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간 이어온 스승의 은혜「몽양사(蒙養祠) 계회(契會)」

기사입력 2011.06.08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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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여년전 서당 훈장 송암(松菴)·한재(寒齎) 선생에게 글 배운 학동들이 당계(堂契) 결성
몽양사(蒙養祠) 계회(契會) 처음 시작했던 사람들의 후손들이 매년 몽양사에서 계회 열어
계회 후손 죽변면 뒷당 30여명, 북면 신화리 장씨 10여명, 울진 고성리 주씨 10여명 거주   


<몽양사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한 올해 계회 참석 회원들>

5월 14일 오전 11시, 죽변면 후정1리 뒷당(후당리, 後塘里) 마을회관으로 나이 든 노인들이 한사람 두사람 모여든다.  

어떤 이는 마을 회관 옆 몽양사 뒤쪽에 위치하고 있는 전이석·주필대 유허비(田爾錫朱必大遺墟碑) 앞에서 간단하게 목례를 올린다.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퇴락한 ‘몽양사(蒙養祠)’ 전경>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농사일을 잠시 접고 마을회관으로 모인 이들은 모두 20여명으로 남녀가 섞여 있다.  
이들은 300여 년 전 몽양사(蒙養祠) 계회(契會)를 처음 시작했던 사람들의 후손으로, 이날 계회에 참석하는 이들이다.  

할아버지에서 아들로, 아들에서 다시 손자로 이어지고, 남편이 먼저 세상을 뜨면 부인에게로 이어져온 몽양사 계회.  

현재 울진 지역에 남아 있는 몽양사 계회 회원은 50여명으로 담양 전씨를 주축으로 하는 죽변면 뒷당 30여명, 북면 신화리 울진 장씨 10여명, 울진읍 고성리 신안 주씨 10여명이다.    

계회에 참석한 이들은 수인사를 나눈 다음에 지난 한 해 동안의 수입과 지출 내역을 꼼꼼히 따져보고 난 후, 계문서인 계첩(契帖)에 한문으로 내역 전말을 적어 넣는다.  
올해 먹을 갈아서 붓으로 계첩에 문서를 꾸미는 일은 전종술(후정1리)씨가 맡았다.  

계 문서를 작성한 후에는 참석자들이 몽양사 신축 계획과 관련해서 이런저런 의견을 진지하게 주고받는다.    

문서 작성과 계회 운영 전반에 관한 논의가 끝나고,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난 계원들은 다시 수인사를 건네고 내년을 기약하며 뿔뿔이 헤어진다.  


<계회(契會)를 마친 회원들이 간편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

애초 몽양사 계회는 매년 음력 삼월 스무날로 잡혀져 있는데, 올해처럼 계원들 서로가 바쁠 때는 상의를 거쳐 날자가 변경되기도 한다.    

300여년 꾸준하게 명맥을 이어온 계회는 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이례적이다.
해마다 빠짐없이 이어지고 있는 몽양사 계회의 역사는 3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몽양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당안(堂案) 좌목(座目). 향사의례(享祠儀禮)에서의 제관 선출과 자리의 차례를 기록하고 있다(표지)>

<몽양사(蒙養祠) 회고(懷古) 시집(詩集)>
300여 년 전 당시 죽변 일원에서 가장 양반동네로 자리 잡고 있던 마을이 뒷당 마을이었다.  

울진군지 등에 따르면 뒷당 마을은 1500년경에 담양인(潭陽人) 전지인이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개척하여 전씨(田氏) 집성촌(集姓村)을 이루었다고 한다.  

마을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난 다음에 동네 한복판에 자연스럽게 서당(書堂, 글방)이 생겼고, 당시에 마을 학동들에게 한학과 예절을 가르치던 훈장(訓長)이 송암(松菴) 전이석(田爾錫)과 한재(寒齎) 주필대(朱必大) 선생이다.  

송암 전이석 선생은 1599년에 태어나서 1652년 53세로 생을 마감했고, 한재 주필대 선생은 1616년에 태어나서 1693년에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몽양사 계회는 송암과 한재 선생에게 글을 배웠던 학동들이 후일 양 선생을 기려서 만든 계모임이다.
이 계회에서는 해마다 향사(享祀, 제사)를 받들면서 모임을 지속해왔다.   

송암 선생이 한재 선생보다 17살이 많은 만큼, 뒷당 마을 서당 훈장을 송암 선생이 먼저 맡았을 것으로 미루어 추정해보지만 명확하지는 않다.  

