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 소광리에서 ‘황장봉산(黃腸封山) 표석’ 또 발견됐다

기사입력 2011.09.22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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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광2리 산속 임도 옆 너럭바위에서 경계 나타낸 표석 발견···‘황장봉산은 동쪽 경계인 조성(鳥城)으로부터 서쪽으로 20리(里) 까지이다’

북서쪽에서 남동쪽을 향한 암벽 하단에 약 30cm가 묻힌 채로 높이 130cm, 너비 250cm 크기 반달모양의 바위 면에 해서체로 1행 4자, 2행 4자, 3행 5자로 총 13자를 세로 3줄로 음각

명문속의 조성(鳥城)과 안일왕산성(安逸王山城) 동일시 신중해야···향후 충분한 고증 통해 조성(鳥城), 안일왕산성(安逸王山城), 기존 ‘울진 소광리 황장봉계표석’의 당성(堂城) 연관성 밝혀내야


<새로 발견된 황장봉산(黃腸封山) 표석을 가리키는 울진군청 심현용 학예사>






<『만기요람』에 기록되어 있는 울진현의 봉산(封山)은 총 3곳이다>

서면 소광리에서 황장봉산(黃腸封山)의 경계를 명문으로 각자한 또 다른 표석이 발견됐다.

이는 문화재 자료 제300호로 지정되어 있는 ‘울진 소광리 황장봉계 표석(蔚珍召光里黃腸封界標石)’이 발견된 이후 17년여 만에 새로 발견된 표석으로, 조선시대의 3금(禁) 정책 중 하나인 송금(松禁) 정책을 연구하는데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면~두천리를 잇는 산 속인 서면 소광2리 임도 옆 너럭바위 아랫부분에서 발견된 명문은 「黃腸封山 東界鳥城 至西二十里((황장봉산(黃腸封山)은 동쪽 경계(東界)인 조성(鳥城)으로부터 서쪽으로 20리(里) 까지이다))」로 1행 4자, 2행 4자, 3행 5자로 총 13자가 음각되어 있다.

새로 발견된 표석의 명문은 북서쪽에서 남동쪽을 향한 암벽 하단에 약 30cm가 묻힌 채로 높이 130cm, 너비 250cm 크기의 편평한 반달모양의 바위 면에 해서체로 세로로 3줄 각자(刻字)되어 있다.

글자의 크기는 큰 것은 가로 15cm, 세로 20cm이고, 작은 것은 가로 8cm, 세로 3cm이며, 글자의 음각 깊이는 5mm 내외이다.

울진군청 심현용 학예사는 “울진 소광리 황장봉계 표석 발견 이후 동쪽에 새로운 황장봉계 표석이 확인됨으로써 황장목이었던 금강송 군락지의 조선시대 봉산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등 황장봉산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획득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기존에 알려져 있던 황장봉계 표석에서 동쪽으로 직선거리로 약 4.5km 떨어져서 새로운 황장봉산 표석이 발견된 사실은 금강소나무 숲길의 숲 해설가인 전용운(남. 61세. 북면 두천1리)씨 등에 의해 외부에 알려졌다.

전씨는 9월 14일 금강소나무 숲길 탐방 중에 탐방객인 어른과 꼬마가 임도 옆 산 아래 바위 앞에서 사진을 찍는 등 무엇을 살피고 있기에 이를 물어보는 과정에서 황(黃), 장(腸) 등의 글씨를 확인하게 된 것으로 알려진다.

한편 새로 발견된 표석의 명문에 나타나는 조성(鳥城)에 대해 일부에서는 소광리 세덕산 위에 축조된 삼국시대의 산성으로 전해지는 안일왕산성(安逸王山城)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황장봉산 제도가 조선 숙종 6년(1680년)에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대된 점으로 볼 때 이는 성급한 추론일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황장봉산 제도가 실시되기 150년 전인 중종(中宗) 25년(1530년)에 편찬된『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울진현(蔚珍縣)조에 이미 ‘안일왕산(安逸王山)은 고을 서쪽에 있는 진산(鎭山)’이라며 구체적인 지명을 기록하고 있고, 또한 기존에 발견된 ‘울진 소광리 황장봉계표석’에도 ‘안일왕산(安一王山)’이라는 명문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울진 소광리 황장봉계표석’에 나타나는 ‘당성(堂城)’과 이번에 새로 발견된 표석에 나타나는 ‘조성(鳥城)’과의 개연성, 또는 ‘안일왕산성(安逸王山城)’과의 연관성 등은 충분한 문헌 고증을 통한 종합적 검토를 거쳐 최종적으로 판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새로 발견된 표석이 기존에 알려져 있는 표석과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인지, 또 다른 황장봉산의 경계를 나타내는 표석인지의 여부와 명문 각자 시기 등도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선시대의 산림 보호 정책인 금산 정책은『속대전(續大典)』과 『만기요람(萬機要覽)』 등에 기록되어 있다.
1808년(조선 순조 8년)에 편찬된『만기요람』에 기록되어 있는 울진현의 봉산(封山)은 총 3곳으로, 향후 또 다른 표석이 발견될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조선시대의 군정(軍政)과 재정(財政)에 관한 내용을 상세하게 담고 있는『만기요람』재용편(財用篇)에 따르면 1808년 당시 경기도와 제주도를 제외한 조선 6도에 봉산(封山) 282곳, 황장목(적송, 금강송) 봉산 60곳, 송전(松田, 솔밭) 293곳 등 모두 635곳을 봉산으로 지정하여 일반인들의 입산을 금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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