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다를 비추며 안개의 나팔을 불며

기사입력 2006.10.0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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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민요로 고은이 작사한 ‘등대지기’라는 노래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비바람이 불고 험난한 태풍이 몰아치는 험한 밤에도 등대의 불빛은 꺼지지 않고 밤바다를 밝히며 외로운 뱃길을 인도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잊고 산다.
밤바다위에서 태풍에 휩쓸린 배가 등대에서 비추는 아스라한 불빛을 발견했을 때의 그 느낌을 ...




불쑥 튀어나온 용추곶(串)의 긴 그림자가 바다를 기다랗게 끌고 오는 그곳, 파도의 노래를 따라 별빛과 달빛이 갯바위에 은은히 깔리는 그곳에 죽변등대가 있다.
등대는 바삐 살아가야만 하는 현대인들에게 지나온 자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여유를 준다.

섬에 자리하든 육지에 자리하든 등대는 하나의 섬일 뿐이다. 숱한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오히려 외로움에 지칠 때쯤 등대를 찾아 나서보자.
포근한 자유를 갈망하다 보면 이내 외로운 등대와 바다는 하나의 이미지로 또 목적지로 우리들에게 간절하게 다가온다.
울진의 북쪽, 행정구역상으로 경북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 산 1번지에 죽변등대가 우뚝 서 있다.

죽변(竹邊)이라는 지명은 옛날부터 자생하는 소죽(小竹)이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써, 자생 소죽은 신라시대부터 화살을 만드는 재료로 긴요하게 이용되어 왔고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군사 무기용 재료로 특별하게 보호받았다.
지금도 여전히 용추곶 언덕에 오르면 탁 트인 바다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깎아지른 듯 한 절벽이 나타나고, 신우대가 가득 숲을 이룬 절벽을 새하얀 파도가 때리는 모습은 장관을 연출한다.

죽변등대를 사방에서 둘러싸고 있는 신우대 오솔길을 지나 대가실로 내려가는 초입에는 흰 벽에 빨간색 지붕의 교회와, 목조 건물로 흰 벽과 청회색 지붕의 일본식 집, 나무로 만들어진 선착장, 흰 벽으로 꾸며진 어부의 집, 흰색의 모형등대 등 2004년 3월 첫 방송을 시작했던 SBS 주말드라마‘폭풍속으로’ 오픈 세트장이 완만한 굴곡을 이루고 있는 해안선을 따라 동화 속 그림처럼 잔잔하게 펼쳐져 있다. 지리적으로 E:129°25.9′ N:37°03.3′에 위치한 유인등대인 죽변등대는 동해바다를 지나는 숱한 선박들의 길라잡이로 1910년 11월24일 석유등으로 첫 점등을 시작했다.

1959년 4월에는 비상발전기를 설치했고, 1970년 4월에는 무신호기인 전기 폰을 설치하여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어 1979년 12월에는 등대에서 불을 비추는 기계인 등명기(燈明機)를 바벨식 4등급(610m/m)으로 개량했다. 죽변등대는 포항의 호미곶을 제외하면 우리나라 동해안에서 바다 쪽으로 가장 많이 뻗어나가 있는 등대로, 해발높이가 49.3m로서 전국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나라 동해안 항로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죽변면은 울릉도와는 직선거리상 육지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죽변등대의 등탑은 8각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이뤄져 있고, 높이는 16m에 이른다.





이런 위치상의 이점 때문인지 현재의 등대자리에는 예전부터 봉수대가 자리했고, 1904년 러일전쟁 당시에는 해상을 감시하는 망루대가 세워지기도 했다. 광파표지인 죽변등대의 불빛은 20초에 한번씩 반짝거리고 약 37km까지 불빛이 전달된다. 또 안개나 폭우가 심한 날 사용되는 음파표지인 무신호기(霧信號機)는 매 50초마다 1회 취명하고 음이 도달하는 거리는 약 5km이다.
죽변등대에는 등탑 이외에도 직원들의 숙소와 사무실, 비상 동력실, 창고 등의 부속 건물이 딸려 있다.

현재 죽변등대에는 소장 1명과 직원 2명 등 포항지방해양수산청 항로표지과 소속 직원 3명이 연중 근무하고 있다.
1910년에 세워진 죽변등대의 등탑은 1907년 프랑스인이 설계하고 일본인들이 세웠는데, 한국 전쟁 때 폭격으로 렌즈가 파괴되어 한동안 등대기능을 상실했었지만 1951년 10월 일본제 렌즈로 교체되었다.

6.25 전쟁 당시 폭격으로 망가졌던 죽변등대 보수공사에 직접 참여했던 김영한(77세. 죽변면 4리)옹은 “6.25 사변 때 북괴군이 죽변 앞바다 군함 위에서 함포사격을 했는데 죽변등대 윗부분에 세숫대야만한 구멍이 뚫렸었다. 작은 총알자국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런데도 일본 기술자들이 얼마나 잘 지었는지 끄떡없더라. 그때 직원들이 사용하던 관사도 폭격으로 박살나서 전쟁이 끝나고 다시 지었다.”고 증언한다.

