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유일의 심마니- 심해섭씨 이야기

기사입력 2006.07.15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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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직하게, 때로는 미련스러울 정도로 생활풍속과 노동 등을 통하여 우리들만의 멋과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토종문화, 그 삶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삶이야말로 전통사회에서 우리들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이었다. 고스란히 예전 방식으로 그 맥을 이어가는 사람들. 토종문화를 지키고 보전하려는 사람들. 전통사회의 개념으로 본다면 ‘서민속의 서민’으로까지 표현할 수 있을 그들의 생산적이고 적극적인 삶의 현장을 잠시 들여다본다.

예부터 전해오는 책이나 구전에 따르면 산삼(山蔘)은 다 죽어가던 사람도 벌떡 일어서게 하고, 몹쓸 고질병도 고치는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져 있다.
약 1억년에서 3천만 년 전부터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을 것이라는 학자들의 추정은 제외하더라도, 산삼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조상들의 영묘한 신약으로 인정받아 온 것만은 틀림이 없는 듯하다.

“사람이 앓는 병중에 산삼으로 고치지 못할 병은 없다”고 할 만큼 귀하고 신성한 것으로 여겨져 ‘신초(神草)’ 또는 ‘영초(靈草)’로 불렸고, 어떤 약초도 지니지 못한 독특한 향기로 인해 ‘방초(芳草)’라고도 했던 산삼.어떤 약재도 따라오지 못할 지극히 뛰어난 약효를 지닌 산삼이기 때문에 주변에서 흔하게 구할 수도 없었고, 그런 만큼 값도 비싸서 가난한 이들은 설령 죽을병이 들어도 먹을 수 없었던 산삼.   사람들의 손에 산삼이 들어오려면 무척이나 고단하고 험난한 과정이 뒤따랐고, 그 과정의 중앙에는 당연히 심마니가 있다.   

우연한 기회로 걷게 된 심마니의 길

우리 울진 지역에도 산삼 캐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심마니 심해섭씨가 있다. 심씨는 산 밑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여가를 이용하여 산삼을 채취하거나, 약초를 캐러 다니다가 우연찮게 한두 뿌리 산삼을 횡재하는 그런 사람들과는 달리 직접 산행을 하면서 산삼을 캐고 장뇌삼을 가꾸는 일을 전업으로 하는 울진에서 유일한 전문적인 심마니다.

마흔 살의 심씨는 안태 고향인 서면 쌍전리 깨밭골에서 삼(蔘)농사와 약초농사를 짓던 할아버지와 부모님 덕분에 어릴 때부터 삼과 친해질 수 있었다.


▲ 산삼 생육에 알맞은
해발 600~800m 정도의 야산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몸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서 운동 삼아 산을 오르며 산과 친해질 수 있었고, 20대 초반부터 30대 초반까지는 서울 신라호텔서 10년 정도 근무하기도 하고, 대구에서 레스토랑을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대구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할 때 전국의 명산을 산행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대전 인근에서 알아주는 심마니 이규영(47세)씨를 알게 되면서, 어린 시절 한때 친숙했다가 잊어버렸던 삼과 다시 질긴 인연을 이어가며 산삼을 찾아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당시 이규영씨라는 심마니를 알게 되고부터는 대구에서 대전까지 매일 출퇴근하다시피 했습니다. 지리산이며 덕유산이며 그분을 쫓아 전국적으로 가보지 않은 산이 없을 정도였지요”

심씨는 지금도 이규영씨를 사부로 받든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자신은 지금쯤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었으리라 믿고 있다.

심씨가 본격적으로 전업 심마니의 길로 들어선 것은 6년 전부터이다. 그동안 전국의 산을 뒤지며 장뇌도 캐고 산삼도 캤다.

그동안 산을 타면서 나이 어린 산삼은 꽤 많이 얻었고, 한번은 나이가 약 70년쯤으로서 뇌두 길이가 12cm 정도 되는 산삼을 캔 적이 있었다.
 당시 일반적으로 형성되는 시세가 1천만원 정도였는데, 평소 자신과 친분이 있던 사람이 노모에게 약으로 쓸 것이라며 팔라고 통사정하기에 60만원을 받고 선뜻 산삼을 넘기기도 했다.

“심마니 생활을 하면서 지금까지 꽤 많은 산삼을 캤는데, 시세보다 많이 받은 적도 있고 적게 받은 적도 있습니다. 어떤 물건보다도 산삼은 가격에 앞서 반드시 정해진 임자가 있는 것이지요. 어쨌든 약효 때문이었는지 산삼을 드신 그 분의 노모는 몇 년을 더 건강하게 사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심마니의 믿음, 금기(禁忌)와 신앙(信仰)  ■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심마니 세계에는 숱한 금기와 신앙이 있었다. 산삼은 산신(山神-산신령)이 점지하는 것이라는 그들만의 특별한 믿음이 독특한 금기와 신앙을 만들어 낸 것이다.


