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가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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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 최'
창에 비쳐든 햇살에서 아련한 향기가 난다.
여운을 드리운 여름의 마지막 인사 같은.
초원을 건너고 건너서 서서히 물들이는 마른 곡식을 닮은 듯 한 가을 냄새가 서로 교차한다.
현재 살아있는 감각은 내 코의 비강점막에 있는 수용기 세포 하나 뿐인 것 같다.감사 하다.
감사할일이 하나라도 있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텅 비어버린 듯이 보는 것 느끼는 것에 얼마나 무디어 졌는지, 요즘 나의 감정은 물에 술을 탄 것처럼 이것도 저것도 아닌 맛에 철퍼덕 거리는 기분이다.
운동해야지 하면서 드러눕고, 싸우지 말아야지 하면서 싸우고, 사랑해야지 하면서 미워하고.
뇌세포가 명령하는데 가슴이 막고, 마음이 이끄는데 뇌에서 정지한다.그런데 언제 부턴가 꽤나 서로 말 잘 듣는 명령 하나를 발견했다.
울지 말아야지, 울지 마라, 절. 대. 로.
웬만해서는 말릴 수 없는 무엇이 사람마다 하나씩 있는데, 나는 온 일가친척이 다 걱정할 만큼 어릴 적부터 고집이 세었다.투정 반, 오기 반으로 시작이 되었을 내 고집의 역사는 아직도 친척이 셋만 모여도 빠지지 않는 이야기꽃의 단골메뉴다.
어찌어찌 자기 마음에 안 들어서 울음보가 터지면 앉은 자리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울고, 꾸벅 조는 게 안타까워 이불에 옮겨 놓으면 다시 있던 자리로 엉금 기어가서 울고, 한쪽 손을 올리고 울었는데 팔이 아프면 다른 손으로 바꾸어서 울고, 하루를 꼬박 앉아 있어도 제풀에 풀어지기 전까진 어느 무엇도 바꿀 수가 없었다 한다.
딱 매를 부르기 좋은 고집이다.어찌어찌 자기 맘에 안 들어 울기 시작한 이유도, 똥오줌을 막 가리기 시작 했을 때 쉬야가 마려워 뒤뚱거리며 요강으로 가고 있을 때, ‘어유 우리 아가 쉬 해야지’ 하면서 요강으로 잘 인도하려는 어른들의 의도가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이었겠지.
나이 들어 생각해 보니, 이유 같지 않은 이유가 너무나 웃긴데 계속 웃을 수만은 없다.
날 닮은 새끼를 낳아서 그대로 당하라던 엄마의 악담이 계속 실행중이니...쓸데없는 그런 류의 고집과 오기로 사춘기가 되도록 무서운 아버지한테 회초리깨나 맞았다.
회초리 때문에 아파서 흘린 눈물보다 농담과 감상이 달라지는 사춘기 이후의 눈물이 기억에 더 오래 남으니 참 이상도 하다.아프거나 슬프기보다 아련한 감상 때문에 흘리던 눈물의 기억.
답답한 무언가를 내가 못 풀면, 내가 아는 당신이라도 좀 알아주었으면 하고 흘리는 무언의 시위.아니, 눈물은 결코 남이 알아주어서는 안 되는 나만의 것이었을 때 진정한 카타르시스가 있다는 걸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면서 알게 된다.
그러다가 나만의 눈물마저 흘리지 말자고 독기를 품은 건, 독한 이유가 많다기보다 갱년기가 오면서 에스테스테론의 감소로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 도와주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정말 눈물이 서서히 말라서 없어진다.
버석버석 내 감정도 말라 마른 잎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눈물에 대한 나만의 고집이라고 말하기엔 그런 물리적, 생체리듬적인 과학이 도사리고 있다.모든 게 옅어졌다. 술에 물을 탄 듯 그렇게 맛없게.
그런 게 당연한 거라고 밀고 나가기엔 서글픈 구석이 많다.
상호 고리가 딱 맞아떨어지는 ‘울지 마라’라는 명령이 틀어지길 좀 바래볼까 싶다.일요일 오후 해가 뉘엿한 시간, 서점에 놀러갔다.
딱히 할 일이 없고, 무언가를 잔뜩 해야지 라는 마음이 없기가 다행인 날.
할일을 잔뜩 머릿속에 그렸다면 이불 뒤집어쓰고 누워있기가 뻔 하므로,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너무 심심해서 서점에 갔다.그리고는 책 한 권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당신도 가끔 식구들 몰래 화장실 벽에 기대어 울어본 적이 있는지.
울고 싶은 적이 있느냐고 묻는데, 몇 년 동안 생성되지 않던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그렇게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고 집에 오는 길.
가을바람에 예전의 모든 것이 춤을 추듯 살랑인다.
그 길, 그 나무, 그 건물, 그 하늘, 그리고 나.눈물 한 방울의 감상이 살아 있는 듯 온통 살맛나는 재미를 준다고는 바라지 않지만, 그래도 왠지 가을 냄새와 더불어 가을이 오는 세상을 구석구석 느낄 수 있는 감정만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나는 눈물을 애써 없앤 당신에게 말 할 것이다.
당신도 가끔, 울어 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