그는 또 “당시 죽변 방파제 공사를 하던 업체에서 등대 보수공사를 맡았는데 기술자는 포항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죽변 사람들은 기술 보조자로만 참여했다”고 전해준다.

죽변등대의 등탑은 그 역사성과 미적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2005년 9월 경상북도 지정 기념물 제154호로 지정되었다.
3층 구조로 이뤄진 죽변등대의 등탑 내부의 각 천정에는 원래 대한제국 황실의 상징인 오얏꽃 문양(李花紋)이 새겨져 있었다는데, 현재는 볼 수 없고 언제 누가 그렸는지 태극문양이 약간은 조잡하게 그려져 있다. 등탑은 민흘림기둥에 주두를 얹은 출입문 위로 박공(牔栱) 양식으로 되어 있고, 각층마다 달린 창문은 위치를 다르게 하여 통풍이 잘되고 비를 효과적으로 피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철재 주물로 설치된 계단은 독특한 모양으로 나선형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죽변등대의 최고 상단부 등탑 내부에는 4개의 특이하게 생긴 원형 환풍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건립 당시의 뛰어난 기술력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뿐만 아니라 죽변등대 실내의 한쪽 벽면에 설치된 도드라진 홈통에는 1층에서 꼭대기까지 레일과 케이블로 연결된 교묘한 장치가 숨겨져 있다. 이 장치에 대해 죽변등대 관계자는 “등대 초창기에는 1층에 설치된 기계장치의 태엽을 감아 놓으면 최상부에 설치된 등탑의 불빛이 밤새 태엽이 풀리는 동안 회전하고는 했는데, 이것은 그 장치들을 서로 연결해주는 케이블이 숨겨진 홈통”이라고 설명한다.

이 홈통안의 케이블과 레일은 현재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죽변등대 구내에는 1911년 일본국 수로부에서 설치한 수로측량 대리석 원표가 잘 보존되어 있다. 전문가들은 죽변등대가 항로표지의 발달사와 해양 교통 환경 연구, 시대의 변천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라고 평가하고 있다.
  

등대의 역사



기원전 4세기경 지중해를 항해하는 선박의 안전을 위해 밤중에 횃불이 타오르는 탑이 있었다는 것이 등대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다.
리비아와 이집트 주변의 아프리카 북부해안에도 리비아인들과 쿠시인들이‘불탑’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원전 280년 전에 지중해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항구 입구 인근의 파로스라는 섬에 탑을 세워서 밤낮없이 항해하는 선박들의 눈에 잘 뛰게 했던 ‘파로스(Pharos)’등대를 최초의 등대로 인정하고 있다. 

‘파로스’등대는 이집트의 프롤레마이오스 2세의 지시로 소스트라토스라는 건축가에 의해 건설되었는데, 화강석으로 쌓은 탑의 높이가 135m였고 나무를 태워서 내는 불빛이 거울에 반사되어 비추게 되는 거리가 40km에 달했다고 한다.‘파로스’등대는 무려 1600년 동안 선원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다가 1100년과 1307년에 일어난 두 번의 지진으로 무너졌다.

현재까지도 당시의 기술력으로 135m의 건축물을 쌓았던 점등이 세계의 풀 수 없는 불가사의로 남아 있다.
그렇더라도 본격적인 등대는 17세기에 들어와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 이후부터 조선 후기까지 횃불, 봉화, 꽹과리, 깃발 등을 이용하여 항해하는 선박의 안전을 도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 항로 표지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다.
세종실록(1422년)은 충남 태안군 근흥면 가의도리 앞 해상의 광장목에 지방수령이 향도선(嚮導船)을 배치해서 세곡을 실은 선박이 무사하게 통과하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근대식 등대는 19세기 말 일본과 병자수호조약(1876년)을 체결하게 되면서부터이다.
청나라와의 전쟁을 위한 사전 준비 작업으로 일본은 1883년 7월25일 우리정부에 체결을 요구한 ‘조일통상장정’에 “조선정부는 통상 각항을 수리하고 등대(燈臺)와 초표(礁標) 시설을 설치한다”는 의무조항을 명시했다.

이어 일본은 1895년 6월부터 9월까지 우리나라 연안 30개소에 항로표지 설치를 위한 위치조사와 사업계획서를 수립하고 제출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1902년 5월 인천항 팔미도·소월미도 등대와 북장자서·백암등표 설치공사를 시작하여 1903년 6월1일 팔미도·소월미도 등대, 북장자서·백암등표를 최초로 점등했으니 이것이 우리나라 근대식 항로표지의 시작이다.

 

등대의 종류
선박의 안전한 항해를 돕기 위한 항로표지는 광파표지, 형상표지, 음파표지, 전파표지, 특수신호표지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 가운데 야간에 등화를 이용하여 위치를 표시하는 광파표지를 우리는 흔히 등대라고 부른다.

