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치(同治) 12년 생원시(生員試) 백패(白牌)·시권(試券) 공개
-
조선시대 생원·진사 시험 합격자 명부인 사마방목(司馬榜目) 앞 표지
백패(白牌)를 받은 엄장한은 조선시대 생원·진사 시험 합격자 명부인 사마방목(司馬榜目)에 이름이 올라있다동치(同治) 12년(고종 10년, 1873년) 조선시대의 소과(小科)인 생원시(生員試)에 최종 합격한 사람에게 임금이 내려준 합격 증서인 백패(白牌)와 과거에 응시했을 때 작성한 시험지인 시권(試券)이 공개됐다.
교지(敎旨) 백패(白牌)는 흰 종이에 붓글씨로 합격자의 직위, 성명, 합격 등급, 성적 순위를 기록하고 연월일을 기재한 후 그 중간에 왕의 도장인 어보(御寶)를 찍은 것이다.
고종 10년에 생원시험에 합격한 사람에게 발행된 이 백패에는 ‘유학엄장한생원삼등제십일인입격자(幼學嚴章漢生員第三等第十一人入格者)’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 19세이던 유학(幼學) 엄장한(嚴章漢)이 생원시험에서 3등 제11인으로 합격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뒤쪽에 얇은 문종이로 가려져 있는 도장의 글씨는 탈색되어 잘 보이지 않지만, 통상적으로 볼 때 이 글자는 교지 백패에 찍어주던 ‘과거지보(科擧之寶)’ 네 자일 것으로 추정된다.
백패(白牌)를 받은 엄장한은 조선시대 생원·진사 시험 합격자 명부인 사마방목(司馬榜目)에도 그 이름이 올라있다.
생원시에 입격(入格)해서 백패를 받은 엄장한(嚴章漢)은 족보상에 엄장영(嚴章永)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현재 백패를 보관하고 있는 엄한용(62세, 북면 검성리 3반)씨의 고조부(高祖父)이다.
집안 대대로 보관해 내려오고 있는 교지(敎旨) 백패(白牌)와 함께 엄한용씨는 생원시험 당시의 문제와 답안이 적힌 시권(試券) 두 가지를 공개했다.
한 시권(試券)에 적힌 글은 맹자의 경전에서 물의 성(性)과 산의 성(性)을 질문한데 대한 답변 논술이다.
이 시권(試券)을 해석, 해제한 울진향토사연구회 윤대웅 회장은 이에 대해 “정의(情意)가 없음에도 가히 말로 하여라 한 이 문장의 가르침은 스스로 활발한 뜻이 있으니 사람으로 하여금 그 산수(山水)의 성(性)을 관찰하여 그 성선(性善)의 실상을 얻어 터득하게 한 것이다. 이리하여 선대의 선비들이 이 뜻(義)을 논(論)한 자가 비록 많으나 호씨(고자를 지칭)의 설(說)에 대하여 저변으로 산수(山水)의 성(性)을 밝히고, 위로는 성선(性善)이 발흥하는 근본 이론을 정립했다. 물을 관찰한 자는 어찌 물의 성(性)을 알지 못하겠으며, 산(山)에 오르는 자는 진실로 산(山)의 성(性)을 알지 못하리오. 이로 말미암아 관찰한즉 맹자님의 성선지훈(性善之訓)의 밝음이 해와 별과 같이 빛나고 황홀하여 마치 그물의 비줄을 들어 올리는 것 같다. 다시 어찌 어지러이 구멍을 파며 집 위에 또 집을 올리고, 상(床)위에 상을 중첩하리오. 저는 더 말하고자 아니합니다, 삼가 답문(答文)에 대합니다”라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또 다른 시권(試券)에 적힌 논술 문답은 논어의 문장에서 ‘안회(顔回-안자)’는 어리석은 것 같으나 조용히 과묵함이며, 결코 어리석지 않다는 구절에서 퇴성기사(退省其私)와 독처발(獨處發)에 대한 논설 문제와 답이 실린 것이다.
조선시대의 소과는 생원시와 진사시로 나누어 시험을 보았는데, 생원시는 사서(논어, 맹자, 대학, 중용)와 오경의(시경, 서경, 역경, 예기, 춘추) 등 유학에 관한 시험이었고, 진사시는 시부송(詩賦頌)과 시무책(時務策) 등 문학에 관한 시험이었다.
이 시험에 합격하여 생원과 진사가 된 사람에게는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소과에서는 통상적으로 1등 5명, 2등 25명, 3등 70명으로 모두 100명을 합격시켰다. 시험이 끝나고 결과가 나오면 합격자의 성적순으로 써서 임금에게 올리는 동시에 대내외에 결과를 발표하는 한편, 길일(吉日)을 택하여 전정에서 ‘방방의(放榜儀)’라는 의식을 베풀었다.