▲ 직접 채삼한 10년산 산삼

과거에 심마니는 반드시 액운이 없는 길일로 입산일을 잡고, 날짜가 정해지면 집에 금줄을 둘러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다.
또 그 기간에는 부정을 피하기 위하여 짐승들을 살생하지 않았고 상갓집 출입을 하지 않았으며, 개고기나 비린내 나는 생선도 먹지 않았고 부부사이의 잠자리까지도 멀리했다.

뿐만 아니라 심마니들은 산에 올라 잠자리인 ‘모둠(움막)’을 친 후에는 제사상을 준비하여 산신제를 지성으로 올렸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만큼 심마니들의 금기와 신앙도 느슨하게 바뀌었다.  
심씨는 요즘 대부분의 심마니들은 신앙과 금기사항 등에 대해 민감할 만큼 격식을 따지지 않고, 산에 오르면서 간단하게 술 한잔 붓고 성심껏 절 몇번 하는 정도라고 귀띔한다.

그렇지만 심마니에게 산삼은 결코 개인의 노력 만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산신이 심마니의 정성에 감동하여 보답으로 내려주는 것이라는 식의 믿음이 저변에 강하게 깔려 있다.

그런 강한 믿음은 젊은 심마니 심씨에게도 예외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
심해섭씨 역시 꿈에 ‘소(牛)’를 보게 되는 날이면 비가 오더라도 산에 오른다고 한다. 그런 날은 반드시 산삼을 만나게 된다는 귀띔이다. 또 산행을 하는 날에 여자를 차에 태우면 꼭 다칠 일이 생긴다는 믿음(?)도 가지고 있다. 

최고의 산삼은 봉황삼(鳳凰蔘)

지난 5월3일, 심마니 심해섭씨를 따라 기성면 이평리의 어느 야산을 올랐다. 산삼을 캐는 현장의 촬영을 부탁한 우리를 위해 얼마 전에 발견해 놓고도 채삼(採蔘)을 미루어 두었다는 산삼을 캐러가는 길이었다. 

심씨는 대부분 아침에 산에 올랐다가 저녁이면 내려오는데, 이삼일쯤 걸리는 산행일 때면 산속에서 두툼한 외투에 비닐을 몸에 감고 땅바닥에서 비박을 한다고 한다.
그래도 예전에 비해 산골짜기마다 임산도로가 잘 닦여있고, 자동차를 이용하기 때문에 장기간 산에 머무를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600고지 정도 되는 산을 한시간 정도 올랐다. 심씨는 가벼운 걸음으로 골 안쪽을 이리저리 뒤지며 눈에 익은 산나물도 뜯고, 갖가지 산야초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아끼지 않았다.

한참을 올라왔다는 생각이 들 때쯤 북쪽 4~5부 능선 아늑한 곳에서 심씨가 봐두었다는 산삼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6뿌리. 예전에는 먼저 산삼을 발견한 심마니가 “심봤다”를 외치면 다른 심마니들은 그 자리에 납작 엎드려 꼼짝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 산삼을 발견한 심마니가 주변의 다른 소생(새끼 산삼)을 찾을 충분한 시간을 주기 위한 배려에서였다.


▲  야생상태에서 자라고 있는 산삼의 모습

산삼 앞에 쪼그려 앉은 심씨가 산을 오를 때 짚고 다니는 수제(手製) 지팡이 끝에 달린 작은 호미처럼 생긴 갈고리로 먼 곳에서부터 흙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점점 산삼 가까이로 파 들어가면서 손을 사용하기 시작하고 그 손놀림이 조심스러워진다. ‘미(尾-뿌리)’ 하나라도 다칠까 염려해서다. ‘미’가 상하면 가격도 그만큼 떨어지는 까닭이다.

10분이나 지났을까? 황금빛으로 물든 산삼의 도톰한 약통이 드러나고 산삼의 뿌리가 모습을 나타낸다.

6뿌리 모두 제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고, 뇌두(腦頭-몸통 위 줄기의 흔적)를 살펴볼 때 각각의 나이가 5년에서 20년 정도 되었다고 설명한다.  뇌두는 줄기가 돋아났던 자리로서 가을이 되어 줄기가 말라붙으면서 생기는 흔적이기에 산삼의 나이를 알아볼 수 있는 확실한 표식이다.

심씨는 흙에서 방금 캐낸 산삼을 이끼로 감싸고, 서예용 붓을 보관할 때 사용하는 붓말이개처럼 생긴 대발로 다시 한번 감싼 후 조심스럽게 배낭에 넣는다.
예전의 심마니들은 산에서 산삼을 캐면 굴피나무나 피나무 껍질을 벗겨 바위옷을 깔고 산삼을 가지런히 놓은 뒤에 둥그렇게 말아서 망태기나 걸망에 넣고 산을 내려왔다고 한다. 

산삼은 첫째 ‘미(尾)’가 길게 잘 뻗고 단단하며 탄력이 있어야 하고, 둘째 ‘뇌두(腦頭)’가 가늘고 길며 뇌두갈이를 한 흔적이 선명해야 하며, 셋째 ‘약통(몸통)’이 도톰하게 굵어야 좋은 산삼으로 대접을 받는다.

