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옹기장이, 오재근씨가 살아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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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 더불어 우리네 멋과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것들도 변질되거나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우직하게 때로는 미련스러울 정도로 우리의 토종문화를 지키고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삶이야말로 전통사회에서 우리들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이었다. 고스란히 예전 방식을 쫓으며 그 맥을 이어가는 사람들. 토종문화를 지키고 보전하려는 사람들. 전통사회의 개념으로 본다면 '서민속의 서민'으로까지 표현할 수 있을 그들의 생산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들여다본다.
옹기만큼 생활주변에 흔하게 늘려 있고 우리 문화에 깊숙이 뿌리박고 있는 것이 있을까.'사기는 네곱이 남고, 옹기는 다섯 곱이 남는다'고 했다.
그러나 옹기그릇이 사기그릇에 비해 이문이 더 커다는 얘기도 집집마다 항아리가 가득한 장독대가 줄지어 늘어서 있고, 집안 한쪽에 항아리가 번듯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의 먼 소리다.
울진 지역도 예외 없이 옹기를 굽고 사기를 굽던 옹기 굴들이 이쪽저쪽 골짜기마다 자리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전해오지만 그 또한 이제는 옛 지명으로 유추해 보거나 연로하신 분들의 추억담으로만 기억될 뿐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주방과 집안에 플라스틱과 양은그릇, 스테인리스 그릇이 질박한 빛깔의 옹기를 대신하여 자리를 차지하면서부터 옹기는 점점 설자리를 잃고 말았다.
사실 이제는 온전하게 전통 방식을 유지하면서 옹기를 제작하는 곳은 전국적으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근래에 유행하는 웰빙붐을 타고 플라스틱이나 양은, 스테인리스 그릇 대신 옹기를 찾는 소비자들도 고정 틀에서 찍어낸 다음 광명단(사삼산화납을 주성분으로 하는 안료로써 납 성분의 폐해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광택이 심하여 유달리 반짝거린다.) 유약을 발라 구운 반들거리는 옹기를 토종 옹기로 잘못 알고 구입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체에 치명적인 해를 끼칠 수 있는 중금속 성분을 섞어 만든 물건으로 소비자의 눈을 속여 가며 이익을 앞세우는 그릇된 상혼이 어지러운 반면, 시대의 흐름에 연연하지 않고 묵묵히 전통을 이어가는 자연산 옹기장이들도 간혹 남아 있어 희망적이다.
1년 품값 고무신 두 켤레
근남면 노음리에 가면 전국적으로도 몇 남지 않은 전통 옹기장이가 재래식 수작업으로 빛깔 좋은 항아리를 빚어내는 곳이 있다.
「울진전통옹기」라는 간판을 내걸고 하루 종일 물레 앞에서 옹기 제작에 여념이 없는 오재근씨(남. 57세)의 작업장이 그곳이다.
그는 작년 11월 말 그동안 푼푼히 모아온 돈에다 얼마간의 빚을 더 얻어 현재의 장소로 옹기 제작장을 옮겼다. 애초에는 근남면 시가지 가까운 곳의 도로변에 작업장이 있었지만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오롯이 옹기제작에만 몰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13살 때 고향 상주에서 최성조라는 스승에게 처음으로 옹기 일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 당시 촌에서는 별달리 배울 기술도 없었고 다만 먹고 살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옹기 시세가 좋아서 옹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돈 벌어 부자 소리를 듣던 때였거든요"
그는 7년이라는 세월동안 선배 기술자들의 담배 심부름, 술심부름은 물론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면서 하루에 한두 시간씩 숙소에서 잠자는 시간을 아껴 가며 연습에 연습을 더하며 일을 배웠다고 한다.
그는 지금도 술을 마시지 못한다. 남들이 술 마시고 놀 때 혼자 힘들게 기술을 터득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들게 일을 배우는 견습기간 동안 그에게 돌아온 것은 숙식 제공과 1년에 검정 고무신 두어 켤레와 나일론 잠바 1벌 뿐이었다."낮에는 온갖 잡일을 하고 밤에는 혼자 연습하며 7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고 나니까 어느 정도 옹기를 만드는데 자신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함께 일을 하던 선배 기술자를 따라 청송군 진보면의 부곡이라는 동네로 가서 제 품값을 받으며 옹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에 영양으로 옮겨 일하다가, 다시 고향 상주로 갔다가 군대를 다녀와서는 경기도 여주에서도 한동안 머물렀지요."