이때 생원은 동쪽에, 진사는 서쪽에 줄지어 서서 임금에게 사배(四拜)를 올린 다음에 합격증인 백패와 주과(酒果)를 하사받았다.
백패는 흰 종이에 관명(官名), 성명, 과별(科別-생원, 진사, 잡과 등), 성적 등급(成績 等級)이 적혀 있는데, 이 백패는 잡과(雜科)나 이과(吏科)에 합격한 사람에게도 하사됐으며, 대과에 합격하면 홍패(紅牌)를 주었다.
동치(同治) 12년 생원시(生員試) 합격 증서인 백패(白牌)▣맹자에서의 산수(山水)의 성(性)을 밝히고, 위로 성선(性善)이 발흥하는 근본 이론에 대한 시권(試券) [해석. 울진향토사연구회 윤대웅 회장]
이 시권(試券)은 맹자의 단수(湍水-물 이름) 글(章)에 있는 시기수지성재(是豈水之性哉)-물에 과연 성(性)이 있는가? 우산(牛山-산 이름) 장(章)에 있는 수과유성여(水果有性歟)-이 어찌 산의 성질이라 하겠으리오? 산역유성여(山亦有性歟)-산에 또 과연 성(性)이 있는가? ①산(山)과 물(水)에 성(性)이 있다고 한다면 정의(情意)가 있다고 가히 논(論)하여 보라. ②산수(山水)의 성(性)이 사람의 성(性)에 더불어 할 수 없다면 맹자(孟子)께서 반드시 성선(性善)의 이(理)를 인용함은 무엇이라 하겠는가?
고자(告子)는 맹자대(孟子代)의 사상가인데, 맹자는 이 사람과 더불어 인성론(人性論)과 인의(仁義)에 관해 토론하였다.
①고자왈(告子曰), 성(性)은 마치 돌아 흐르는 물과 같다. 동(東)으로 흐르게 하면 동(東)으로 흐른다. 인성(人性)에 선불선(善不善)의 구분이 없는 것은 흐르는 물과 같음이다. 맹자 왈(孟子曰), 물에는 동서의 구분이 없지만 상하(上下)의 구분은 있다. 인성(人性)이 선(善)한 것은 마치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으니, 인성(人性)은 불선(不善)이 없고 물은 아래로 흐르지 않음이 없다. 물을 막아 역수함이 있으나 이를 어찌 물의 성(性)이라 하겠는가?
②맹자 왈(孟子曰), 우산(牛山)의 나무들은 일찍이 아름다웠더니 마을에 가까이 있어 남벌(濫伐)되었고, 또 싹이 돋아 나오면 우양(牛羊)을 놓아 먹였으니 벌거숭이가 되었다. 이를 어찌 산(山)의 성(性)이라 하겠는가?
이런 물음에 생원시험에 응시한 엄장한은, 『성(性)을 다룸에는 이(理)이다. 이(理)는 없는 곳이 없으니 산수(山水) 자연에 성(性)이 있어 움직임(動)과 고요함(靜)이 있고, 지각(知覺)은 없으니 어찌 반드시 정의(情意)로 논(論)하리오. 그것은 무슨 문제인가 하면, 물(水)은 밑으로 움직이는 물질이요, 산(山)은 고요히 움직이지 않는 사물이다. 움직이고 움직이지 않음은 각각 자연의 성(性)이 있음이니, 물이 밑으로 흐름은 어찌 물의 본성이 아니라 하겠으며, 나무(木)의 싹이 돋아남은 어찌 산(山)의 천성(天性)이 아니리요. ①대개 물이라 함은 한홉(一夕)의 물이 많이 모였음이요. ②산(山)이라 함은 주먹만 한 돌(石)이 많아 모였음이다.
그러하니, ①물을 쳐서 뛰어 오르게 하면 이마를 넘어 갈수 있다고 한 것이 어찌 물의 성(性)이라 하겠으며, ②산(山)의 나무를 베어내고 소와 양을 먹여 씻은 듯 벌거숭이 된 것을 어찌 산(山)의 성(性)이라 하리오. 그러한즉 ①아래로 스며들고 흐르는 성질을 인도하여 쳐서 뛰어오르는 환(患)이 없게 함이 생물(生物)의 이(理)요. ②도끼로 베어내는 것을 면하게 한즉 수분을 먹고 살아나는 자연히 상하(上下)의 본분으로 재목이 생장하여 스스로 밤기운의 기름을 얻을 것이다.
