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늘

기사입력 2006.08.08 15:50  
댓글 0
  • 카카오톡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한 여름 매미가 목이터져라 울어대는 느티나무 그늘 아래 있어본 사람은 안다. 그늘이 주는 시원함을. 또 어느정도 인생의 연륜이 쌓이면 안다. 어떤 이를 불쑥 만나, 아, 이사람 그늘이 있구나를.

 

이처럼 그늘은 좋거나 부정적인 면이 있는데, 그늘 만큼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단어도 드물다. 단순히 밝음의 반대 편에 생기는 그늘이 물리적인 첫 의미지만, 우리 한국인들은 복잡하고 다중적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늘은 아름다움의 구극(究極) 또는 그 총체적 실체라고 볼 수 있다.

 

삶의 존재 그 이유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늘이 없는 삶이란 애시당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삼라만상이 상(象)이란 이름을 얻을 때 이미 그늘이 함께 붙어다닌다. 그늘은 이미 우리의 상상 그 이상으로 우리곁에 그늘져 있다는 말이 맞을 듯 싶다.

 

특히 그늘은 우리전통음악에서 자주 인용되는 말로 판소리에서 귀동냥이 “야, 너 소리에 그늘이 없다.”라고 하면 소리꾼으로서 생명은 끝이다. 국악에서 그늘이란 것은 딱히 이것이다라고 설명하기 어렵고, ‘그냥 느낌으로 단박에 아는 것‘ 그것이 정답일 것이다.

 

또 그늘과 비슷한 개념으로 ‘시김새’ ‘수리성’같은 것을 들 수 있는데, 시김새란 전통음악에서 선율을 이루는 골격음의 앞이나 뒤에서 그 음을 꾸며주는 장식음이나 음길이가 짧은 잔가락으로, 올라가는 음, 내려가는 음, 꺾어지는 음을 일컬으며, 화려함이나 멋을 더하기 위해 붙이는 표현기능이다.

 

즉 선율선(旋律線)이나 절주(節奏)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위하여 쓰이기도 하는데, 앞에서 꾸미거나 뒤넘기 전에 제음을 꾸며주는 장식적인 음들이라 하여 식음(飾音)새 또는 시금새라고도 한다. 또 수리성이란 판소리 창법에서, 쉰 목소리처럼 걸걸하게 내는 목소리로 넓은 의미로 시김새와 함께 그늘로 다 통한다.

 

그늘은 흔히 ‘익다‘라는 말과도 상통하는데 이 또한 한국인의 고유소를 잘 나타내는 말이다.  열매나 씨앗이 충분히 여물었을 때, 날음식이 뜨거운 기운을 받아 먹어도 좋은 상태가 되었을 때, 그리고 술이나 김치 된장 등이 잘 발효되었을 때, 자주 경험하여 서투르지 않을 때, 여러 번 겪어서 낯설지 않을 때 모두 ‘익다’라고 하는데 특히 발효가 그늘의 의미에 잘 부합된다 하겠다. 어떤이는 “빛과 어둠, 웃음과 눈물, 천상과 지상, 기쁨과 슬픔, 나와 네가 어우러지는 것이 그늘이요. 달관적 기교를 시김새라고 하는 데 시김새는 안으로 쌓여서 발효해야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것 이것이 그늘”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늘은 이런 곳에도 있다. 난민촌에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무엇인가. 임시천막을 친다.  우리네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 “자가 어디서 밤이슬이라도 피해야 할텐데” 또는 마을 어귀에 서있는 동신당만 해도 거의가  팽나무나 느티나무 또는 소나무 등의 큰 노거수(老巨樹) 아래 있다는 것은 우리조상들이 성황당에다 만들어준 그늘이다. 그 흔한 집은 또 무엇인고. 바로 비바람을 막고 춥고 더움을 막아주는 그늘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렇듯 그늘은 인간이 허허벌판에서 제일 먼저 생명을 이어가는 방법의 첫 출발이다.


이런 저런 그늘의 의미를 잘 담고 있는 몇 편의 시가 있어 소개한다.

먼저 삼국유사의 향가정신을 잘 계승한 미당 서정주의 시 ‘해일’이다.

