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호정(蓮湖亭),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아지고

기사입력 2011.03.03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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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정은 울진군 울진읍 연지리 797-6에 있다.
연호(連湖)라고 불리는 자연호수의 북쪽 기슭 송림에 남향으로 세워져 있다.
정자는 순조 15년(1815) 죽루정자(竹樓亭子)인 향원정(香遠亭)을 세웠는데, 오랜 세월로 퇴락하자 1922년 7월 군수 이기원을 비롯한 뜻있는 인사들이 힘을 모아 옛 동헌의 객사 건물을 옮겨 세우고 연호정이라고 현판을 걸었다.

오랜 세월 호수에 토사(土砂)가 유입되면서 마름풀 등이 호수를 덮자, 1990년에 울진군이 호수 주변 정화(淨化)와 아울러 최근 야외 공연장과 산책로(散策路)를 조성하여 군민의 좋은 휴식공간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연호정은 말 그대로 호수와 주변 경관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운치를 더하는 곳이다.
연잎이 호면(湖面)을 덮고 연꽃이 피기 시작하면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아진다.”는 애련설(愛蓮說)의 향원익청(香遠益淸) 그대로다.

처음 정자 이름을 ‘향원정’이라 지었다는 의미가 절로 와 닿는다.

연호정-1960년 초반

【건축 이야기】
1815년(순조15) 연호 북쪽 기슭에 정자를 세우고 향원정(香遠亭)이라 명명하였다.
그 후 향원정은 오랜 비바람으로 무너져 1922년 7월 당시 울진군수 이기원(李起遠)이 고을의 선비들과 함께 옛 동헌의 객사 건물을 옮겨 세우고 연호정이라 이름을 붙였다.

“고을 사람들이 기금을 마련하고 군 동헌(東軒)을 보수할 때 쓰다 남은 목재와 기와를 수습하여 옛터를 손질하고 정자를 중건(重建)하니 그 규모가 여섯 칸이나 되었다. 비록 조각이나 단청은 못했지만 풍류를 즐길만하니 현판(懸板)하기를 연호정(蓮湖亭)이라 하고 3개월여 만에 준공을 하였다”고 죽차(竹此) 장규한(張奎漢)의 연호정 건축기(蓮湖亭 建築記)에 나온다.

연호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익공양식의 정자로 지면에서 약 30㎝ 띄워 누마루를 깔고 주위에 평난간을 돌렸다.

1971년 울진군이 정자 일부를 보수하고 연호 주변을 정비하였으나 오랜 비바람에 시달려 정자는 낡고 연호는 무성한 갈대와 토사의 유입으로 황폐해졌다.
1990년 울진군에서 다시 정자를 보수하고 연호를 조성하는 등 주변을 정비하였다.

최근에 울진군이 호수 주변 정화(淨化)와 아울러 야외 공연장과 산책로를 조성하여 군민의 좋은 휴식공간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현판들도 여러 장 걸려 있다.
연호정(連湖亭)과 1926년 7월 26일 지역유림에서 운자(韻字)로 지은 시(詩)인 우산(愚山) 남상규(南相奎), 죽차(竹此) 장규한(張奎漢), 만초(晩樵) 장규형(張奎炯), 일우(一愚) 장주신(張柱臣), 봉산(鳳山) 남목영(南穆永), 벽오헌(碧梧軒) 윤규병(尹奎炳), 해암(海菴) 전대석(田大錫), 국은(菊隱) 윤병기(尹炳夔), 차산(次山) 남식영(南湜永), 소계(笑溪) 윤용기(尹龍璣) 등의 시판(詩板)이 게시되어 있다.

연호정은 연호와 송림이 멋들어지게 펼쳐진 나지막한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 누구나 쉬이 오를 수 있는 정자다.

연호정-1970년

연호정-1970년 초반

【누정 이야기】
-부절(符節)을 맞추듯 그 곳에는 정자가 서고.

이곳에 정자라도 하나 있었으면 하는 장소가 있다.
또는 참으로 있을 그 자리에 정자가 있을 때, 그런 풍경을 만나는 느낌은 예나 지금이나 같을 것이다.

