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월송정(越松亭)” 사진 단독 입수···건축 양식 딴판

초익공(初翼工, 단익공)에 팔작집 형태의 정면 4칸 측면 2칸 구조···정면 5칸 측면 3칸인 현 월송정 구조와 판이
기사입력 2010.10.14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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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2층 난간···닭 모양 닮은 계자다리를 사용한 계자난간에 목재 계단도 좌우 두 개가 아닌 하나로 추정돼 
 

정자 우측 하부 기둥에 맞물려 기와 두른 토석축(土石築) 확인돼, 애초 군사용 망루(望樓) 용도로 창건 시사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월송정(越松亭). 현 월송정의 건축 양식과 판이하다

 

본지 [월간울진]에서는 지역 최초로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평해 월송정(越松亭) 사진을 단독으로 입수하여 공개한다.  

 

현존하는 월송정 사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이 사진속의 월송정 건축 양식은 1979년에 해체되어 1980년에 새로 지어진 현재의 월송정 건축 양식과 여러 부분에서 다른 점을 보이고 있어 특히 주목을 끈다.  

 

이런 점은 1980년에 신축되는 과정에서 철저한 고증을 거쳤다고 평가되어온 월송정은 물론, 울진 지역에 산재한 각종 문화재의 복원 또는 재·개축 공사가 얼마나 허술하게 이루어져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가지 실례일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사진속의 월송정은 초익공(初翼工, 단익공)에 팔작집 형태의 정면 4칸 측면 2칸 구조로써, 정면 5칸 측면 3칸인 현 월송정 구조와 판이하다.  

 

기와지붕도 추녀마루가 하나뿐인 현 월송정과는 달리, 추녀마루와 내림마루 두 갈래로 갈라지면서 지극히 빼어난 곡선미로 송림이 수려한 주변 경관과 제대로 어우러지고 있다.  

 

정자의 기둥은 미적 감각을 살리기 위해 중간 부분을 살짝 부풀린 엔타시스(Entasis) 기법을 사용했고, 기둥머리에서 기둥과 기둥을 연결해주는 창방(昌枋)은 있으나 기둥위에 초방(初枋)을 짜고 수평으로 올려놓는 나무인 평방(平枋)은 나타나지 않는다.  

 

정자 2층의 난간은 닭 모양을 닮은 계자다리를 사용한 계자난간을 둘러 정자의 격조를 한층 높였다.   

 

또한 정자로 올라가는 목재 계단 또한 정확히 확인하기는 힘들지만 하나로 추정되어, 좌우에 각각 하나씩 두 개의 계단을 가진 현 월송정의 계단과는 달라 보인다.   

 

1979년 촬영된 월송정. 1969년에 재일교포로 구성된 금강회(金剛會)에서 신축한 철근콘크리트 2층 정자이다

1981년 촬영된 월송정. 1979년에 울진군이 금강회(金剛會)에서 신축한 철근콘크리트 정자를 철거하고 1980년에 고려양식으로 준공한 현재의 월송정이다

 

특히 사진속의 월송정은 정자의 우측 하부 기둥에 맞물려서 기와를 두른 토석축(土石築)이 완벽하게 남아 있다.  

 

이는 애초에 월송정이 정자가 아닌 군사용 망루(望樓)의 용도로 건축되었거나, 당초부터 정자와 망루의 용도를 겸했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아니면 기존에 전해지는 대로 고려 충숙왕(忠肅王) 13년(1326년)에 존무사(存撫使) 박숙(朴淑)이 창건할 당시에는 정자의 용도로 사용되었지만, 조선시대에 월송만호진(越松萬戶鎭)이 들어서면서 정자와 망루를 겸했던 것으로도 미루어 유추할 수 있다.  

 

2007년에 울진군에서 발간한 울진문화유적 해설집인『울진문화유적 바로 알기』에서는 월송정에 대해 “1933년 옛 평해군(平海郡) 구(舊) 관사(官司) 재목(材木)으로 이축(移築)하였으나, 그 후 일제강점기 말기 월송에 주둔한 해군이 적기(敵機) 내습(來襲)의 목표가 된다하여 철거하고 폐허가 된 것을 1969년 재일교포로 구성된 금강회(金剛會)에서 철근콘크리트 2층 정자를 신축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이번에 최초로 공개되는 사진속의 월송정은 1933년에 평해군 구관사의 재목으로 이축한 정자가 확실시되며, 사진 촬영 시기도 최소한 일제강점기 중기(中期)로 짐작할 수 있다.  

