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기행(2)

기사입력 2011.10.1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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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용일(시인, 수필가)
밤 10시, 해는 아직도 산마루에 걸려 있다. 말로만 듣던 백야(白夜) 현상이다. 내일은 요정의 길을 지나 게이렝에르 피오르드를 보는 날이다. 커튼으로 빛을 가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꿈길에 든다.

요정의 길, 문을 열어 주는 기간이 한 해에 넉 달도 채 안 된다는 심술궂은 길이래서 붙여진 별명이다. 아직도 음지에는 잔설(殘雪)의 두께가 철옹성이다. 늘어진 갈지(之) 자를 수없이 그리며 깎아지른 절벽을 용케도 기어오른다. 쌓였던 눈이 녹으면서 쏟아져 내리는 물기둥이 장관이다. 언뜻 스치는 햇살에 영롱한 무지개가 차창에 어린다. 오금이 저리고 숨이 막혀 탄성조차 쉽지 않다.

고개 마루에 이르자 박수가 터져 나온다. 쉼터에서 감탄사만 연발하다가 환상의 계곡을 돌고 넘어 게이렝에르에 이른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문화유산 중 하나다. 천애(天涯)의 절벽 사이로 구비치며 파고드는 물결이 비경(秘境)이다. 산허리에 감도는 구름 사이로 흰 눈을 이고 있는 산마루가 신비롭다. 검은 절벽에 푸르른 숲, 가지마다 꽃이 피고 혹은 굵게 혹은 가늘게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수없이 걸려 있다.

시간을 잊은 채 머무르고 싶은 마음 굴뚝같으나 타고 있는 배는 구름에 달 가듯이 잘도 간다. 앞에 있던 것들이 어느덧 뒤로 가고 저만큼 멀던 것이 금방 눈앞에 다가온다. 사람살이와 무엇이 다르랴. 배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세 군데의 피요르드를 지나 20여 km도 넘는 좁고 긴 터널을 빠져나와 풀름에서 산악열차에 오른다. 해발 2미터에서 출발하여 866m의 미드랄역까지 평균 고도 55도에 이르는 낭만의 기찻길이다.

바이킹의 근성을 보는 듯하다. 험준한 계곡과 절벽을 휘어 감고 오르다가 잠시 멈춘다. 정상이 눈앞에 보이는 듯한데, 엄청난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는 효소 폭포가 장관이다. 노르웨이 자연은, 인류의 보고라는 찬사가 과언은 아닌 듯하다. 짧고 긴 터널을 수없이 지나고 눈 덮힌 준령을 힘겹게 넘어 보스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베르겐에 이른다.

12, 13세기에는 이 나라 수도였던 한자동맹의 중심지, 일곱 개의 작고 아담한 피요르드를 서로 연결한 아름다운 항구도시다. 어수선한 길가의 노점상, 활기 넘치는 어시장, 이 나라에서 처음으로 사람 냄새를 느낀다. 연어회를 안주삼아 맥주 한 캔으로 목을 축이고 오던 길을 거슬러 오슬로로 향한다.

산을 넘고 물을 감돌기를 한 나절, 어디를 가나 꿈같은 환상의 길이다. 점점 녹아들어 지금은 산마루에 걸려 있는 푸른 빙하를 올려다보며, 지구의 온난화를 실감한다. 계곡을 가로지른 아슬아슬한 구름다리도 건너보고, 노오란 민들레 사이로 푸른 초원을 걸으며 두고 온 속세를 잠시 잊기도 한다.

오슬로, 인구 60여 만의 이 나라 수도다. 높은 빌딩도 없고 찬란한 문화유산도 없다. 없는 것이 더 있다. 빈민촌이 없다. 빈곤층이 없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개인의 노력과 관계없이 기본 생활이 보장되는 곳, 경외스러운 대 자연과 함께 참으로 부러운 나라다.

비겔란 조각 공원, 인생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희로애락의 여정을 표정과 동작으로 순수하게 표현된 작품들이 인상적이다. 제목은 물론 설명도 없다. 각자 자기의 눈으로 보고 느낄 뿐 이다. 백 이십 여 명의 남녀가 서로 뒤엉켜 밟고 오르려는 인간 본연의 욕망을 조각한「모노리텐」탑, 시선을 떼기가 쉽지 않다.

절간의 해우소, 지금도 여름철이면 수많은 구더기가 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밟고 오르고 넘어 오르고, 오르고 오르면 거기에 무엇이 있을까. 저 모습과 무엇이 다르랴 싶어 깊은 상념에 젖기도 한다. 선박 박물관에서 바이킹의 역동성을 곁눈질 하다가 우리 대통령 한 분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시(市) 청사 중앙 홀에서 흐믓한 긍지를 느낀다.

이 나라의 복잡한 역사는 차치하고 사흘에 걸쳐 보고 느낀 감회가 너무 크다. 봄과 여름이 한 계절로 이어지고, 어둡고 칙칙한 겨울이 긴 나라, 그런데도 해안을 따라 울창한 숲은 부러울 정도다.

6월부터 8월까지는 백야 (白夜), 12월부터 1월까지는 밤 같은 낮이 계속되는 이채로운 곳, 사계절이 분명한 아름다운 내 조국 금수강산에 어찌 비할 수 있으랴. 없는 듯이 있고 노는 듯이 일하는 이 나라 전원 풍경을 가슴에 안고, 국경을 넘어 스웨덴의 남부를 가로질러 덴마크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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