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전화숙(田華淑) 명망인, 보건복지부장관 표창 수상

전씨 부인, 6.25 전쟁 당시 억울한 부역 혐의로 시아버지를 대신해 희생
기사입력 2010.11.15 13:42  
댓글 0
  • 카카오톡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고(故) 전화숙씨
6.25전쟁 당시에 시아버지를 대신해서 목숨을 버린 고(故) 전화숙(田華淑) 명망인이 지난 5월 8일 어버이날을 맞아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장을 받은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당시 전재희 보건복지부장관은 “평소 어버이에 대한 지성스런 효행으로 아름다운 효 사상을 드높이고 실천함으로써 밝고 건강한 우리 사회의 도덕적 귀감이 되었기에 제38회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표창한다”고 밝히고 있다.  

 

북면 고목리에서 충효 애국지사 전병겸(田炳謙)씨의 딸로 태어난 전씨 부인은 6.25 전쟁 당시 인민군 치하에서 반동으로 몰려 고통을 당하던 중, 국군 수복 직전에 15명이나 되는 가족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집안 어른들의 권고로 본의 아니게 15일간 부녀동맹위원장을 맡게 된다.  

 

그런데 국군 수복 후에 전씨 부인이 북면 고목1리 지정동의 친정집으로 피하여 은신하던 중, 낯선 사람들이 시아버지를 끌고 가서 며느리 전씨 부인을 찾아내지 않으면 대신 죽이겠다고 협박한다는 얘기를 전해 듣게 된다.  

 

이에 전씨 부인은 친정 부모형제를 뿌리치고 결연하게 죽음의 부둘골을 찾아가서 시아버지를 돌려보내고 대신 희생을 당한다.  

 

당시 인근에서는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애통하여 울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전하는데, 특히 인근에 살던 석덕 고사는 축천부명항적결신열야(祝天夫命抗賊潔身烈也) 익폐구고운신성인효야(翼蔽舅姑殞身成仁孝也)라는 글을 지어 애도했다.  

 

전씨 부인은 시아버지를 대신해 희생한 점을 높이 평가받아 이미 1995년 성균관장의 표창장, 1996년 신안주씨중앙종친회장 표창장, 1998년 충·효·예실천운동본부 총재 표창장 등을 수여받은바 있다.   

 

또한 주씨 부인은 ‘울진군지’를 비롯해 ‘유인효열록(儒人孝烈錄)’과 중국의 ‘고정자양주씨(考亭紫陽朱氏) 종보 효열록’에 등재되어 있다.  

 

고(故) 산해(山海) 전영경(田永璟) 선생은「주씨부전유인효열록(朱氏婦田孺人孝烈錄)에서 직접 글을 지어 전씨 부인을 기렸다.  

 

산해 선생은 이 글에서「재앙의 바다가 도도(滔滔)하게 우리나라에 넘칠 때 효행과 열행의 높은 명성은 아름다운 풍속을 떨쳤다. 시부모를 섬김에는 창칼 아래에서 구출하여 살렸고, 남편을 따름에는 불과 끓인 물속에도 들어갔네. 법가(法家)에서 물들어진 행의는 어진 도리를 이루었고, 말세에도 의로운 공을 취하여 후세에 전하네. 성조(聖朝)에서 높이 갚아줄 날이 마침내 멀지 않으리니, 정려(旌閭)가 내리고 복호(復戶)가 되어 영원무궁토록 전하리라.」고 극찬했다.  

 

2007년 죽변면 후정리 매정동에 건립된 고(故) 전화숙(田華淑) 명망인의 효열비(孝烈碑)

죽변면에 거주하는 전씨 부인의 시동생인 주극중(朱極中. 78세) 옹은 지난 2007년 죽변면 후정리 매정동에 형수(兄嫂)인 고 전씨 부인의 효열비(孝烈碑)를 건립하여 고인의 깊은 뜻을 기렸다.  

 

주 옹은 “6.25 당시에 형수님이 희생당하고 18세의 나이로 고목리의 형수님 사가에 노사장(老査丈)을 위로하려고 찾아갔는데, 50여명의 친척들이 모여서 대성통곡을 하면서 애통해하기에 무엇이라 말 못할 형편이었다. 그때 사장 어르신 앞에 엎드려 사죄하면서, 향후 양지바른 도로변에 효열비를 세우고 대대손손 향을 피우겠다고 약속했다. 그 후에 중국에 가서 국제주자학회장(國際朱子學會長)인 양청(楊靑) 교수에게 청하여 전유인효열정덕비문(田孺人孝烈旌德碑文)을 받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2007년 11월 9일에 죽변 후정2리 매정동 용호정 양지바른 도로변 부암대(阜岩岱) 둔덕위에 형수님의 효열비를 세웠다. 남자의 한마디 약속은 중천금인데 6.25전쟁 당시에 사장 어른께 했던 약속을 60평생 기억하고 있다가 이제 실천했다.”고 그간의 사정을 들려주었다.  

 

또 주 옹은 형수님을 위해 전국 유림에 부탁하여 시문옥고를 수집해둔 상태로써, 향후 한글 번역 작업을 마치고 전유인효열록(田孺人孝烈錄)을 발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편 전씨 부인의 억울한 죽음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2008년 6월 “부역자 처리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군경이 임의 분류에 따라 민간인을 살해한 행위는 전시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고, 당시의 실정법과 절차법을 위반한 것으로 반인륜적 야만행위였다”고 규정하면서, 진실 규명을 결정한바 있다.  

 

이후 2009년 11월 28일 울진군청소년수련관에서는 울진양민학살희생자유족회 주관으로 ‘한국전쟁 전·후 울진민간인희생자 합동위령제·추모식’을 열고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했다.  

 

‘울진 부역혐의 희생 사건’은 6.25 전쟁 중이던 1950년 9월 26일부터 12월 말까지 울진경찰서와 특무대, 국군 제3사단 소속의 헌병대와 보충대 군인들에 의해 부역자 처리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군경의 임의 분류에 따라 민간인이 살해된 사건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최종보고서에서 울진군에서 부역 혐의로 희생된 민간인의 수는 수복작전 초기에 국군에 의한 희생자 9명, 죽변면 후정리 부둘골 약 40명, 신림 올시골 250여명, 후퇴기에 지서 경찰에 의한 희생자 20여명을 포함해 총 320여명을 웃돌 것으로 추정했다.  

 

이 중 죽변면 후정리 부둘골 사건은 1950년 10월 20일, 우익단체와 이장들이 제공한 명단을 근거로 부역 혐의자들을 직접 연행하여 CIC와 경찰이 약 40명을 총살하거나 생매장한 사건으로, 전씨 부인은 이때 희생됐다.

 

2007년 후정리 매정동에 건립된 효열비(孝烈碑)

<저작권자ⓒ빠른뉴스! 울진뉴스 & www.ulji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울진뉴스/월간울진(http://uljinnews.com |   창간일 : 2006년 5월 2일   |   발행인 / 대표 : 김흥탁    |   편집인 : 윤은미 
  • 사업자등록번호 : 507-03-88911   |   36325. 경북 울진군 울진읍 말루길 1 (1층)   |  등록번호 : 경북, 아00138    |   등록일 : 2010년 7월 20일                         
  • 대표전화 : (054)781-6776 [오전 9시~오후 6시 / 토, 일, 공휴일 제외(12시~1시 점심)]   |  전자우편  uljin@uljinnews.com / ytn054@naver.com
  • Copyright © 2006-2017 uljinnews.com all right reserved.
빠른뉴스! 울진뉴스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