연호정도 그러한 곳의 하나다.
「아! 호수와 산이 명승이 되는 것과 정자(亭子)와 대(臺)가 흥하고 폐함이 모두 때를 기다린 후에 이루어질 수 있는가 보다. 동정(洞庭)과 같이 큰 호수도 악양루가 지어진 후에 풍광(風光)이 새로워 졌고, 서호(西湖)처럼 아름다운 호수도 누당(樓堂)이 생겨난 후에 한층 더 소문이 높았다. 만약 호수가 없다 해도 유관(遊觀)의 미(美)를 극대할 수 없고, 이 정자가 없다면 관망하며 즐길 수 없을 것이니 그렇다면 이 호수(湖水)와 정자(亭子)는 서로가 짝이 되는구나. 훌륭한 호수와 정자가 장안 근교에 위치하고 있었다면 글을 짓고 쓰는 선비와 바람을 다루고 달을 그리는 나그네들이 매일같이 시(詩)를 지어 노래하며 왕래가 끊어지질 않을 것인데, 변방 호수 기슭에 자리하고 있어 적막하니 그것이 한(恨)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 고을에 명승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망양정이 있어 관동팔경 중에 하나이긴 하지만 빈터만 남아있는 실정이고, 함벽정(涵碧亭)이란 곳도 이름만 지(誌)에 전하고 있을 뿐 흔적이 없는데, 이 정자만이 날아갈 듯 호상(湖上)에 임하고 있으니 끝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명소이다. 앞으로 이 정자에 오르는 자는 한번 둘러보고 이곳의 풍광(風光)이 범상치 않음을 인정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장규한의《연호정건축기》에 나온다.

이 기문에서는 하나의 명소로 완전하려면 자연 혼자만이 존재할 때가 아니라 그기에 어울리는 인간의 안목이 드러날 때만 완전하게 됨을 말하고 있다.

명소라는 것이 무엇인가. 자연이 언제 명소라고 우긴 적이 있던가. 이미 명소라는 곳도 인간의 말인 것을.

말하자면 자연과 합일체가 되기 위한 매개체가 필요했던 것이다.
정자나 누(樓)가 있으면 그곳이 곧 생명을 얻는 자리가 되는 것으로 보았다.
인공물이 없을 경우 무슨 대(臺, 坮)라고 이름을 지어 자연과 접하는 장소를 만들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읊은 김춘수의 시처럼 이름을 얻는 것이리라.

정자는 우리 선인들에게 풍류의 쉼터요, 자연을 보다 가까이 자신의 내면으로까지 끌어들여 합일하려는 높은 사유체계의 장소다.
정자는 장소 선택의 동기, 즐기는 사람의 마음 등이 어우러져 형이상학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매력을 갖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유불선의 세계가 가미되기도 하는데, 맑고 깨끗하여 부정이 없는 자연을 닮으려는 심성 그것으로 귀결된다 하겠다.

옛 선인들은 자연과 깊은 교감 속에서 제대로 된 학문적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하였다.
자연과의 깊은 교감의 한 장소로 정자만한 곳이 또 있으랴.

연호정은 정자에 걸린 국은(菊隱) 윤병기(尹炳夔)가 지은 시에서 “여지승람에 새 명물로 등재되어 서호(西湖)의 악양루(岳陽樓) 형상”이라고 했다.

연호정은 호수가 보이는 송림 좋은 곳에서 계절에 따라서는 연꽃을 감상하고, 물풀위로 날아오르는 새들의 소리를 듣기도 하고, 호수에 내린 한 조각구름을 보며 멀리 태백준령으로 지는 석양을 감상하기에 더 없이 좋은 읍내 가까운 아름다운 명소다.

