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전국학생양성평등글짓기 대회, 기성중 김현희 학생 ‘우수상’ 수상

기사입력 2006.09.09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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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인적자원부가 여성주간(7.1~7.7)을 기념하고 학생들의 양성평등 의식을 높이기 위해 개최한 ‘제6회 전국학생양성평등글짓기대회’에서 기성중 김현희(2학년) 학생이 우수상(교육인적자원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김현희 학생은 “할머니 산소에 손자 이름만 있고 손녀들의 이름이 없는 것, 딸만 세 명을 둔 아빠가 속 상해하시는 것 등을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면서「편견을 버리면 양성평등이 보인다」는 주제를 잡게 되었다고...

“책은 한 달 평균 5권 정도를 읽으며, 하루하루 읽은 만큼 독서노트를 기록한다”며 평소에도 꾸준히 글쓰기 연습을 병행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창가의 토토(구로야니기 테츠코 지음)’가 기억에 남는 책이라고...
이번 글짓기대회는 지난 5, 6월에 각 학교와 교육청에서의 심사를 거쳐 전국 시·도교육청에서 총 102편의 작품이 교육부에 추천되어 최종 심사를 받았다. 
다음은 전문내용이다.

'편견을 버리면 양성 평등이 보인다
 '        / 글.기성중학교 2학년 1만 김현희

 

재작년 10월,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죽음은 두 가지 면에서 내 인생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슬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첫째는 할머니의 죽음 그 자체이고, 또 하나는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느낀 나의 ‘사회적 성’에 대한 슬픈 깨달음이 그것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할머니가 임종을 맞으실 곳을 정하고 있었다. 딸네 집은 안 되는 것이라며 일단 제쳐두고, 우리 집과 큰집이 할머니를 모실 집으로 마지막 후보에 올랐다. 그러나 결국 할머니를 모실 집은 큰집으로 정해졌다.

할머니께서 우리 집을 거절하시고 큰집을 택하셨기 때문이었다. 나는 우리 집에서 할머니를 모실 수 있다는 것이 기뻤고, 우리 부모님도 할머니를 모시고 싶어 하셨지만 할머니가 큰집을 택하신 이유는 바로 우리 집에 ‘아들’이 없기 때문 - 우리 집은 나를 비롯해 모두 3자매이다.

다른 것도 아닌 ‘아들’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집에서 생의 마지막을 마감하기 싫으시다니……. 나는 다시 한 번 내가 ‘아들’이 아닌 ‘딸’이라는 사실을 시리도록 깨닫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태어났을 때도 기대했던 아들이 아니라서 속이 상해 술을 드셨다는 이야기가 떠올랐고, 그 순간 딸로 태어나버린 나 자신이 참 못났게 느껴졌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데 환영을 받느냐 못 받느냐가 ‘성별’에 달려 있다는 것은 우스운 일인데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할머니는 생의 마지막을 큰집에서 보내셨고, 그것으로 폭풍 아닌 폭풍은 지나갔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 할머니의 산소를 찾았을 때 나는 또 한 번의 마음 속 폭풍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할머니의 산소 앞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었고, 거기에는 할머니의 자식들과 손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도 내 이름이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하고 비석을 찾아보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내 이름은 없었다. 알고 보니 거기엔 남자들의 이름만 적혀 있었다.

너무나 충격이었다. 고모들은 할머니의 자식이 아니었나? 나는, 언니들은 할머니의 손녀들이 아니었던가? 그건 마치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기분 같기도 했고,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느낌이기도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남녀차별이 이런 것이구나. 여자는 호적에도 오르지 못하고, 시집 가버리면 끝이라던 그 이야기들이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남성과 여성간의 ‘차이’와 ‘차별’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어른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 중에 ‘여자는 한 데 앉으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나는 왜 하필 여자한테 저런 말을 할까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생물학적 근거가 있는 이야기였다. 여자는 자궁 때문에 하체를 따뜻하게 보온하는 것이 좋고, 남자는 정자 때문에 너무 따뜻하지 않게 지내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남성과 여성은 신체나 생물학적 구조가 분명히 다르다. 이것이 차이이다. “나는 여자지만 남녀차별은 싫으니까 끝까지 한 데 앉아있겠어!”라고 우기는 건 어리석은 일인 것처럼,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는 분명히 존중되어야 한다.

반면 ‘남자는 힘이 세고 활발하며, 여자는 꼼꼼하고 조신하다’는 것은 근거 없는 이야기이다. 힘이 세거나 약한 것, 활발하거나 조용한 것은 개개인 간의 차이일 뿐, 남녀 간의 차이는 되지 못한다. 이러한 생각이 바로 ‘차별’의 시작이다. 찬찬히 생각을 해보면 남성과 여성은 차이가 있을 뿐이지 어느 편이 우월하다고 판단할 만한 근거가 전혀 없고, 어느 성이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이유도 전혀 없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전혀 근거가 없는 이런 차별을 당연히 여기며, 그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듯, 근거 없는 차별이 미풍양속이라고 되는 양 떠받들고 있으니 우스운 일이다.

남녀차별은 아주 사소한 생각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사소한 생각이지만 그 생각을 말로 뱉고, 그 말을 듣고 자라오면서 아무리 틀린 생각이라 해도 그것이 진실이라고, 거짓이라는 의심은 해보지도 못하도록 머릿속에 박혀 버리는 것 같다. 사람들이 말하는 ‘편견’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굳어지고 사라지지 않는 것 아닐까?

태어났을 때부터 “이번에도 여자야? 하늘도 무심하시지…….”라는 말을 듣고 자라는 사람과 “장군감이구나! 우리 집안에서 큰 인물이 나겠어!”라는 말을 듣고 자란 사람은 분명 자기의 성에 대한 자부심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남자라는 이유로 대접을 받거나, 여자라는 이유로 성공을 하더라도 남자보다는 좀 못해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면, 그런 생각이 틀린 것을 알고 있더라도 차츰 시간이 지나면 머리와 가슴 속에는 남녀가 차별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굳어져 버릴지도 모른다.

남녀차별로 인해 우리 사회가 겪은 손실은 엄청나다. 사회적 능력이 있는 여성의 재능과 능력이 ‘사회적 성공은 남자가 우선’이라는 편견에 스러져 버렸다. 또한 ‘남성의 직업, 여성의 직업이 따로 있다’는 편견 때문에 수많은 남성과 여성들이 자신의 진정한 재능을 펼치지 못하고 좌절해야 했다.
우리가 흔히 들어 온 많은 말과 당연하다고 여겨온 많은 것들 중에서 옳은 것과 그런 것을 구별해야 한다. 편견과 사실을 구분하고, 사실이 아닌 것과 편견을 버려야 한다. 그런 후에 남은 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양성평등은 우리가 꼭 이루어야할 중요하고 거대한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편견을 버리고 「나의 성, 너의 성」을 존중한다면 완전한 양성평등의 사회가 이룩되는 것도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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