심씨는 산삼 가운데 최고의 삼은 봉삼(鳳蔘) 또는 봉황삼(鳳凰蔘)이라고도 불리는 양각연절삼(羊角連節蔘)이라고 일러준다.
이것은 한 개의 약통에서 뇌두 주변에 3~5개의 몸통이 생겨난 산삼을 말하는 것으로 양의 뿔과 닮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인데, 산삼이 순수 자연 상태에서 1백년 이상 묵어야 이런 모양이 된다고 한다.

양각연절삼은 뛰어난 심마니들도 평생 한번 만날까 말까 할 만큼 귀한 산삼으로 부르는 것이 곧 가격이 된다.
한때는 산삼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식물인 백선(白蘚)이라는 약초가 봉황삼으로 잘못 알려져서 한 뿌리에 수천만원이나 수억원씩에 거래된 적도 있었다고 하니, 일반인들이 산삼을 속지 않고서 일부 장사꾼들의 말만 믿고 구입하기는 지극히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품질이 좋은 자연종 산삼은 보통 나이 1살에 10만원 정도의 가격을 형성한다고 한다. 10년이면 100만원 정도의 가격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산삼이 꼭 필요한 임자를 제때 만나면 훨씬 높은 가격을 받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하면 싼 가격에 거래되는 수도 있다.

국내 산삼(山蔘), 수입 삼(蔘)으로 큰 타격 입어

산삼의 거래가는 점점 떨어지고 있는 추세다. 여느 농산물처럼 품질이 떨어지는 값싼 수입 산삼이 시중에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기 때문이다. 산삼협회등에서는 현재 시중에서 거래되고 있는 수입 산삼이 국내 전체 산삼 유통 물량의 약 70퍼센트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하는데, 국내 산삼과 수입 산삼의 가격 차이는 약 30~40배가 된다고 한다.

수입 산삼은 중국, 호주, 미국, 러시아, 캐나다, 필리핀 등 국적도 다양하고, 심지어 중국의 길림성이나 장백산맥 등지에서 키운 새끼 산삼을 1뿌리당 1~2천원선에서 수입해 들어온 후 국내에서 다시 1~2년 키운 장뇌삼이 평균 15~20만원씩에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수입 산삼은 국내산 산삼에 비해 겉껍질이 두껍고 주름이 선명하며 뇌두가 짧다고 하지만, 사실 어지간한 전문가들조차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수입산 장뇌산삼(長腦山蔘)으로 장뇌삼도 무너졌고, 인삼(人蔘) 또한 농약 과다 살포에 따른 화학성분 검출 등으로 끝장났다고 생각합니다. 순수 자연산 산삼이야 어디 얻기가 쉬워야죠......”

관상용 장뇌산삼(長腦山蔘) - 화분판매 계획 중

심해섭씨는 현재 관상용 장뇌삼(長腦蔘) 화분을 전국적으로 판매할 계획을 세우고 꽃집 등으로 연결되는 판매 체인망을 이리저리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재래식 옹기 공장에서나 제작할 수 있는 전통 화분도 2만개를 주문해둔 상태로, 한 화분에 5년생 장뇌삼 한 포기씩을 심어서 5만원 정도의 가격으로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장뇌삼 화분 판매와 함께 심씨는 형편이 닿는 대로 작은 야산을 구해 어린 산삼을 심어놓고 참가자들이 직접 이색적인 심마니의 세계를 일부분 체험할 수 있는 ‘산삼 캐기 축제’를 개최할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최고의 자리를 지켜왔던 신라산삼(옛 삼국시대에 신라 영토였던 지역의 산삼 효과가 가장 영험한데 따른 심마니들 사이의 명칭)의 영예 회복과 울진산삼의 고유 브랜드 확보가 절실하다는 생각에서다.
“울진 태생의 심마니인 제가 울진산 산삼을 캐서 대도시 약재상에 가면 7~8명의 약재상이 구입을 위해 다투어 모입니다.

울진 산삼의 약효가 어떤 지역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다들 알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비싼 값에 팔리더라도 결국은 울진산삼이 아니라 강원도 오대산 산삼으로 둔갑하여 팔립니다. 오대산 산삼이라고 해야 소비자에게 더욱 비싸게 팔리니까요.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울진이 어딘지도 몰라요”

산삼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도매상들이 최고로 쳐주는 울진 산삼이지만, 최종 소비자에게는 쉽게 외면 받는 울진 산삼.

오래전부터 교통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한 오지로 악명을 날리며 우리가 가진 고유한 이름과 그에 따르는 명성을 잃어버린 것이 어디 산삼뿐이던가. 울진산 대게가 영덕 대게로 이름을 바꿔 날개 돋친 듯 대도시로 팔려 나가고, 울진 최고의 보배인 아름드리 금강소나무가 춘양목으로 잘못 알려진 채 우량목재로 팔려 나가고......
심마니의 발길을 따라 산을 내려오는데 산길 양쪽으로 이팝나무 꽃이 서럽도록 하얗게 피어 있었다.


▲ 심마니 심씨가 산삼을 캐기에 앞서 산의 전체적인 지형을 살펴보고 있다.


    



















이명동기자/uljinnew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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