때깔 좋은 재래식 옹기를 만드는 일은 힘도 들지만, 어느 정도는 타고난 손 감각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말하는 그는 당시 전국 곳곳을 두루 돌아다니며 주로 40말들이 대형 술독을 만들었다.
정말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이제 옹기 기술도 웬만큼 익혔기에 먹고 사는 일은 걱정 없다고 생각되던 70년대, 플라스틱과 양은그릇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면서 옹기의 수요가 급작스럽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옹기 제작업이 가파르게 사양길로 접어든 것이다.
"참 힘들었지요. 어떤 군은 열서너개나 있던 옹기굴이 한군데로 줄어든 경우도 있었고, 먹고 살기 위해 막노동판에서 시멘트를 섞고 져 나르고, 페인트도 칠하고, 시골 모내기철에는 모내기를 해주고 일당도 받고 그렇게 살았지요. 옹기를 만들다 보니 손놀림 하나는 누구보다도 재빨라서 모심기는 자주 돈내기를 하고는 했습니다."
하필 하고 많은 직업 중에 옹기 일을 배웠나 하며 후회도 많이 하고, 가끔은 왜 나에게 이런 기술을 가르쳤을까 하고 스승에 대한 원망도 많이 가졌었다는 그다.
가볍고 깨지지 않고, 값싸고 겉이 번지르르한 플라스틱과 양은그릇이 쏟아져 나오면서부터는 제작한 옹기를 직접 지고 농사를 짓는 집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쌀과 보리쌀 등 곡식으로 바꿔서 정말 힘들게 먹고 살았다.
2000년 울진에 터 잡아
그는 지난 2000년도에 울산시 남창이라는 곳에서 함께 일을 했던 인연을 가진 울진 출신 고 김성용옹의 적극적인 권유에 힘입어 울진으로 터를 옮겨 자리를 잡았다.
"처음에는 울진에서 나오는 흙을 사용했어요. 그러나 석회질이 많은 울진 흙은 항아리의 원래 색깔도 나오지 않고 표면도 거칠어서 이제는 충청남도 예산 흙을 구해다가 사용합니다."
고집스럽게 재래식 옹기의 제작방식을 추구하는 그는 수작업으로 만들어낸 옹기에 소나무와 잡목을 태운 재와 약토를 적절하게 혼합한 자연산 잿물 유약을 입혀서 구워낸다. 잿물 유약을 발라서 구워내면 옹기의 안팎으로 미세하게 뚫린 구멍을 그대로 살려주고, 그것을 통해 들숨과 날숨을 제대로 쉬어야만 옹기 안 음식물의 숙성과 외부에서 전해지는 습기와 열기가 조화롭게 조절되기 때문이다.
"화공약품으로 만든 유약을 써서 구워낸 다음 시장에서 싸게 파는 옹기는 표면과 안쪽이 윤기 있게 반들거리기는 해도 절대 숨을 쉬지 못하지요. 고추장이나 된장 같은 음식물을 담아놓고 사용해보면 쉽게 상하고, 맛도 변하고 금세 차이가 납니다."
일제 강점기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는 광명단 유약을 바른 옹기는 표면이 유리알처럼 반짝반짝 빛을 낸다. 구워내는 시간도 절약되고 깨질 확률도 낮아서 장사꾼들이 좋아하지만 실제로 그 성분이 납으로 되어 있어 건강에 치명적인 해를 끼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들에게 기술 전해주고 싶어
6개월 전 타지에 나가 살던 아들 경환(아래사진, 35세)씨가 아버지의 옹기 기술을 이어 가겠다고 울진으로 들어와서 아버지의 허드렛일을 거들면서 기술을 익혀가고 있다.
"내가 불렀어요. 그동안 옹기 일을 배워 보겠다고 찾아온 사람들이 힘든 일에 지쳐 몇 달을 버티지 못하고 떠나가는 데는 방법이 없더라고요. 주변에서 사라져 가는 이 일을 누군가는 계속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들어 재래식 옹기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는 "그래그래 힘들게 살다보니 오늘까지 왔는데, 점차 플라스틱이 나타나기 전인 60년대 후반쯤의 시기로 돌아가는 듯도 하고 덩달아 형편도 조금은 나아졌다"고 말한다.다들 먹고 살만해지면서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 황토로 만든 쌀독이나 장독 등의 식기류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그에 따라 소문을 듣고 전통 옹기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만들어 내는 냉장고·정수기용 단지, 쌀독, 장독대, 물동이, 똥장군, 소주독, 소주가리, 투가리등이 웰빙과 유기농, 황토 붐을 타고 점차 전국적으로 팔려 나가고 있다.