 

최규하(崔圭夏)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

 

그리고 사진속의 월송정 위치도 현재의 월송정에서 남서쪽으로 700여 미터 떨어진 장소에 건립되어 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진 속에 나타나는 정자의 위치와 높이, 우측의 담장 등으로도 쉽게 살펴볼 수 있지만, 평해읍 월송리에 거주하는 나이든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일제강점기 당시의 월송정은 현 신혼예식장과 연접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평해읍 월송리 달효마을 손광록(71세)씨는 “원래 월송정은 예식장과 식당 사이에 있다가 일정시대에 허물어졌고, 그 후에 금강회에서 바다 가까운 언덕으로 위치를 옮겨서 시멘트로 새로 지었다”고 말했다.  

 

또한 “일부에서는 왜정시대에 일본 군인들이 월송정을 부수어 버린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 월송정에서 동네사람들과 골패놀이를 여흥삼아 즐겼던 할아버지에게서 ‘낡아빠진 정자가 기와지붕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어느 순간에 폭삭 무너져 버렸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등의 문헌에 따르면, 평해군의 동(북) 7리(里)의 거리에 돌로써 만든 수군 진(鎭)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수군 진 주변으로는 잘 다듬은 돌들로 석축을 쌓아서 경계를 만들었는데,『울진군지』에 따르면 현재의 예식장 건물터가 애초의 월송만호터였다. 

 

현 월송정 정면 우측에 서있는 ‘월송정복건금강회동지공적기념비(越松亭復建金剛會同志功績紀念碑)’. 1969년에 철근콘크리트 2층으로 준공된 월송정 건립을 위해 찬조한 이들의 명단이 적혀있다
『울진군지』는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인 월송정은 고려 충숙왕(忠肅王) 13년(1326년)에 존무사(存撫使) 박숙(朴淑)이 처음으로 지었고, 신라시대에 영랑(令郞), 술랑(述郞), 남석(南石), 안상(安祥) 등 네 화랑의 유람지라 하였는데, 달밤에 솔밭에서 놀았다고 하여 월송정(月松亭)이라 하고 또한 월국(越國)에서 소나무 묘목을 가져다 심었다고 하여 월송(越松)이라고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어서 “조선 연산군(燕山君) 때 관찰사 박원종(朴元宗)이 중건하였으나 그 후 퇴락되어 1933년에 향인 황만영(黃萬英), 전자문(全子文) 외 수인(數人)과 재일(在日) 평해·기성·온정면 교포로 구성된 금강회(金剛會)의 김정문(金正門), 박선규(朴善奎), 김익만(金益萬) 외 80여명이 1969년 4월 18일에 철근콘크리트 2층의 정자를 중건하여 낙성하였다. 그러나 정자의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으므로 울진군에서 도비 8천만 원으로 1979년 2월 19일에 정자를 철거하고 새 설계에 의한 정자를 착공하여 1980년 7월 29일에 고전양식(古典樣式)인 고려식 건물로 복원하였으며 월송정 현판은 최규하(崔圭夏) 전 대통령의 친필로 새겼다”고 덧붙이고 있다.  

 

그러나 월송정과 관련된 또 다른 기록물들은 “조선 중기에 관찰사 박원종이 중건했으나 퇴락하여, 1933년에 향인 황만영 등이 중건했고, 일제 말기에 철거당한 것을 1969년 4월 재일교포로 구성된 금강회의 후원으로 철근콘크리트죠 정자로 신축했으나, 옛 모습을 살필 길이 없어 해체하고 1980년 7월 고려 양식의 정자로 복원했다”고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월송정이라는 단 하나의 정자를 두고 이견이 생기는 이런 오점은 향후『울진군지』등의 기록물을 발간할 때, 보다 철저한 사실 확인과 규명 절차를 거쳐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월송정 사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이 발견됨에 따라, 추후에 월송정을 새로이 신·개축할 시에는 철저한 고증을 거쳐 보다 원형에 가깝게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현 월송정(전면)

현 월송정(측면, 후면, 2층 마룻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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