 적이 없다. 이들이 앞에서 “왜 돈을 풀어 모두가 잘 먹고 잘살게 하지 않느냐”며 선동하고 표심을 걱정하는 선량들이 눈치를 보는 사이에, 목적대로 ‘무상복지’에 불을 붙이는 데 성공했다. 이제 수레바퀴가 구르기 시작했으니 곳간이 비는 것은 시간문제가 되었다. 사회 곳곳에 간첩이 득실거리는 형국이니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인지조차도 구분하기 힘든 정국이 되었다.

어느 때, 어느 나라에서건 간첩은 늘 있기 마련이다.《손자병법》의 ‘용간편(用間篇)’에는 다섯 종류의 간첩이 나온다. 연줄이나 동향을 이용하여 적정을 탐지하는 인간(因間), 적의 관리를 포섭하여 간첩으로 이용하는 내간(內間), 적의 간첩을 역이용하여 아군 간첩으로 쓰는 반간(反間), 목숨을 걸고 적지에 잠입하여 허위정보를 주는 사간(死間), 그리고 적지에 잠입했다가 돌아와 적정을 보고하는 생간(生間) 등이다. 이 다섯 가지 간첩을 쓰고도 발각되지 않는 것이야말로 ‘신기(神紀)’라고 했다. 지금 우리는 어떤가. 알고 있으면서도 눈 뜨고 속고 있다.

중국 전국시대 때 위(魏)나라 공자로 불린 신릉군 무기(无忌)가 위왕과 바둑을 두고 있을 때 변방에 봉화가 올랐다. 조나라 군대가 쳐들어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왕은 바둑판을 밀치며 대신들에게 대책을 명했다.

이때 무기가 “조나라 왕은 사냥을 할 뿐 침략하려는 게 아닙니다.” 하며 바둑이나 마저 두자고 했다. 왕이 “어떻게 그걸 아느냐?”고 묻자, 무기는 “신의 빈객 중에 조나라 궁정에 정보원을 가진 자가 있어 조나라 왕의 동정을 알고 있습니다.” 하고 답했다. 이 일로 위왕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를 따르고 있는지, 그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를 알았다. 그래서 위왕은 그에게 나랏일을 온전히 맡기길 꺼렸다. 그의 능력이 두려웠던 것이다.《사기》〈위공자열전〉이 전하는 내용이다.

오늘의 우리 상황은 하나하나가 상대가 보낸 간첩이 온갖 명분을 만들어 가며 합법적으로 날뛰는 개로왕 시대의 재판이요, 위무기(魏无忌)의 손바닥 위다. 간첩 사기와 도림, 배신자 재증걸루와 고이만년. 달라진 것은 그들과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아는데도 처벌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또, 이들에 의해 우리의 내부 움직임이 실시간으로 적국에게 보고되는 데도 막아내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 된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비어가는 나라 곳간. 우리가 이렇게 갈라져서 싸우고 서로 물어뜯으며 나라 곳간을 비우기에 골몰하는 동안, 이를 지켜보며 바둑을 두는 척, 어느 때보다 더 크게 박장대소하는 저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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