사람의 성(性)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고 산(山)의 생물과 같은 고로, 고자(告子)의 논성(論性)의 선악(善惡)에 있어 산수(山水) 자연의 성(性)을 인용함이요. 본 취지는 정의(情意)로 말하라 함이 아니다. 이를 헤아림에는 맹자의 성선(性善)의 이(理)에 있어 반드시 물(水)과 산(山)을 말한다.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은 물의 성(性)이요, 나무가 싹이 돋아남은 산(山)의 성(性)이다. 그러므로 물을 치면 튀어 오르는 고로 아래로 흐르는 성(性)을 잃은 것이요, 우산(牛山)의 나무를 베어내고 짐승을 먹이는 것은 싹이 자라는 성(性)을 상실하게 한 것이다. 반드시 물(水)의 성(性)에 따라 밑으로 흐르게 한 연후에야 그 천성(天性)을 얻는 것이요. 산(山)의 성(性)에 따라 싹이 자라도록 한 연후에야 그 본성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다.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은 즉 사람 본연의 성(性)이요, 싹이 돋아나는 성(性)은 스스로 살아나는 성(性)이다. 산수(山水)의 성(性)과 더불어 사람에 다름이 없으니 그 정의(情意)로 하여 논(論)한즉, 사람의 성(性)은 일어나 정의(情意)가 없고, 산수(山水)의 성(性)은 다만 일어나지 않는 성(性)인즉 어찌 정의(情意)가 있어 가히 말을 하리오. 사람과 사물의 성(性)을 함께 밝힘(請申)에는 근본 뜻은 다름이 없는 고로, 물이 흘러 막힘이 없음을 보면 물의 성(性)은 가히 알 것이요. 산(山)의 초목이 성(性)히 사는 것을 보면 산(山)의 성(性)을 가히 알 수 있다. 산수(山水)의 성(性)을 보면 사람의 몸체에 그 양심(良心)이 있어 거의 고망지폐((이욕소제이망기본심(枯亡之獘:利欲所制而亡其本心-이욕에 사로잡혀 본심을 잃음))가 없고, 그 야기(夜氣)를 기르고 그 본연의 성(性)을 닦아 즉 청명한 기운이 자연히 몸에 배고 인의(仁義)의 성(性)이 스스로 마음에 충만하게 된다.
아, 어떻게 그러함을 밝히리오. 논어에 왈(曰),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智者樂水)라고 하였으니, 산(山)은 정(靜)을 본체로 한 성(性)이니 아래로 나아가고, 물(水)은 동(動)을 본체로 한 성(性)이니 사물을 생장한다. 취하(就下)가 어찌 성(性)이 아니리오. 생물(生物) 또한 성(性)이 아니리오. 그 본문(本文)의 말한 바 이(理)를 궁구하면 즉 산수(山水)에는 이미 자연의 성(性)이 있음을 간파하리오.』라고 답한다.
맹자에서의 산수(山水)의 성(性)을 밝히고, 위로 성선(性善)이 발흥하는 근본 이론에 대한 시권(試券)▣논어에서의 퇴성기사(退省其私)와 독처발(獨處發)에 대한 시권(試券) [해석. 울진향토사연구회 윤대웅 회장]
이 시권(試券)은 “논어에서 공자왈(孔子曰), 내가 안회(顔回-안자)와 더불어 종일 말하되 되묻지 않아 어리석은 것 같더니 물러간 뒤 그를 가만히 살펴본즉 능히 이치를 계발해 실천한다. 회(回)는 어리석지 않다. (集註) ①연평이씨 설명은 왈, 퇴성기사(退省其私-물러나 살펴본다)에 있어 퇴여성(退與省)이란 것이 공자에 속한 말인지 아니면 안자(顔子)가 공자의 말씀을 살펴본다는 것인지? ②정자 왈(程子曰), 퇴(退)는 공자가 그의 충(忠-성심)을 살펴본다는 것으로 주자(朱子)가 이르되, 공자가 물러나 안자의 사사로운 행실을 살펴본 것이다라 하고, 또 퇴(退)는 공자의 퇴(退 )가 아니라 안자의 퇴(退)라 하였다. 어느 것이 맞을까? 정자가 사(私)라 함은 스스로 한 바라. 주자가 이르되 집에 홀로 거처함이라 했으며. ③발자(發字)에 있어 정자는 개발(開發)이라 하고, 주자는 발명(發明) 또 계발(啓發)이라 했다. 두 선생의 말씀의 뜻은 동이(同異)가 있다. 말해 보라.”이다.