몽양사 계회가 송암 선생이 세상을 떠난 1652년 이듬해부터 시작됐다고 가정하면 올해로 358년째를 맞이하는 것이고, 한재 선생이 세상을 뜨고 난 이듬해인 1694년부터 시작됐다고 가정하면 올해로 317년째에 접어드는 셈이다.  

그리고 몽양사가 창건된 1716년부터 계회가 시작됐다고 가정하면 295년의 역사를 지니는 셈이지만, 일반적으로 어떤 모임이 결성되어 운영되는 과정에서 사당 등의 건립이 논의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몽양사 창건 이후에 계회가 시작된 것으로 유추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몽양사(蒙養祠)’가 『서원지총서(書院誌叢書)』에는 ‘몽양재(蒙養齋)’로 기록되어 있다>

<간평비봉기(看坪秘棒記)로 몽양사에 딸린 논밭의 소작료율을 정한 문서이다>

<몽양사(蒙養祠) 향사(享祀, 제사)의 제수 물목을 기록한 문서>

몽양사 계회에 참석하는 이들은 애초 후정1리 마을회관 바로 뒤에 자리한 몽양사에 모여서 계회를 열었지만, 몽양사가 퇴락하면서 마을회관을 임시로 빌려서 사용하고 있다.  

후정1리 뒷당 마을회관이 자리한 터와 인근의 대지는 몽양사 소유의 부지로 매년 거주하는 사람들에게서 일정한 사용료를 받고 있다.  


<몽양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당안(堂案) 좌목(座目) 속지>

<여러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몽양사 소장 당안(堂案)>

몽양사는 조선 후기의 사당으로, 조선 중기의 전이석과 주필대의 효행과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1716년(숙종 42년)에 창건됐다. 

이 사당은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년)에 훼철되었고, 마을에서는 남아 있던 강당을 강학소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현재 남아 있는 몽양사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1칸의 골기와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많이 허물어져 있어서 사용하기가 어렵다.  

지역 유림들과 몽양사 계회 회원들이 십 수 년 전까지만 해도 매년 음력 11월 19일에 향사(享祀, 제사)를 지냈다. 

 
<한재(寒齎) 주필대(朱必大) 선생의 유집(遺集)>
『서원지총서(書院誌叢書)』는「몽양재(蒙養齋)에는 효자인 전이석(田爾錫)과 생원인 주필대(朱必大)를 배향하고 있으며, 숙종 임진년(壬辰年)인 숙종38년(1712년)에 처음으로 제사하기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서원지총서에는 숙식 등의 일상적인 주거활동 공간을 겸한 재실의 성격을 지니는 곳인 재(齋)라고 기록되어 있다가, 언제부터 주로 제사를 모시는 의식만을 거행하는 건물을 의미하는 사(祠)로 바뀌게 됐는지는 정확히 알 길이 없다.  

현재 퇴락한 몽양사 건물 정면에는 몽양사(蒙養祠)라고 서각된 현판이 걸려 있다.  


<일제강점기이던 1937년 3월에 지역 유림들이 건립한 몽양사 뒤쪽의 유허비(遺墟碑)와 보호각>

 
<유허비(遺墟碑)에는 ‘한재주선생송암전선생(寒齋朱先生松菴田先生)’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세월이 흘러 일제강점기이던 1937년 3월에 지역 유림들이 한데 모여 몽양사 바로 뒤쪽에 유허비를 건립했다.  

비각 안에서 서향으로 자리 잡은 유허비는 비신 높이 122㎝, 너비 35㎝, 두께 13㎝이며, 비좌는 높이 15㎝, 가로 60㎝, 세로 43㎝로, 비신의 중앙에 ‘한재주선생송암전선생(寒齋朱先生松菴田先生)’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고, 옆면에 건립 연대가 새겨져 있다.  

몽양사 계회에 참석한 이들은 이 계를 몽양사 서당계(書堂契), 또는 몽양사 당계(堂契)로 부르며, 일명 계주(契主)를 당장(堂長)으로 부른다.  

당장(堂長)은 예전 서원(書院)에 딸려 있던 남자 하인을 일컫던 말로, 서원 또는 사원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몽양사 계회의 현재 당장은 뒷당 마을에서 나고 자란 전하진(田河珍. 76세)씨가 맡고 있다.  

몽양사 당장 전씨는 2000년 11월에 낡은 몽양사를 신축하고, 몽양사에 딸린 재산을 보존 관리하기 위해 자비를 들여서 몽양사 보존회를 설립했다.  

 
<전종술씨가 계문서인 계첩(契帖)을 기록하고 있다>
몽양사 보존회는 회장 전하진, 고문 전찬극, 부회장 주무용, 총무 전용우, 감사 장영환·전찬업씨로 구성되어 있다.  

