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봉평리 신라비’의 우수한 가치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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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3~4일 이틀간 ‘울진 봉평리 신라비와 한국 고대 금석문’ 주제 학술대회
정영호 교수 기조 강연으로 시작, 전문가 5인 주제발표와 토론자 반론 이어져

<정영호 교수는 기조 강연을 통해 울진 봉평리 신라비의 우수성과 금석문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울진 봉평리 신라비 전시관 개관을 기념하는 학술 대회가 6월 23일과 24일 양일간 울진엑스포공원 영상관에서 열려 울진 봉평리 신라비의 우수한 가치를 재인식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울진 봉평리 신라비와 한국 고대 금석문’을 주제로 관련 학계 전문가들과 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한 학술대회는 한국 고대 사학회의 거장인 정영호 단국대 석좌교수의 기조 강연으로 시작됐다.
한국 고대 사학회의 대표적 거두인 정영호 교수는 울진 봉평리 신라비는 그동안 이루어진 여러 연구를 통해
△‘신라 육부(新羅 六部)’라는 구절이 판독됨으로써 신라 정치사의 핵심 주제인 6부의 성립 시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법흥왕이 탁부(啄部)를 관칭한 반면에 왕의 동생인 사부지갈문왕(徙夫智葛文王)은 사탁부(沙啄部) 소속으로 되어 있어, 형제가 각기 다른 부를 관칭하고 있는 것이 발견됐다. 이는 신라의 부를 각기 다른 친족 집단 세력으로 설정해왔던 기존의 견해를 송두리째 부정하며 부의 성격을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노인법(奴人法)과 죄인을 처벌하는 장형(杖刑)의 존재는 법흥왕 때 율령이 성문법(成文法)으로 실제 행해졌음을 증명해주었다. 특히 신라에 복속된 집단 예민으로 보이는 노인과 이들을 다스리는 노인법의 존재는 신라의 대외적인 팽창과 대복속민 시책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부(部)를 초월하지 못한 왕의 정치적 성격, 17관등(官等)의 성립 연대, 지방통치조직과 촌락 구조, 의식행사 양상 등에 관해 새롭게 접근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는 것으로 밝혀졌다면서, 신라사 연구에 절대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 울진 봉평리 신라비와 금석문(金石文)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정영호 교수의 기조 강연 후에는 주보돈 경북대 교수의 ‘울진 봉평리 신라비와 신라의 동해안 경영’ 주제 발표와 하일식 연세대 교수의 토론, 이한상 대전대 교수의 ‘울진 지역의 고분과 토기’ 주제 발표와 홍보식 부산시립박물관 수석연구원의 토론, 김재홍 국립중앙박물관 학예관의 ‘울진 봉평리 신라비와 동해안의 생업 경제-영천 청제비 및 대구 무술오작비와의 비교’ 주제 발표와 전덕재 단국대 교수의 토론, 임기환 서울교육대 교수의 ‘울진 봉평리 신라비와 광개토왕비, 중원 고구려비’ 주제 발표와 김현숙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의 토론, 박중환 국립중앙박물관 학예관의 ‘울진 봉평리 신라비의 무령왕릉 지석·사택 지적비’ 주제 발표와 조경철 연세대 강사의 토론 등 학계 전문가 5명의 논문 발표와 질의 또는 이의 제기 형식의 토론으로 진행됐다.
학계 전문가들의 주제 발표와 토론 후에는 지역 출신 노중국 계명대 교수의 사회로 종합 토론이 벌어지며 울진 지역의 신라사와 함께 한국 고대사를 다시 한 번 새롭게 재조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