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장(腕章)

기사입력 2010.12.2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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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원 섭
(경민대학교 교수)

땅 투기에 성공해 벼락부자가 되어 기업가로 변신한 최 사장은 수리조합으로부터 저수지 사용권을 얻어 양어장을 만들고 동네 건달인 임종술에게 그 관리를 맡기려고 한다.

 

비록 푼돈 5만원에 불과한 적은 월급이지만 완장을 차게 해준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인 종술은 저수지의 관리인으로 취직한다. 월급보다 팔에 채워주는 완장이 더 마음에 든 것이다. 저수지를 순찰하며 ‘공유수면관리법’을 들먹이며 낚시꾼들을 내쫓는 것이 그에게 맡겨진 임무이다.

 

노란 바탕에 파란 글씨가 새겨진 감시원 완장. 서울에서 생활하는 동안 숱한 ‘완장’들에게 쫓겨본 그로서는 완장이라는 것이 얼마나 높은 권력인지 잘 알고 있었다.

비닐완장이 팔에 채워지자 종술은 잔뜩 어깨에 힘이 들어가 안하무인의 모습으로 저수지 주변을 누빈다.

 

그는 낚시를 하러 온 도시의 남녀들을 불러 기합을 주기도 하고, 고기를 잡던 초등학교 동창 부자를 폭행하기도 한다. 저수지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완장의 힘에 흠뻑 빠진 종술은 어느새 면소재지가 있는 읍내에 나갈 때도 완장을 두르고 활보한다.

 

그러던 어느 날, 완장의 힘을 과신한 종술은 급기야 자신을 고용한 최 사장 친구 일행의 낚시질까지 못하게 행패를 부리다가 결국 관리인 자리에서 쫓겨난다. 하지만 해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종술은 여전히 저수지를 지키는 일에 몰두한다. 그는 이미 완장의 마력에 빠져 자신이 고용된 관리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주인 노릇을 하려 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마침내 가뭄 해소책으로 ‘물을 빼야 한다.’는 수리조합 직원과 다투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도 충돌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종술은 기관의 공권력 앞에 완전히 수세에 몰리고 만다.

 

기가 죽은 그에게 술집작부 부월이 ‘완장의 허황됨’을 일깨워주며 내뱉는 말이 압권이다.
“눈에 뵈는 완장은 기중 벨 볼일 없는 하빠리들이나 차는 게여. 진짜 완장은 눈에 뵈지도 않어!”

 

완장이 준 권력을 제 멋대로 휘두르며 활개를 치다 비로소 자신의 왼팔에 번쩍이는 비닐완장 권력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그리고 진짜 높은 완장들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무섭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종술이 애지중지하던 완장을 저수지에 버리고 부월이와 함께 몰래 마을을 떠난 다음날, 소용돌이치며 물이 빠지는 저수지 수면 위로 그가 두르고 다니던 비닐완장이 둥둥 떠다닌다.

 

한국전쟁 이후 정치권력의 폭력성과 보통 사람들의 암울한 삶을 해학적 필치로 그려낸 윤흥길(尹興吉)의 대표작인 소설《완장(腕章)》의 줄거리로, 작건 크건 권력을 쥐게 되면 맡고 있는 업무는 물론, 그 외적인 부분에 이르기까지 주어진 권력을 휘두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속물적 근성을 예리하게 풍자하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디를 간들, 어느 크고 작은 집단에 새로 들어간들 그 조직 나름대로의 질서를 구축해 놓은 새로운 자리에 마주하게 된다.

 

대부분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고 가장 자연스런 이치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조직체계가 가지고 있는 유무형의 조직문화를 체득하고 적응해 나가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만나는 상하 또는 수평관계의 인연들 가운데 이른 바 ‘완장’을 찬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 다반사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아직은 조직 내에서 어정쩡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당분간 어느 정도 마음고생을 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이미 예견했던 일이라 더 서운하거나 마음 상해 할 일도 아니다.

 

문제는 완장을 차고 있는 사람들의 태도라 할 것이다. 관리자로부터 어떤 자리에 임명된 것은 그 자리에 맞는 역할을 하라는 것이지 자리 자체를 즐기고 그 권력을 휘두르라는 것이 아니다. 마치 천년을 그 자리에 있을 것처럼 완장의 권력(?)을 행사한다면 결국은 자신을 임명한 관리자에게 누를 끼치는 일에 다름 아닌 것이다. 사람들은 주변을 조화롭게 만들어 가면서 진심으로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는 사람냄새가 묻어나는 소탈한 ‘완장’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우리는 아직도 오늘날 이 시대를 “완장의 시대”라고 말한다. 권력을 손에 쥔 자의 피폐한 모습을 해학과 풍자의 거울로 그려낸 윤흥길의 소설《완장(腕章)》. 요즈음 뉴스에 자주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행태를 보고 있으려니 비닐완장을 차고 저수지를 순찰하며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는 윤흥길의 소설《완장》의 주인공 임종술의 모습이 자꾸 겹쳐 떠오르는 건 무엇 때문일까?

 

그렇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 하지 않았던가. 만약 훗날 내 팔에도 완장이 채워지는 날이 있다면, 그저 지금처럼 늘 초심을 잃지 않고 남을 배려하는 따스한 가슴을 지닌 한결같은 나를 생각하고 다짐하며 고개를 들어 먼 데 하늘을 본다.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겪고 있는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더 큰 일을 감당하게 만드는 훌륭한 경험들이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 분명하다. 
햇살이 따사로운 늦가을 오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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