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일구는 젊은이들 '장헌곤'

'농민들이 이해해 주고 배려해 주면 고맙지요...'
기사입력 2006.10.0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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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결실의 계절이다. 굵은 땀방울과 갖은 정성으로 자식을 기르듯 돌봤던 곡식들이 영글어 가고 있다.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우리네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길도 분주히 움직인다. 

이에 덩달아 어쩌면 농사짓는 사람보다 더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관내 수많은 농기계들의 수리와 A/S를 담당하는 이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농기계 수리는 각 읍·면의 농협과 농업기술센터, 몇 개의 농기계 대리점에서 도맡아 담당하고 있다. 여섯 번째의 주인공인 대동공업 울진대리점(읍남리 소재)에서 10년째 근무하고 있는 장헌곤(77년생) 기사를 만났다.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기라 다소 억지를 부려 22일 저녁 8시가 조금 넘어선 시간에 그의 작업장인 A/S센터로 향했다. 저녁 식사를 위해 인근 식당에 음식을 주문해 놓은 상태였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수저를 잡은 손이 굳은살과 기름을 먹은 듯 또래의 젊은이들보다 훨씬 단단하고 거칠다는 느낌이 들었다. 짧은 인생이지만 그의 삶을 얼핏 엿볼 수 있는 것 같아 마음이 가라앉았다. 2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 이야기는 밤이 깊어서 끝을 맺었다.


울진종고 졸업 후 10년 동안 A/S기사로 ...

농기계 수리를 96년도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울진종고 농업과 3학년 재학 중이었어요. 학교 특별활동 시간에 교내에 마련됐던 농업기계실에서 친구들과 이런 저런 기계를 많이 만졌습니다. 특별히 흥미가 있었고 재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네요. 그 당시 3학년 실업과(농·임·축산학과) 학생들은 실습을 나갈 수 있었는데, 저는 지금 근무하고 있는 여기로 왔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군복무 대신 (정확한 명칭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농업 관련 방위산업체’에 근무하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기간이 3년이었는데, 지금 일하고 있는 이곳에서 마쳤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제 서른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10년이란 시간이 어떻게 지난지도 모르게 흘렀던 것 같습니다. 젊은 나이에 그만두고 도시로 나갈 볼까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하면 그게 거짓말이겠죠. 농민들을 위하는 마음도 있었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저를 믿고 구입한 농기계들에 대한 책임감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여건이 허락할 때까지 A/S를 해드려야 하는 사명감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고 뭐 그런 것 있잖습니까? 또 객지에 나가면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기에 망설임 같은 것도 마음 한 구석에 있었던 것 같고요.(웃음)


모내기철과 벼 벨 때는 몸이 두개라도 정신없어...
모내기철과 나락(벼) 벨 때가 특히 바쁩니다. 특히 올해는 추석과 맞물려 벌초 때문에 예초기와 관련해 더 정신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희 대리점에서 농기계를 구입한 곳이면 관내 어디든 출장수리를 가야합니다. 그러다보니 A/S 문의와 관련해 휴대폰도 덩달아 쉴 틈이 없어요. 하루 50통화 정도는 기본입니다. 출장을 다니다 보면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곳이 많거든요. 그런 곳에 있다가 나오면‘왜 전화가 안 되느냐고...’농민들에게 핀잔을 듣기도 합니다. 

한편으론 미안하지만 또 씁쓸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콤바인이 이상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가보면 이게 얼마나 걸릴지 모르거든요. 점검을 하다보면 애초에 한 시간을 예상했더라도 두 세 시간은 족히 걸릴 때가 있거든요. 이러다보면 오늘 당초 예상했던 다른 곳은 자연히 지연이 됩니다. 왜 빨리 안 오냐고 항의 아닌 항의를 받지만, 뚜껑을 열어두고 갈 수는 없잖아요. 이해해 주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따지고만 들면 답답합니다. (농기계 수리하는)다른 곳도 마찬가지겠지만 저희들은 농사처럼 농한기라는 것이 없습니다.

 비철(농사철이 아닐 때)일 때는 이것저것 미뤄뒀던 기계들도 손 봐야 하고, 새로운 제품이 출시되면 그와 관련해 교육을 받으러 본사(대구 소재)에 갔다 와야 합니다. 조금만 과장을 더하면 일 년 내내 공구를 손에서 놓는 날이 손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한 번 고친 농기계가 다시 A/S 올 때는 미안한 마음이...



농기계는 소모품과 관련한 A/S가 많은 편입니다. 논마다 사정이 다 틀리거든요. 물이 많이 있는 논, 빠지는 논, 누워있는 벼를 벨 때도 있고 하여간 농기계는 작업여건이 다르거든요. 한편으론 농민들의 사용 부주의에 의한 고장이 좀 많은 편입니다. 

