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암온천(白岩溫泉)의 변천사(變遷史) ①

기사입력 2010.12.3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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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백암온천관 전경

 

전국적으로 온천이 발견된 유래는 하나같이 재미없을 만큼 똑같다. 대개 오래전 어느 때 짐승을 쫓던 사냥꾼이 우연하게 발견했다는 식이다. 백암온천(白岩溫泉) 또한 예외가 아니다.

 

『울진군지』등에 따르면, 백암온천은 신라시대에 창에 맞은 사슴을 쫓던 한 사냥꾼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리고 인근 백암사(白岩寺)에 기거하던 스님이 최초로 목욕할 수 있는 욕탕을 짓고 병자(病者)를 입욕시켰더니 효험이 있었다고 전한다.

 

1983년에 내무부에서 발행한『온천지(溫泉誌)』에 따르면 고려(高麗) 8대왕인 현종(顯宗, 991년~1031년) 당시에 평해현 현령이 지방민을 사역(使役)하여 거대한 화강암으로 광활한 석함(石函)을 축조(築造)하고 다시 가옥을 개축하여 임시 간수를 고용(雇傭)한 뒤 욕탕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기 시작했다.

 

그 후에 가옥이 파손되자, 다시 지방민들로부터 곡물을 거둬들여 가옥과 욕탕을 수리했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문헌『고려사(高麗史)』,『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기록에도 평해온천이 나타나는데, 이는 현재의 백암온천에 대한 기록일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동국여지승람은 백암산 아래에 있는 평해온천의 물 한 모금으로 오래된 병이 낫고 겨드랑이를 씻으면 뼈도 신선이 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백암온천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목조 2층 욕탕과 건물을 지어 자연 용출된 온천수를 사용했고, 1930년에 현 백암온천장을 건축하여 운영하다가, 1945년 이후부터는 한동안 개발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1958년 이후에 민간인이 운영하는 공동목욕탕이 건립됐고, 1977년 4월 28일 1,740,000㎡에 대한 온정도시계획 결정과 1979년 9월 21일 주거지역, 상업지역, 녹지지역에 대한 온정도시계획재정비에 뒤이어, 1979년 12월 31일 130,410㎡ 면적이 국민관광지로 지정되면서 종합온천장으로서 각종 시설이 들어서게 된다.

 

백암온천 전경(1960년 말~1970년 초)

백암여관 욕탕(1960년 말~1970년 초)

1960년대 백암온천 전경

백암여관 객실((1960년 말~1970년 초)

1972년 백암온천 백암여관 전경

1983년 당시 백온천 온천공과 사용자 위치도-출처. 내무부 발행 『온천지(溫泉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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