 

『바닷물이 넘쳐서 개울을 타고 올라와서 삼대 울타리 틈으로 새어 옥수수밭 속을 지나서 마당에 흥건히 고이는 날이 우리 외할머니네 집에는 있었습니다. 이런 날 나는 망둥이 새우 새끼를 거기서 찾노라고 이빨 속까지 너무나 기쁜 종달새 새끼 소리가 다 되어 알발로 낄낄거리며 돌아 다녔습니다만, 항시 누에가 실을 뽑듯이 나만 보면 옛날이야기만 무진장 하시던 외할머니는, 이때에는 웬일인지 한마디도 말을 않고 벌써 많이 늙은 얼굴이 엷은 노을빛처럼 불그레해져 바다쪽만 멍하니 넘어다보고 서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왜 그러시는지 나는 미처 몰랐습니다만, 그분이 돌아가신 인제는 그 이유를 간신히 알긴 알 것 같습니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배를 타고 먼 바다로 고기잡이를 다니시던 어부로, 내가 생겨나기 전 어느 해 겨울의 모진 바람에 어느 바다에선지 휘말려 빠져 버리곤 영영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 채로 있는 것이라 하니, 아마 외할머니는 그 남편의 바닷물이 자기집 마당에 몰려오는 것을 보고 그렇게 말도 못하고 얼굴만 붉어져 있었던 것이겠지요.』


그리고 구구절절이 그늘이 녹아있는 이시영 시인의 시 몇 편도 음미해보자

***무늬***

나뭇잎들이 포도 위에 다소곳이 내린다

저 잎새 그늘을 따라 가겠다는 사람이 옛날에 있었다


***생(生)***

찬 여울목을 은빛 피라미떼 새끼들이 분주히

거슬러 오르고 있다.

자세히 보니 등에 아픈 반점들이

찍혀 있다.

겨울처럼 짙푸른 오후.


 

또 아프고 환한 그늘을 노래한 허수경의 시 ‘공터의 사랑’이다.

잊혀진 상처의 늙은 자리는 환하다.

환하고 아프다

환하고 아픈 자리로 가리라

앓는 꿈이 다시 세월을 얻을 때

공터에 뜬 무지개가

세월속에 다시 아플 때

몸 얻지 못한 마음의 입술이

어느 풀입자리를 더듬으며

말 얻지 못한 꿈을 더듬으리라.


정호승의 유명한 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 부분이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중 략-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아래는 최상호 시인의 ‘아들아’의 감동스런 끝부분이다.

깊은 산 속 키 큰 나무 곁에

혼자 서 있어도 화안한 자작나무같이

내 아들아

그늘에서 더욱 빛나는 얼굴이어야 한다.


감상한 몇 편의 시가 그늘을 딱히 잘라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냥 그늘이 절로 녹아서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신산고초를 겪은 자만이, 바로 인생의 쓴맛 단맛을 제대로 본 자만이 참다운 그늘이 서린다. 태어났다는 슬픔 즉 중생한(衆生恨). 그 한을 풀어내는 승화. 그곳에 진정한 아름다움의 그늘이 생긴다. 

 

나무가 내리는 그늘처럼. 소리에 맺혀나는 그늘처럼. 시의 구절마다 스며있는 그늘처럼. 삶에 녹아있는 그늘처럼. 그러나 어이하랴 역설적이게도 그늘을 말하고 있는 나 또한 ‘이것이 그늘이다’라고 단정하기가 두려운 것은 왜일까?  그늘이여!

 

한 번 태어난 곳을 옮기지 않고, 평생을 춥든 덥든, 바람이 불든, 낮이든 밤이든, 한 자리서만 살다가 죽는 나무. 얼마나 신산고초를 속으로 속으로만 삭이며 노거수가 되었을까. 얼마나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왔으면 저렇듯 우리 앞에 외경스런 모습으로 자라고 있을까. 그렇게 노거수가 되고, 지상에서 가장 넓고 아늑한 그늘을 아낌없이 주고 가는데.

 

아, 일평생 단 한 번이라도 남에게 그늘이 되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되고 싶은데.

 

<저작권자ⓒ빠른뉴스! 울진뉴스 & www.ulji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울진뉴스/월간울진(http://uljinnews.com |   창간일 : 2006년 5월 2일   |   발행인 / 대표 : 김흥탁    |   편집인 : 윤은미 
  • 사업자등록번호 : 507-03-88911   |   36325. 경북 울진군 울진읍 말루길 1 (1층)   |  등록번호 : 경북, 아00138    |   등록일 : 2010년 7월 20일                         
  • 대표전화 : (054)781-6776 [오전 9시~오후 6시 / 토, 일, 공휴일 제외(12시~1시 점심)]   |  전자우편  uljin@uljinnews.com / ytn054@naver.com
  • Copyright © 2006-2017 uljinnews.com all right reserved.
빠른뉴스! 울진뉴스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