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매인 심정섭, 몸은 피곤해도 새벽을 여는 마음은 늘 새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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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들의 부산한 움직임과 뱃고동 소리, 아줌마들의 목청 돋우는 소리, 중매인들의 발 빠른 움직임과 각종 화물차와 활어차의 소리가 울려 퍼지는 어판장. 갈매기들이 넘실넘실 춤을 추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배들의 입출항. 장화와 고무장갑을 끼고 큰 대야와 손수레를 이고 끌고 다니는 우리네 어머니들은 그렇게 자식들을 키워왔다.
배들이 들어올 때마다 각종 해산물들은 경매를 통해 가격이 형성되고 입찰자가 정해진다. 죽변 어판장에는 죽변수협 소속 15명의 중매인이 활동을 하고 있다. 이중 가장 젊은(?) 중매인 심정섭(죽변상회, 66년생)씨를 23일 오전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어판장의 활기를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판장에 젊은이들이 별로 없어 아쉽다'는 선배님의 말씀으로 인연 맺어
죽변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에요. 어릴 때의 추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지요. 죽변하면 바다와 항구가 먼저 떠오르지만 집안에 어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우리세대의 많은 이들이 그러했듯이 객지 생활하다가 90년 여름쯤 고향에 다시 돌아왔어요.
그때 가깝게 지내던 대선배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장래는 충분히 있는데)판장에 젊은이들이 별로 없어 아쉽다'고, 술자리에서 하신 얘기였는데 귀에 남았어요. 중매인이 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전혀 몰랐죠. 며칠 고민을 하다가 그 선배님을 찾아뵙고 ‘방법론’에 대한 조언을 구하게 되면서 이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아마 그때가 93년 후반기쯤이에요.
그 당시 가정을 꾸리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철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돈을 얼마만큼 버느냐 보다도, 일을 하면서 느껴지는 것에 보람을 느꼈어요.
(중매인을 하기 전까지)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나의 땀과 노력으로 버는 돈이어서 일 자체에 재미도 붙게 됐고요. 이때 담배도 3년 정도 끊었고, 술은 마실 시간이 없다고 하는 것이 맞겠네요. 생각해보면 정신없이 바빴었어요. 또 항상 잠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새벽녘에 활어차를 몰고 가다 휴게소에서 잠깐 눈을 부치면서 집사람에게 전화로 깨워줄 것을 부탁하고 잠을 청했지요. 아내도 덩달아 고생 많이 했죠. 나는 밖에서, 집사람은 안에서...
중매인은 어민과 소매인의 매개자 역활을 하는 중,도매인
중매인은 수협에 소속된 중·도매인이라고 보면 됩니다. 어민들이 잡아온 각종 해산물들을 경매를 통해 입찰한 다음, 일정한 수수료를 부과하고 각종 횟집 등 소매인에게 판매하는 매개자 역할입니다. 또 중매인과 일반 소비자와의 차이는 물건을 보는 안목이라고나 할까요.
예를 들어 같은 날 같은 시간에‘대게’입찰을 한다고 해도 가격이 다양하게 형성돼요. 가격차는 결국 상품의 품질에 대한 차이라고 보면 되죠. 일반인들이 보면 거기서 거기 같은데, 중매인들은 한눈에 보면 좋은 상품인지 아닌지 바로 구분이 돼요. 어민들에게는 좋은 품질의 상품을 더 높은 가격에, 일반인들에게는 좋은 품질의 해산물을 제대로 된 가격에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간자 역할이라고 보면 되지요.
저도 햇수로는 10년을 훌쩍 넘겼네요. 중매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느 것이 품질 좋은 생선인지)고기 보는 법을 배우고, 유통과정도 배워야 되고 거래처를 뚫고 관리하고 지속적으로 연결해 나가는 방법들을 익혀야 돼요. 중매인도 ‘장사’에요. (이런 다양한 방식들을)빨리 깨우쳐야 된다고 봅니다.
오징어 성수기 때가 가장 바쁘고 재미있어...
한창 열심히 일하고 정신없이 바쁠 때는 ‘오징어’성수기 때입니다. 그날그날의 활어 공급을 위해서는 새벽 3시쯤에 조업 중인 오징어 배와 교신을 하고 물량이 어느 정도 되는지 파악해야 돼요.
주문한 양과 어획량을 맞추기 위해서는 많은 배들과 일일이 연락을 해야 돼요. 그러다가 새벽 5시 반이면 첫 경매를 시작으로 9~10시까지는 활어 공급 때문에 정신이 없어요. 한숨 돌리고 계속해서 ‘오징어 선어’ 부분에 대해 입찰을 하다보면 오후 5~6시 경에 일을 마치는데, 거의 몸은 물먹은 솜처럼 파김치가 돼요.