연호정-1970년 중반


【관련 인물】


- 박영선(朴永善)
죽존(竹尊) 박영선은『울진군지』관안에 “무과(武科)로서 1889년(고종 26) 4월에 인동부사(仁同府使)로 있다가 부임, 1890년 8월에 정부인사에 따라 내금장(內禁將)으로 승진하였다.”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가 울진현령으로 재임하던 때는 죽루(竹樓)로 연호정이 아니라 향원정(香遠亭)이었다.
1889년에 이 향원정에서 남긴 시(詩) 한 수가 있다.
「연꽃을 사랑하는 선비가 서늘한 날을 노래하는데(蓮花博士詠凉天)
가을 호수, 높은 정자에 묘연히 앉았다(秋水高亭坐杳然)
한없이 맑은 생각에(消愛無量淸淨想)
옛날 불을 밝혀 놀던 시인들의 향연이 아련하다(古燈詩
佛大香緣)」

- 이기원(李起遠)
『울진군지』관안에 “이기원은 1920년 6월에 강원도 서기(書記)로 임명받아 1923년 2월 양구군수(楊口郡守)로 전출되고 강릉에서 살았다.”고 나온다.

1895년 울진은 현(縣)에서 군(郡)으로 승격되고, 1914년 울진군과 평해군을 통합하여 ‘울진군’으로 명명한다.

일제강점기에 군수로 부임하여 군내 인사들과 같이 1922년 7월 16일에 옛 동헌(東軒)의 객사건물(客舍建物)을 옮겨 세우고 연호정(蓮湖亭)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 그 외
지역에서 시문을 짓던 유림들이 애용한 것으로 보인다.
연호정에 걸린 시를 지은 선조를 둔 후손들이 최근까지 계모임을 하며 그 정신을 기렸다.

조상의 멋진 풍류정신을 잇자고 매년 7월에 연호정에서 모임을 이어왔으나, 주도하던 사람들이 객지로 나가거나 하나 둘 세상을 뜨자 지금은 없어졌다고 한다.

【주변 경관】
- 향기는 멀수록 맑아지고.
연호는 옛날 고씨(高氏)가 살던 마을이었으나 이 마을의 땅이 꺼져 늪이 되었다고 하여 고성(高姓) 늪이라고 전해온다.

구한말까지만 해도 호수 주변이 지금의 울진읍 시내 중심부까지 미쳤으며, 현 군 농협 뒤에서 낚시를 할 정도의 방대한 호수였다고 한다.

그러나 오랜 세월 호수에 토사(土砂)가 유입되면서 호수가 잠식되어 지금은 호수 둘레가 약 2㎞, 수심 2m 안팎으로 작아졌다.

연호와 정자를 일러 서호(西湖)의 얼굴이며 악양(岳陽)의 형상이라고 했다.
서호와 악양은 중국에 있는 명소이다.

당나라 성당(盛唐)시대의 대표적 시인 두보(杜甫)가 지은 등악양루(登岳陽樓)가 유명하다.
연호정 경관과 비슷한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시를 음미해보자.
「일찍이 동정수의 명성을 들었더니 이제야 악양루에 오름이라(昔聞洞庭水 今上岳陽樓)
오나라 초나라가 그 동녘과 남녘을 쪼개고(거의 동정호로 분계가 된다) 하늘과 땅이 낮밤으로 떠 있음이라(吳楚東南坼 乾坤日夜浮)
일가붙이 벗에게서 소식 한 글자가 없는데, 늙고 병든 몸은 외로운 쪽 배에 기대었구나!(親朋無一字 老病有孤舟)
전쟁은 관산 북녘(고향 땅에) 그칠 새 없으니 난간에 기대어 한없는 눈물만 흐른다(戎馬關山北 憑軒涕泗流)」

‘안사(安史)의 난’이 중국천하를 덮고 있던 시절이다.
전란에 일가붙이와 격리되어 넓은 천지를 떠도는 외로운 고주(孤舟) 같은 신세다.
비장미(悲壯美), 그리고 시적 인생의 절정기에 드러내 보인 작품으로, 그의 시풍을 대표하는 시로 남아 있다.

또 연호정을 향원정이라고도 했다. 향원(香遠)이란 말은 중국의 주돈이(周敦이頤, 1017∼1073)가 지은《애련설(愛蓮說)》에 나온다.

