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에세이] 별유세계(別有世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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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일
(시인, 수필가)“세상은 넓다”라는 텔레비전 프로를 즐겨본다. 안방에 앉아서 지구촌 구석구석을 엿볼 수 있으니, 이 아니 좋은가.
“동화의 세계” 중국 사천성(四川省) 구채구(九寨溝) 풍경이 벌써 몇 번째 펼쳐진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 했던가. 만물이 소생하는 삼월 그믐 날, 늙을수록 정이 드는 내자를 길벗삼아 길을 나선다.
촉한(蜀漢)의 옛 도읍지 성도(成都). 세 영웅이 도원(桃園)에서 결의를 한 삼국(三國)의 한 무대가 바로 여기다. 그들의 자취는 여정(旅程) 말미로 미루고 여사(旅舍)에서 새날을 맞는다.
장강(長江)의 지류인 민강을 거슬러 만년설이 아련한 민산준령을 기어오른다. 오르다가 내리고 돌고 건너기를 한나절, 해발 이천오백여 미터의「모현」에서 점심을 한다. 백록담보다도 더 높은 곳인데도, 고개를 젖혀야 하늘이 보이는 산자락에 불과하다.
TV에서 보던 차마고도(車馬古道)를 연상케 한다. 갈지(之)자를 수 없이 그리며 깎아지른 절벽을 용케도 타고 오른다. 마른 풀잎을 뜯는 양떼가 정겹고, 순하게 보이는 야크도 눈요기 감이다.
강족(羌族) 자치구를 지나 티베트족 자치구, 그들의 강인한 삶이 놀라울 정도다. 바람이 불면 돌 모래가 날릴 것 같은 푸석한 바위 사이로 마른 풀잎만 황량하다.
묘기를 부리듯, 틈새 틈새에 손바닥만한 밭을 일구어 목숨을 연명한다. 어찌 이들 뿐이랴. 오십 여 소수 민족이 한족(漢族)에 밀려 협곡이나 고산지대에 터를 잡고 그들의 문화와 전통을 면면이 이어오고 있다.
여기저기 오색천의 깃발이 널려있다. 길가에 세운 것은 길손의 행운을 위한 것이라는 말에, 흐뭇한 마음으로 눈여겨보게 된다. 모니구 자갈폭포, 고도 사천삼백여 미터라는 말이 믿기지 않는다.
정상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고, 만년설이 녹아내려 하얀 비단으로 산허리에 널린다. 조금만 걸어도 현기증이 인다. 가픈 숨을 몰아쉬는 아내와 함께 천혜의 비경에 실어증을 앓는다.
티베트족 아홉 개 마을에서 유래되었다는 구채구, 참으로 별유세계(別有世界)다. 삼천여 미터의 고산인데도 소나무 잣나무 전나무가 울울창창하다. 그 사이사이로 진귀한 수목들이 숲을 이루고, 그 자락에 도화(桃花)가 만발한다. 여기에 밤사이 가볍게 눈이 내려 백화(白花)가 흐드러졌다. 분홍도화에 순백의 백화, 금상에 첨화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눈을 뗄 수가 없고 발걸음을 옮길 수도 없다. 세속에 찌든 발로 어디를 밟으며 풍진에 흐려진 눈으로 무엇을 보랴. 한참을 제자리에 서서 어쩌지를 못한다. 무지개 서리서리 물 위에 어린 곳 오화해(五花海), 진주알이 줄줄이 쏟아지는 진주탄 폭포, 잠든 용이 보일 듯한 와룡해(臥龍海), 다섯 가지 색깔을 풀어 놓은 오채지(五菜池), 경해, 주정구, 일측구, 눈길이 닿는 곳마다 감탄이요, 경탄이다.
유리알 같이 맑은 호수, 언제부터 잠겨있는지 모르는 나무들이 썩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드러난다. 예로부터 ‘물이 맑으면 고기가 없다(水之淸則無魚)’라 했는데, 저 깊은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물에 고기떼가 노니는 광경이 기이하다.
이에 더 맑은 물이 어디 있으랴. 고요하다. 어디를 보아도 큰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돌돌돌 흐르는 갯도랑도 물살의 상처가 전혀 없다. 그렇다면 흐르는 물이 일정하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눈을 들어 올려다본다. 만년설을 이고 있는 산마루가 아득하다. 어림잡아 천여 미터는 넘어 보인다. 태풍도 폭우도 눈사태도 없었다는 말인가. 그러고 보니 바람에 부러지고 쓰러진 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선계(仙界)를 찾아온 속인(俗人)에게 “어떻게 알고 왔느냐?”고 물었다.
“저 밑에 사는 어부이온데, 탐스러운 도화가 흘러오는 것을 보고 찾아왔다”는 말에,
“허허. 못 믿을 손, 도화로다” 했다는 무릉도원의 설화를 연상케 한다.
“어서 나가라”는 일갈이 들릴 것 같아, 이방의 나그네 아쉬운 발길을 돌리고 만다.오른 만큼 내리기를 하루 해, 낙산 대불(大佛)을 우러러 옷깃을 여민다. 청이강, 대도하, 민강이 합류하는 소용돌이에 많은 어부가 목숨을 잃었다. 이를 긍휼이 여긴 해통법사가 그 절벽에 부처를 모셔 중생을 구하고자 했다. 지금으로부터 천 이백 여 년 전 일이다.
무려 구십여 년에 걸쳐 높이 칠십여 미터의 대불을 절벽 계곡에 새겨 놓았다. 엄지발톱 위에 탁자를 놓고 넷이서 차를 마실 수 있다고 하면, 그 위용이 짐작 되고도 남는다. 이 온화한 부처의 미소가, 죽의 장막을 허문 것일까. 합장하는 중화인들이 줄을 잇는다.
삼국시대를 재현한 금리(錦里)거리를 지나 한소열제묘(漢昭烈帝廟), 제갈량(諸葛亮)의 무후사(武候祠)에 향(香) 한 줌 사른다. 별유세계에 넋을 잃다가 낙산대불의 미소를 가슴에 안고 파김치가 되어 귀로에 오른다.
애면글면 여행은 이래서 살맛이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