등대(광파표지)는 다시 △유인등대-등대 직원이 상주하면서 광파, 음파, 전파업무 등을 수행하는 등대로서 죽변등대가 여기에 포함된다. △무인등대-등대직원이 상주하지 않고 정비원이 정기적으로 순회하면서 점검하는 형태로, 방파제 끝에 세워진 등대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등표-암초 위나 수심이 얕은 곳에 설치하여 위험을 알리는 표지. △도등-협수로 상의 항로연장선상에 2기 이상의 표지를 1조로 설치해 안전항로로 유도하는 표지. △조사등-등대에 투광기를 병설하여 암초 등의 위험구역에 빛을 투사하여 위험구역을 알리는 표지. △지향등-여건상 도등의 설치가 곤란한 협수로 상의 진입로상 등탑에 일직선으로 홍, 백, 록 3색광을 설치하여 선박이 백광을 보고 안전항로를 유지하도록 하는 표지. △등주-간단한 구조의 기둥에 등화를 설치하는 간이등대 시설. △등부표-구조물을 해상에 띄워 항로상의 가항수역과 암초 등의 장애물을 나타내는 표지 등으로 나뉜다.

현재 죽변등대는 광파표지와, 음파표지 이외에도 GPS의 측위오차를 1m 이내로 정밀하게 보정하여 이용자에게 전송하는 위성항법장치인 DGPS 전파표지 장비도 갖추고 있다.


 
 미니 인터뷰 

  죽변등대 김원도(48세) 소장



언제 입사했고, 그동안 어느 등대에서 근무했었나
1988년 10월1일 포항지방해양수산청 항로표지과 직원으로 입사했다. 입사한 후 포항지방해양수산청 본청 근무를 비롯하여 송대말등대(감포등대), 울릉군의 울릉도 등대와 도동등대, 후포등대, 독도등대 등에 근무했다. 울릉도 도동등대에 근무하다가 이곳 죽변등대로 옮겨 왔다. 죽변등대 근무는 이번이 처음이다.


죽변등대 직원들이 관리하는 등대는 총 몇 군데인가
죽변등대에 상주하는 직원 3명이 죽변등대를 포함하여 죽변항 동·서·익제방파제 등대, 진미말등대, 오산항 북방파제 등대, 사동항 남·북방파제 등대, 화모말등대까지 9개의 등대를 관리한다. 이 가운데 죽변등대를 제외하면 모두 무인등대이다. 정기적으로 순회하면서 관리하고 있다.

등대원이기 때문에 겪어야 되는 특별한 어려움은
등대원, 흔히 등대지기라고 하는 직업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낭만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등대원은 섬에서 근무하거나 육지에서 근무하거나 외로울 수 밖에 없다. 빨래나 청소, 시장보고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일 등을 모두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신혼 때는 부부가 함께 있을 수 있지만 애들이 크면 학교문제 등으로 인해 떨어져서 지낼 수밖에 없다. 나는 고향이 안동인데 수년전 가족들이 경기도 안양으로 이사를 갔다. 등대원은 한달에 두 번 휴가를 얻는데, 한달에 두 번 가족들을 만나러 안양으로 차를 운전해서 올라간다. 

특히 독도등대 근무는 신혼부부라도 가족들을 데리고 들어갈 수 없고, 휴가도 한달 근무하고 다음 한달을 쉬는 형태여서 고생이 막심하다. 등대원들에게는 뭐니 뭐니 해도 가족들과 장기간 떨어져 지내는 일이 가장 버겁다.


죽변등대의 자랑거리는
죽변등대는 국내 등대 가운데서도 긴 역사를 자랑하는 등대이다. 현 등대 옆에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어 있는 1911년 일본국 수로부에서 설치한 수로측량 대리석 원표, 안과 밖의 원형을 비교적 깨끗하게 유지하고 있는 등대 양식 등은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다. 그런 빼어난 아름다움과 역사성을 인정받아 2005년 경상북도 지정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또한 등대 주변을 뒤덮고 있는 신우대밭은 죽변등대 뿐 아니라 죽변면의 큰 자랑거리다. 등대 동쪽을 감싸고도는 신우대밭 안의 오솔길과 오솔길에서 내려다보는 절벽과 절벽을 때리는 파도는 전국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명소로서 가치가 높다.
  
등대원으로서 가장 큰 보람은
근래 들어 최첨단 통신설비를 갖추는 선박이 많이 늘어났어도 등대는 항해하는 선박들에게 절대 필요한 시설이다. 평상시에는 물론이고 선박에 장착한 통신상태가 불량하거나 고장이 났을 때 선박들은 등대불빛이나 무신호기를 기준으로 대피도 하고 또 항해도 계속해 나간다. 안개가 심한날 무신호를 의지하여 항구로 피항한 선박의 선원들이 가끔씩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올 때 큰 보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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