“물이나 뭍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의 꽃 가운데 정말 사랑할 만한 것이 대단히 많지만, 나는 유독 연꽃이 진흙탕 속에서 나왔지만 그에 물들지 않고 맑고 잔잔한 물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은 것을 사랑한다.”

그리고 “향기는 멀리 있을수록 더욱 맑다”고 했다. 또 “멀리서 보기에 적당하지, 가까이 감상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고 했다.
바로 연호정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고 무엇인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 정자가 있고, 바로 아래 적당한 거리를 두고 연꽃이 핀다.
때 맞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속으로 하화향(荷花香)이 잡힐 듯 실려 온다.
선인들이 ‘향원정’이나 ‘연호정’이라 명명함은 다 그런 연유였을 것이다.

연꽃이 핀 호수하면 난설헌(蘭雪軒) 허초희(許楚姬, 1563∼1589년)의 시가 떠오른다.
강릉에서 태어난 그녀는 유명한《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許筠)의 누나이다.
8세 때 이미 시를 지었을 정도로 천재적인 시재(詩才)를 발휘하였으나 27세의 나이로 요절한다.

그가 지은 채련곡(采蓮曲, 연꽃을 따는 노래)이란 시다.
「가을에 맑은 호수 옥돌처럼 흘러가고(秋淨長湖碧玉流, 추정장호벽옥류)
연꽃 피는 깊은 곳에 난초 배를 매어 놓고(蓮花深處繫蘭舟, 연화심처계란주)
물 건너 당신에게 연꽃을 던졌는데(逢郞隔水投蓮子, 봉랑격수투련자)
혹시 남이 봤을 가봐 반나절이나 부끄러웠네(或被人知半日羞, 혹피인지반일수)」

쪽배를 타고 그님이 있는 호수 어디쯤 왔다.
배도 혹 누가 볼까봐 연잎 무성한 곳에 숨겨두었다.
그대를 부르지도 못하고 연꽃을 던지고 있다.
연꽃 핀 호수 한 쪽에 숨어서 부끄러워하고 있는 그녀.
마치 한국고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나간다.

연호정뿐만 아니라 울진의 승경을 읊은 곳에는 울진의 옛 별칭인 선사(仙槎)가 자주 나온다.
선사란 신선들이 뱃놀이하는 듯 한 아름다운 고장이란 뜻이다.
그 선사구향(仙槎舊鄕) 중에서 명소니 말하여 무엇 하겠는가.

연호정에서는 문인 묵객이 절로 서정에 젖는다.
눈앞에는 연꽃이 피고, 고개 넘어 지척인 바다를 생각하고, 서쪽으로는 태백준령이 두르고 있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구한말 지역 유림들이 이곳에서 지은 시들을 살펴보면 연호정 주변경관이 연상된다.
만초(晩樵) 장규형(張奎炯)은 “노을은 붉게 타도 산은 푸르다네, 신선의 쪽배는 어디에 있는지”라고 읊고, 일우(一愚) 장주신(張柱臣)은 “가을물 붉은 연꽃 저 언덕의 정자, 밝은 달은 가까이 섬돌 앞에서 희고, 외로운 산은 멀리 들 밖에서 푸르러 신선의 떼배는 아득히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차산(次山) 남식영(南湜永)은 “북쪽엔 푸른 산 정자 앞에 맑은 호수, 옥 같은 물위에 곱게 핀 신선화여, 바람향기 담박함은 정자안의 참맛이요, 안개 이슬 자욱함은 정자 밖의 표정일세, 이정자 짓고 나니 더 한층 절경인데, 시장은 가까워도 한가하기 산중일세, 기둥에 기대어 바라보니, 석양빛 옛 나루에 갈매기 돌아오네”라고 읊었다.

소계(笑溪) 윤용기(尹龍璣)는 “석양길 주막에 가던 말도 멈추게 하네”라고 읊었다.

석양 길에 가던 말을 멈추게 하는 곳, 배를 띄워 하나 가득 달빛 싣고 오던 곳, 시내 가까이에 그윽한 선계(仙界)를 담은 곳, 불이(不二) 그곳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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