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림(私有林) 벌채(伐採) 지령서(指令書)
-
사유림 벌채허가서소개하는 자료는 일제강점기인 소화(昭和) 17년(1942년)에 울진군수가 원남면 신흥리에 소재한 사유림(私有林)의 벌채(伐採)를 허가하는 지령서(指令書)로 총 2장이며, 크기는 가로 190cm, 세로 260cm이다.
벌채 허가서인 이 지령서에는 사유림 벌채의 개소(箇所)와 면적(面積), 벌채 수종(樹種)과 수량(數量), 벌채 방법, 용도(用途), 반출(搬出) 채취(採取) 기간 등이 상세하게 명시되어 있다.
뒤쪽에는 벌채 시에는 이 지령서를 반드시 휴대해야 하고, 작업 중에는 특히 산불에 주의할 것 등을 기록하고 있다.
또 다른 한 장의 앞쪽에는 ‘농촌진흥(農村振興)을 위(爲)하야 먼저 식림(殖林)을 합시다’, ‘산(山)을 망치지 말고 임총구성(林叢構成)을 도(圖)합시다’, ‘온돌개량(溫突改良)과 이장개선(蘺墻改善)을 속(速)히 합시다’, ‘하안제당산각공지(河岸堤塘山脚空地)에 속성수(速成樹)를 증식(增殖)합시다’ 등의 구호가 나열되어 있다.
뒤쪽으로는 벌채 장소, 면적, 벌채 수종과 방법 등이 또 다시 기재되어 있고, 주의사항 란에는 채취한 수종의 반출 기간을 5월 23일부터 24일까지 이틀간으로 제한하고 있다.
앞서 본지에서는 2008년 9월호「발굴(發掘), 울진의 옛 자료」코너를 통해 일제 강점기의 산림 관련 행정 문서를 소개한 바 있다.
당시에 소개됐던 문서는 일제 강점기 소화(昭和) 8년(1943년)에 발행된 벌채 허가서, 소화 13년에 발행된 북면 면유림 보호비 영수증, 소화 8년에 발행된 입산증명 수수료 영수증 등 3건이었다.
그 당시의 자료와 이번에 소개되는 자료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통치 준비기’, ‘통치 형성기’, ‘회유 조정기’를 거친 다음의 마지막 단계인 ‘병참 기지화 및 전시 동원기’에 발행된 것이다.
이 시기는 일제가 만주 사변 이후 태평양 전쟁 등으로 인해 패망이 예고되던 최후의 발악 단계로, 조선 땅에서의 일제 수탈이 극에 달했던 시점이다.
따라서 이번호에 소개하는 자료 역시 한국 근·현대사의 산림사는 물론, 울진 지역 향토사를 연구하는데 있어서도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한편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기후와 가옥구조의 특성상 임산연료를 많이 사용해왔고, 일제강점기에는 전쟁 물자를 조달하기 위한 산림 벌채가 남발되었다.
이에 이승만 정부는 1951년 ‘산림보호임시조치법’을 제정하여 해방 직후의 산림파괴로 인한 응급 사방에 주력하고, 헐벗은 산에 아카시아, 오리나무, 리기다소나무 등 속성수 조림에 힘썼지만 재원 부족과 기술 부족으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 후 1961년에 ‘산림보호법’이 제정됐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정부의 산림정책이 실시되었다.
우선 사방 사업에 힘쓰고, 1965년부터 1971년까지 ‘치산녹화 7개년 계획’을 확정한 정부는 1967년부터 1976년까지 ‘수계(水系)별 산림복구 종합계획’과 ‘제1·2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 등을 세워서 치산치수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에 따라 봄철 식목일과 가을철 육림의 날을 휴일로 정해 주민, 학생, 공무원, 군인들까지 총동원하여 산지의 소유주에 상관없이 나무를 심고 가꾸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왔다.
※개인 또는 기관, 단체에서 소장하고 있는 울진의 옛 자료들을 제공해 주십시오. 지역에 미처 알려지지 않은 소중한 문헌, 자료, 사진 등을 제공해주시면 [울진뉴스] 지면에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개인 소장 자료로써 무단 전재, 스캔, 복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