보존회가 가장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은 몽양사 신축 사업으로, 현재 한수원 울진원자력본부에 1억5천만원의 사업비를 신청해두고 있다.  

전하진 보존회장은 “오랜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훼손되어 사용할 수 없는 몽양사 신축을 위해 울진원자력본부에 사업비를 신청해 두었다. 빠르면 올해, 늦어도 내년까지는 몽양사 신축이 가능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리고 “300여 년 전 처음 계회를 시작했던 선조들의 후손 가운데 일부는 타지로 떠났고, 남아 있는 사람들도 생활이 바빠서 예전에 비해 참여율이 저조하다. 그러나 해마다 전통의 맥을 이어가려는 후손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고, 보존회에서 관리하는 몽양사 소유의 재산이 있는 만큼 계회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몽양사 신축 사업이 예정대로 추진된다면 새로운 구심점이 만들어 질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을 이었다.   


<(좌로부터) 계회 회원 전찬업, 전하진, 전용우씨가 몽양사 소장 고서와 고문서를 펼쳐 보고 있다>

몽양사 계회 회원들은 몽양사를 신축하고 나면 주변 지역 초·중·고 학생들의 예절 교육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또 건물 한쪽에는 별도의 전시공간을 마련하여 대대로 몽양사에 전해져 내려오는 각종 고서와 고문서 등을 전시하며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다.  

한편 국내에서는 1613년 안동 지역의 선인들 가운데 임자(壬子. 1560년)년과 계축(癸丑. 1561년)년에 태어난 사람들이 학가산 광흥사 루에 모여 도의지교를 목적으로 임계계회(壬癸契會)를 만들고, 그 후 400년 가까이 후손들이 선조의 뜻을 기리기 위해 지금까지 좌목 순으로 행사를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2005년 알려지며 세인들의 이목을 끈 바 있다.   

당시 이 계회의 첫모임을 화공이 그림으로 옮긴 ‘임계계회도’(壬癸契會圖)’가 KBS TV쇼 진품명품에 소개되면서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 몽양사에 배향된 송암(松菴) 전이석(田爾錫)·한재(寒齎) 주필대(朱必大) ▣

◇송암(松菴) 전이석(田爾錫)
: 『울진군지』는 전이석에 대해, 「담양인(潭陽人)으로 호는 송암(松菴)이며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아버지가 병이 들어 방어(고기)를 원함에 몸소 해안에 나가 방황하다가 마침내 방어가 뛰어나왔으므로 이를 잡아 공양하였으며, 또 송어(松魚)를 원함에 하늘을 보고 통곡하니 해조(海鳥)가 송어를 물고 왔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이러한 일들을 보고 하늘이 감동한 효(感天之孝)라고 하였다.

아버지 상(喪)을 당하고는 여막을 짓고 3년 동안 묘를 지키니 후에 향인이 1716년(숙종 24년)에 몽양사를 지어 배향하였으며, 후정리(송정동) 생원(生員) 백시승(白始升)이 그의 행장(行狀)을 지었고 세마(洗馬) 이광정(李光庭)이 향사(享祀) 축문을 지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재(寒齎) 주필대(朱必大) : 『울진군지』는 울진 지역 예학의 발흥기인 16세기부터 18세기에 이르는 기간에 활동한 학자 중 한명으로 주필대를 언급하고 있다.  

주필대는 조선 중기에 근남 행곡리 주천대 옆에 우거하던 만휴(萬休) 임유후(任有後) 선생의 제자 중의 한명이다.  

만휴 선생의 대표적인 제자가 우와 전구원(愚窩 田九畹)과 한재 주필대로, 우와는 재주가 민첩했고 한재는 지조가 굳세었다고 전해진다.  

소중하게 여기던 두 제자 가운데 주필대에 앞서 전구원이 먼저 진사시에 급제하고 돌아오자 만휴는 ‘春風披壑振群芳 蘭氣先聞九畹香 有鳥不鳴鳴必大 月巢幽桂待朝陽 (봄바람이 스쳐 뭇 꽃봉오리 피게 할 때, 난초 기운 먼저 알고 구원향을 피웠더라. 새 있어 울지 않으나 크게 울 날 있을지니, 묵묵히 때 오기를 기다려 보거라)’라는 시를 지어 제자 주필대를 위로한다.  
만휴의 이 시는 한재집에 실려 있다.

주필대는 후에 사마시에 합격하며 학행을 인정받아 관동부자(關東夫子, 관동의 공자)라는 칭송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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