이에 당시 19세로 생원시험에 응시한 엄장한은,『여러 가지 법으로 대답할 수 있다. 즉 퇴(退)는 공자와 안회가 같으며, 성(省)은 공자와 안회가 다르다. 무엇인즉 하면 공자의 도(道)는 지극히 크고 오묘하며 안자의 공부는 밝고 또 지혜로운 경지에 있는 고로, 비록 어리석은 것 같으나 잠잠히 뜻을 습득하여 가져서 홀로 있을 때 반복하여 성찰함이니, 성사(省私) 두 글자는 하필 공자의 도(道)에 비정할 수 있겠으며, 어찌 안자의 공부에만 오로지 연계하리오.
이로써 연평이씨 장(章)의 여우(如愚) 두 글자를 가지고 특히 말함은 안자의 명철(明哲)을 말함이요. 성사(省私) 두 글자는 역시 또한 안자가 체득한 공부를 찬양함이다. 이천(伊川-정자)의 성사(省私)는 안자가 배움이 있어서 조용히 스스로 살피고 아울러 공자의 도(道)를 일컬음이다. 그러한즉 퇴이소적(退而所適)이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개발(開發)함이요. 발명 또한 같고 다름이 없으니 가히 분별하여 다시 어찌 그 사이를 의아해 하오며, 또 반드시 본문(本文)의 말한바 이치를 먼저 탐구하고 추리하여야 하며, 주석(註釋)한 연후에 이 장(章)의 뜻을 분별할 수 있으니 무엇으로 그러함을 밝히리오.
이 장(章)의 교훈은 각각의 취지가 본문 한 구절에 귀착된다. 즉 그 뜻은 어렵지 않게 가히 알게 된다. 주석에서 이미 명백해졌으니 즉 그 뜻을 미루어 가히 알아볼 수 있다. 이러므로 선유(先儒)들이 논한바 이 뜻이 비록 맞으나, 호씨(胡氏-고자를 지칭)의 설(說)에는 발(發)로써 상(上)으로 삼아 미발(未發)의 뜻은 많이 잃어 크게 치우친 고로 뜻의 권역에 있어서 말이 막히는 병폐를 면치 못하였고, 진씨(陳氏)의 논(論)에는 너무 거창하게 하고자 하여 미발(未發)의 병폐 간혹 크게 잃은 고로 어려운 것을 좋아하는 병폐를 면치 못한다.
그러나 주자(朱子)의 답(答) 황직경(黃直卿)의 서(書)에 보면 명백 간략하여 가까운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확실해진다. 전인들의 미발(未發)의 뜻을 발(發)하고 선현의 미론(未論)의 뜻을 확장해가면 가히 천고(千古)의 의심을 분별 간파할 수 있다. 그리하여 금일 스스로 성인들의 경전과 현인(賢人)들이 전(傳)한 논설에 의탁하여 만약 하나로 관통 합하여 말해 나가고자 하면, 어금니가 어긋나듯 연결되지 아니하고 간혹 두 항목으로 분리되어 산란하여 분별하지 못하게 되고, 간혹 서책 요점을 따라서 다해도 본문(本文)과는 서로 어긋나며, 간혹 망령된 말과 미묘한 속에 빠져 전체의 뜻을 잃게 된다.
진실로 일설(一說)을 잡고, 일설(一說)은 버려서 정확히 논변(論辨)한즉 정사(政事)에 있어, 마치 맹인이 코끼리 모습을 말할 때 그 귀를 잡고 기(箕-키)같다 하고 그 코를 잡고 방아공이 같다 함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어찌 발(發)의 요지를 터득하며 그 깊은 뜻을 분변하리오. 이를 미루어보면 금일 명증(明證)의 도(道)는 도리어 본문의 취지에서 찾아 주석(註釋)한 바를 탐구한 연후에 성현들의 가르침을 비추어보면 마치 일성(日星)의 밝음과 같을 것이며, 마치 거물의 비줄을 들어 올리는 것과 같을 것이니, 다시 분분하게 천착(穿鑿)하여 옥상옥 상상상(床上床)으로 하랴.
그러한즉 나는 금일 본 문장을 들어 가히 밝힌다. 선현들의 명백한 가르침과 선유들의 주석으로 밝힘에 있고, 나는 여러 갈래로 논설하고자 아니한다』라고 답변한다.
논어에서의 퇴성기사(退省其私)와 독처발(獨處發)에 대한 시권(試券)(앞면)
논어에서의 퇴성기사(退省其私)와 독처발(獨處發)에 대한 시권(試券) (뒷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