경북도 무형문화재 지정 예정
전국을 무대로 떠돌아다니며 옹기 기술을 익힌 그는 제작과정에서 조금씩 차이를 보이는 팔도옹기를 모두 만들 수 있다.
그는 청송군의 이무남 옹기장, 영덕군의 박광운 옹기장과 더불어 경상북도내 3인 옹기장의 한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울진군은 현재 그를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 신청을 해두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고집스럽게 전통을 추구하는 옹기장이 오재근씨는 2004년 「대한민국공훈사」에서 발간한 『대한민국 현대인물사』에 실리는 영광(?)도 얻었다. 발간위원회는 "전통 옹기를 계승 발전시키는 일로 43년 동안 창의적인 노력을 했고, 한눈 팔지 않는 일관된 신념으로 오직 전통의 기술과 비법을 익히며 새롭게 우리 생활에 접목시키는 연구를 계속하여 전통옹기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맛을 지켜내기에 집착해왔다"며 현대사의 인물로 선정한 이유를 밝혔다.
울진군의 관광 마인드 아쉬워
그러나 현대인물사에 등재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는 그도 한 가지 큰 고민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수작업으로 옛날 방식을 고수하고 있지만, 형편이 미치지 못하여 나무 땔감을 사용하는 개량 너구리 가마를 설치하지 못하고 아직까지 3루베 용량의 가스 가마를 사용하는 것이 영 마뜩하지 않다.
"생산성만 놓고 보면 가스 가마가 훨씬 효과적이지만, 아무래도 땔나무로 12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내는 너구리 가마에 비하면 가스 가마로 구워내는 옹기는 빛깔이나 강도에서 도저히 쫓아갈 수가 없지요. 옹기를 굽는데 필요한 너구리 가마 8봉을 설치하려고 전문 업자에게 물어 보니까 4천6백만원 정도 든다는데 당장 돈이 있어야지요. 겨우 밥걱정 안하고 산지가 6, 7년이나 됐을까 말까한데... 지원을 요청해 본다고 군청을 찾아가서 담당자도 몇 번 만났지요. 도대체 말이 통해야지..."
그는 현재의 장소로 옹기 제작장을 옮기고 난 다음 언젠가 돈이 마련되면 개량 너구리 가마를 설치할 요량으로 가마 예정지 200여 평을 제작장 뒤쪽에 따로 마련해 두었다.
얼마 전에는 세계적 축제인 단오제와 시 일원에 산재해 있는 문화재를 찾아오는 내·외지 관광객을 겨냥한 강릉시에서 별도의 작업장을 마련해 줄 테니 올라올 수 있겠느냐는 제안도 해 왔다.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수백년을 꾸준히 이어져오는 토종 옹기를 제작하는 옹기장이가 그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관광객들에게 특이한 구경거리와 체험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당장 홍보와 관광 등의 경제적 가치로 환산할 능력이 있는 일부 지자체는 타 시·군에 거주하는 전통 '장이'들까지 서로 뺏어가려고 경쟁하는 판이어서 더욱 아쉽다.
전통옹기를 제작하겠다고 스스로 울진 땅을 찾아든 장인에게 너구리 가마하나 지원해줄 필요성은 느끼지도 못하면서, 1년에 몇 억씩을 쏟아 부으며 온갖 명목의 축제를 요란스럽게 떠벌이는 울진군의 관광·홍보 마인드가 진정 무엇인지 묻고 싶다.
전국적으로도 몇 명 남아있지 않은 전통 옹기장이 오재근씨! 그가 가스 가마가 아니라 장작이 가득 쌓여있는 너구리 가마 아궁이 앞에서 '피움불'로 가마 안을 데우고, '돋움불'과 '배낌불'을 거쳐 '큰불'을 땔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오늘도 옹기장이 오재근씨는 그나마 대를 잇겠다고 찾아든 아들을 위안삼아 물레를 돌리고 잿물을 친다.
※울진전통옹기 : 공장 781-5477 / 전시장 781-0565 / 휴대폰 017-304-5477
이명동기자 uljinnews@empa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