저녁 9시가 넘기 시작하면 눈이 감기기 시작했어요. 보통 사람들은 이 시간에 술도 한 잔 하면서 많이 움직일 시간이잖아요. 사람(친구) 만날 시간도 술 마실 시간도 없었죠. 또 그 다음날 새벽부터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쩌면 자연스런 현상이었죠. 이 일을 시작한 93년부터 6~7년간은 정신없이 살았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최고의 경매 가(價)는 밍크고래예요. 3번 정도 낙찰 받았는데, 3천 1백만원이 가장 큰 액수였지요. 울진은 고래소비가 적어 고래들은 대부분 포항의 죽도시장이나 울산의 방어진, 장승포쪽에서 사가는 실정이에요.
사람 많이 아는게 중요하고도 필요, 유통이 관건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거래처를 확보하고 관리하며 신용을 쌓아가는 ‘유통문제’인 것 같아요. 현재 서울 노량진이나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은 위탁판매를 하고 있고 대구, 부산, 전라도 군산, 광주, 충주 등 전국적으로 유통망이 연결돼 있어요. 지금까지 연결될 수 있었던 것도 짧은(?) 기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운(運) 때가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는 생각이에요.
거래를 트고 관리하는 것도 몇 배 어렵고 힘들지요. 요즘 경기불황으로 해마다 거래처가 바뀌기도 해요. 우리들 일이 외상거래도 하고 액수도 큰 편이에요. 새로운 거래처가 생기면 각 포구의 중매인과 서로 정보교환을 통해 해당 업체를 신용평가 합니다. 전국적으로 포구의 중매인들을 서로 알고 지낼려고 해요. 사람 많이 아는 게 중요하고도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한편 2년 전에 씁쓸한 기억이 있어요. 거래처 한군데에 6천 2백만원을 떼였어요. 아깝지 않다고 하면 그것이 거짓말이겠죠. 한 해 농사를 다 날린 셈이니까요... 실망감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죠. 내 돈이 안되려니 그런 일이 생겼다고, 깨끗이 잊어버리려고 노력도 많이 했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먹고 과감히 잊어버렸어요. 연연해했으면 다른 일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을 거고 제대로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고나니 지금은 오히려 일을 더 열심히 할 수 있고 속은 편해요.여건이 되면 더 많은 후배들과 땀 흘리고 싶어

앞서 얘기했지만, 중매인도 장사예요. 지금 같이 두 명의 후배가 열심히 일을 배우고 있어요. 여건이 좀 더 나아지면 후배들 몇 명을 더 쓰고 싶어요. 사회생활에 대한 조언도 할 수 있고, 열심히 일하다가 더 좋은 직장이 있으면 그쪽으로 옮길 수도 있고요. 저도 지금 더 많이 배워야 되겠지만 냉동쪽으로도 일을 해볼까 구상중이에요.
어판장이 자신의 성격에 맞다면 사실 남자로서 재미가 많아요. 활동적이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어요. 여명이 트기 전부터 정신없이 일을 하다보면 머리도 맑아지고 골치 아픈 것도 잊어버릴 수 있어요. 삶의 활기를 몸소 느낄 수 있는 곳이잖아요?
저도 몸은 피곤해도 노력해서 땀 흘려 번 돈인 만큼 값어치도 남달랐고 마음의 위안을 많이 얻었어요.
올해 같은 경우는 작년에 비해 위판 실적이 지극히 저조한 편이에요. 죽변 어판장은 뭐라해도 오징어 성수기일 때가 가장 바쁘고 재밌어요. 다음으로 대게와 복어가 뒤를 이어요.오징어문제가 심각합니다. 중국트롤어선문제도 있고,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어서 답답하지요. 그러나 바다 일을 다 알 수는 없어요. 해류를 따라 오징어 떼들이 나타날 수도 있는 일이거든요. 사실 어획량이 늘어나는 만큼 지역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큽니다. 어판장에 연관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돼 있잖아요. 한편 정책적으로도 죽변항의 규모를 1종항으로 확대시켜야 된다고 봐요. 지금도 외지어선이 많이 들어와서 위판을 하고 있는 실정이거든요. (지역경제가)활성화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들이 진지하게 고민되고 실행됐으면 좋겠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오징어배의 불빛이 밤바다를 환하게 밝혔다. 밤새도록 조업을 하면서도 만선의 기쁨에 어민들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바다로 향했다. 그만큼 어판장은 전국 각지로 배달하는 활어차로 북새통을 이루기도 했다. 포구와 해안가의 도로변에 늘어선 말린 오징어들은 또 다른 볼거리였다.
활기가 넘치는 항구는 사람들에게 활력을 불어 넣어 준다. 심신이 지친 사람이 새벽녘 어판장에 나가 그들의 삶에 대한 치열함과 역동성을 느끼며, 힘을 얻을 수 있는 활기찬 어판장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