기계를 다루는 사람들이 우리들(정비 기사)의 반 정도만 되면 좋죠. 그렇게 되는 것이 현실 여건상 힘들지만요. 농기계도 상당히 고가(高價)이거든요, 관리를 잘해줘야 합니다. 농기계도 요즈음은 자동화시스템이 많이 도입이 돼 있습니다. A/S를 나가게 되면 정비교범을 참조하지만 아무래도 이쪽(자동화 시스템)은 좀 어렵습니다. 답답하다보니 본사 쪽 정비기사들과 전화로 상황을 설명하고 자문을 구하기도 하고요. 본사에서 여기까지 올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다보니 거의 혼자 해결을 해야 됩니다.

한편으론 의뢰가 들어온 농기계를 발 빠르게 처리 못해줄 때는 몸은 하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 이런 것이 힘들고 미안합니다. 제 몸이 피곤할 때도 있지요, 장비를 사용하지 못하고 버거울 정도로 무거운 것을 혼자 끼우고 빼고 해야 될 때가 간혹 있거든요. 또 한 번 고쳤는데 그 기계가 다른 곳이 고장이 나서 다시 들어올 때는 저 스스로 (물론 아직 배우는 시기고 배워야 될 것이 많고 기술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기술이 많이 모자라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도 들고 미안하고 그렇거든요. 하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시 시작해야 지요. 
 
반면에 추수철이 지나고 정비한 기계에 대해 탈이 났다는 소식이 없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지나가는 길에 A/S센터에 손수 찾아와 덕분에 기계를 잘 사용했다며 ‘고맙다’라는 말 한마디에 그동안의 힘들었던 것도 많이 잊어버리게 됩니다. 주제 넘는 말 입다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열심히 농사를 짓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고향을 떠나고, 귀농한 누군가가 떠난 자리를 대신하고... 한편 저를 잘 챙겨주던 형님 같은 분이 있었거든요, 정도 많이 들었고 마흔을 갓 넘긴 젊은 농사꾼 이였는데 갑작스레 죽음을 맞았습니다. 가슴이 많이 아파오더군요...

농기계도 자동차만큼 애정을 가지고 관리해야...

농기계는 사후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흔한 얘기로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이 세 가지라도 잘 지키면 농기계 수명이 달라집니다. 사용하고 바로 방치하면 수명이 상당히 단축될 수 있거든요. 콤바인이나 트랙터 같은 농기계는 결코 가격이 만만치 않거든요. 오히려 왠만한 중형승용차보다 비쌉니다. 그러나 A/S를 나가보면 차를 관리하는 정도까지는 관리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애정을 가지고 차만큼 관리가 필요합니다. 물로 흙 같은 것을 깨끗이 씻어 주고, 비는 맞추지 말아야 합니다. 직사광선도 되도록 피하는 게 좋고요.

한편으론 농촌에서 농기계를 보관할 정도의 공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상당히 드물거든요. 그러니 자연스레 소홀해지는 것 같습니다. 또 장기간 사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나사와 체인 등 많이 움직이는 부위의 부품들에 대해서는 기름을 많이 쳐줘야 합니다. 그리고 콤바인은 청소를 하지 않으면 탈곡하고 낟알이 남게 되거든요. 그 상태로 겨울을 나다보면 쥐가 전선을 갉아버립니다. 이런 경우는 고치기가 더 힘들어요. 어디를 갉았는지 찾는 데도 한참 걸리거든요. 종종 경험하곤 했습니다.

출장을 다니면서 촌(村) 어른들을 볼 때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 고생을 하셔서 자식을 위하는 마음을 보면... 저도 A/S를 하는데 있어서 농민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노력은 하지만, 전적으로 농민들의 입장에서만 설 수 있는 위치도 아니거든요. 때론 심정적으로 복잡하고 그렇습니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며...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못 박아 장담할 수는 없지만, 하는 동안은 최선을 다하겠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겁니다. 요즈음은 벌초하고 추수하고 맞물려 거의 일요일도 없습니다. 주말과 휴일을 이용해 객지에 나가있던 자식들과 함께 농사일을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농민들이 바빠지는 만큼 저는 몇 배 더 바빠집니다. 군 전체를 다녀야 하는데, 온정에 있다가 북면에서 연락이 오면 시쳇말로 환장합니다. 이런 저런 사정을 헤아려 주시는 분도 많지만, 애태우지 마시고 절 조금만 더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인터뷰 중간 중간에도 A/S 문의전화가 걸려오곤 했다. 밤늦은 시간이지만 내일 당장 기계를 사용해야 하고, 가령 벼 건조기가 작동이 안 되면 농민들의 그 답답함이야 말로 무엇 하겠는가.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 피곤해 보이는 장기사가 양해를 얻기 위해 전화하는 목소리가 힘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혹자의 말처럼 인간은 한자의 사람 ‘人’자처럼 서로 의지하고 버팀목으로 살아가는 것이 세상사 아닌가. 본인 스스로의 불이익을 다소 감수하며 타인을 이해하며 헤아려 주는 마음 씀씀이가 있다면 누군가에게는 작은 힘의 보탬이 된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얻어지는 것은 없다. 알차게 여문 벼가 고개를 더 숙이는 만큼 결실에 대한 감사함과 겸손함을, 소홀히 하기 쉬운 주위의 이웃들에게 눈을 돌려 봄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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