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가(稅駕)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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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秦)나라의 천하통일 대업을 이끌어낸 이사(李斯)는 승상의 자리에까지 오르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장 원 섭
(경민대학교 교수)《사기(史記)》〈이사(李斯)열전〉에 보면,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탄식했다는 기록이 있다.
“나는 본래 상채(上蔡)라는 곳의 평범한 백성이었거늘, 황제께서 나의 불민함을 모르시고 발탁하셔서 이 자리에 이르렀다. 이제 신하들 가운데 나보다 높은 자가 없으니 내 부귀가 극(極)에 달했다고 할 수 있다. 일이 극에 다다르면 쇠(衰)하는 법, 이제 나는 어디에서 멍에를 벗어야 한다는 말인가(吾未知所稅駕也).”
탈가(稅駕), 즉, ‘멍에를 벗다’라는 말은 ‘수레에서 내린다’는 뜻으로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처신을 조심하라’는 의미를 가진 것으로 여기에서 유래한 고사이다. 결국 이사(李斯)는 황제가 병사한 뒤 권력다툼 과정에서 환관 조고(趙高)의 모략에 걸려들어 허리를 베어 죽이는 요참형(腰斬刑)을 당했다. 둘째아들과 함께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이사는 통곡했다.
“너와 함께 다시 누런 개를 끌고 상채 동문 밖으로 나가 토끼를 쫓고 싶지만 이미 틀렸구나(牽犬東門 豈可得乎).”
돌이킬 수 없는 삶에 대한 회한과 부질없이 권력만을 좇아 앞만 보고 달려온 무상한 인생역정에 대한 자성(自省)의 울부짖음이었다.
후세사람들은 권력욕과 명예욕에 눈이 멀어 불운을 자초한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 그의 유언을 ‘동문견(東門犬)’이라 불렀다.
진(晉)나라의 육기(陸機)는 하교(河橋)의 전투에서 패했다가 사람들의 모함을 받아 죽임을 당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유명한 삼국시대 오나라의 명장 육손(陸遜)이었다. 그는 사형이 집행될 때 고향을 생각하며 이제 다시는 학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음을 한탄했다. 그의 고향 화정(華亭)은 오늘날 상해(上海) 송강현(松江縣)의 옛 이름이다.
훗날 사람들은 옛날 일을 그리워하거나 벼슬길에 나아갔어도 큰 뜻이 좌절되어 후회하는 심정을 나타낼 때 ‘화정학려(華亭鶴唳)’라고 하여 육기의 고사를 인용하곤 했다. 송(宋)나라 때 유의경(劉義慶, 403∼444)이 후한(後漢) 말부터 동진(東晉)까지 명사들의 일화를 모아 편집한《세설신어(世說新語)》의 <우회(尤悔)>에 나온다.
이와는 대조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으로 진(晉)나라 때의 장한(張翰)을 꼽는다. 그는 성격이 자유분방하여 누구와도 잘 어울렸고 특히 글을 잘 지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일러 ‘강동(江東)의 보병(步兵)’이라고 불렀다. 강동의 보병이란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사상가이자 시인이며 죽림칠현(竹林七賢) 중의 한 사람으로 보병교위(步兵校尉) 벼슬을 지낸 완적(阮籍, 210~263)을 가리킨다.
그는 낙(洛) 땅에 들어가 제왕(齊王) 밑에서 대사마동조연(大司馬東曹掾)이라는 벼슬을 하고 있었는데, 무더운 늦여름 어느 날 아침에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보고 불현듯 고향인 오군(吳郡) 땅의 농어회와 순채국을 떠올리며 크게 느끼는 바가 있어 벼슬을 내던지고 수레를 돌려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당나라 때 이백(李白)은 세 사람의 고사를 한 데 묶어 <행로난(行路難)> 3수(首)의 제 3시에 담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陸機雄才豈自保 육기의 재주로도 스스로 한 목숨 보전치 못하였고
李斯稅駕苦不早 이사 또한 살아서 물러나지 못했네.
華亭鶴唳詎可聞 육기가 화정의 학 울음 다시 듣지 못하는데
上蔡蒼鷹何足道 이사가 어찌 상채의 매 사냥을 말하겠는가.
君不見 그대, 아는가 모르는가?
吳中張翰稱達生 오나라 장한이 잘 사는 삶을 이야기하며
秋風忽憶江東行 가을바람에 훌훌 털고 고향으로 돌아간 일을.
且樂生前一杯酒 차라리 살아생전에 한잔 술 즐길 일이지
何須身後千載名 죽은 후에 이름 남겨 천년을 빛난들 무슨 소용 있으리.이명박 대통령의 내각개편에 이은 후속인사가 인사청문회 과정을 통해 총리를 비롯하여 2명의 장관 후보자가 낙마하는 선에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그에 따른 후폭풍은 좀처럼 쉽게 가라앉을 기세가 아니다. 후보자 모두가 어쩌면 하나같이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 탈세와 같은 죄질이 나쁜 의혹을 꼬리표처럼 달고 있는지 신기할 정도이다. 오죽하면 여론마저도 이런 정도의 의혹으로 추궁하면 앞으로는 장관될 사람이 하나도 없을 거라고 개탄할 정도겠는가.
게다가 “농민의 아들, ‘촌놈’ ‘소 장사의 아들’로 태어나 돈도 없고 권력도, 배경도 없이 바닥부터 시작해 도의원, 군수, 도지사, 총리까지 왔다는 점을 강조하며 차세대 주자로 화려하게 등장했던 총리후보자마저 청문회 과정에서 껍데기만 젊었을 뿐 속은 늙고 썩은 재목임이 드러나 낙마하면서, 개각 때마다 반복되어온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에 대한 책임론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예로부터 권력은 아침이슬(朝露)이라 했다. 영롱한 모습으로 잎사귀 끝에 달려 있다가 해가 중천에 떠오르면 사라져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권력도 인생처럼 부질없이 무상(無常)한 것이라 표현했다.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자꾸만 높은 곳으로 오르려고만 애쓰는 높으신 분(?)들게 권하고 싶다. 비록 늦여름 아침에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느낀 바 있어 벼슬을 버리고 홀연히 수레를 돌려 고향으로 내려간 장한(張翰)은 본받기 어렵더라도, 누렁이를 몰고 매(鷹)를 띄우며 아들과 사냥할 때를 놓친 것을 두고 통한의 눈물을 쏟은 이사(李斯)와 고향마을의 학 울음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육기(陸機)의 고사(故事)를 돌아보기를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