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출신 성악가 용민휘 유학중 잠시 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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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출신으로 효성 가톨릭대 음악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하고 국내에서 활발하게 연주 활동을 하다가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난 후, 방학을 맞아 잠시 귀국한 용민휘(여. 27세)씨를 8월초 울진읍 호월리에 소재한 그녀 부모의 자택에서 만났다.그녀는 울진읍 호월리에서 목공예 공방을 운영하는 용화정(51세)씨와 이은정(52세)씨의 무남독녀 외딸로, 결혼한 후에 이탈리아 국립음악원 ‘Bruno Maderna(브루노 마테르나)’에 유학중이다.
용민휘씨는 유학을 끝마친 후에 교수로 활동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고, 지역에서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예술가들을 위한 후원회 결성이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녀는 현재 싸이월드에 “♡PER LA GLORIA~♡”라는
미니홈피(http://cyworld.nate.com/pims/main/pims_main.asp?tid=30171273)를 운영하고 있다.
어디서 활동 하다가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나?
2002년 효성 가톨릭대 음악대 성악과를 졸업한 후 2005년 초까지 주로 서울과 경기도 등지에서 SMA 회원으로 연주(노래)했다. 2005년 3월에 함께 성악을 전공한 남편 추요한(29세)씨와 결혼했다.
아무래도 국내에서의 공연 활동과 공부에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고, 이탈리아가 오페라의 본고장이니만큼 2005년 4월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지난 3월7일 이탈리아 현지에서 아들 추사랑을 얻었다.
이탈리아의 어느 학교에 유학중인가?
이탈리아의 국립음악원 Conservatorio di CESENA(콘세르바토리오 디 체제나) ‘Bruno Maderna(브루노 마테르나)’라는 학교에 5년 과정으로 유학중이다. 이탈리아의 대학은 4~6년제이며 대부분의 대학은 국가가 운영하고 있다. 남편은 인근의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다.
학교에 다니면서, 또 졸업하고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어떤 무대에서 연주를 해 왔었나?
효성 가톨릭대 음대 4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1년 9월 대구 어린이회관 꾀꼬리극장에서 독창회를 열었다. 독창회 당시 아르디티의 ‘입맞춤’, 로시니의 ‘약속’등을 연주했다. 음악대 재학생의 독창회는 흔치 않은 것으로서 학교 측이 실력을 인정해 주어서 독창회를 열수 있었다.
졸업 후에는 ‘성악 앙상블 연구회’에 소속되어 해마다 “마드리갈(madrigal)”연주를 했다. ‘마드리갈’은 14세기와 16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성행했던 세속 성악곡으로, 나는 주로 ‘몬테베르디(Monteverdi, Claudio)’의 마드리갈을 연주했다.
또 뉴욕 타임스의 2002년 최우수 그림책 10선에 선정된 “노란우산(신동일 작곡, 류재수 그림)” 콘서트에서 노래하면서 서울, 부천, 과천 등지로 전국 순회공연을 다녔다. 이외에도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의 “카르멘(Carmen)”등을 연주했고, ‘모차르트(Mozart, Wolfgang Amadeus)’의 희극 “코지 판 투테(Cosi fan tutte)”를 연주했다.
그리고 순수 한국 창작 오페라인 “사랑의 원자탄”을 연주했다. 사랑의 원자탄은 일평생 나병 환자를 위해 살았고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6년 동안 감옥살이도 했던 전설적인 손양원 목사의 일대기를 재연한 것이다.
이탈리아 유학중에는 월드컵 스타인 안정환 선수가 한때 활약했던 페루자(Perugia)에서 재즈연주를 했다. 임신 8개월이던 2005년 연말까지 각종 공연에 참여하여 연주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가장 잊히지 않는 공연은 대학 재학 중이던 2001년 독창회이다. 당시 4백여명의 관람객이 객석을 꽉 메웠었는데, 효성 가톨릭대 음대 역사상 재학생으로서는 3번째 이뤄진 공연으로 학교 측에서 전 학년 실기 만점이었던 점수를 인정하여 특별히 도움을 주고 또 배려해준 독창회였다.
그리고 2004년 고향 울진의 구수곡 자연 휴양림에서 펼쳐진 ‘숲속 음악회’ 연주가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다.
음악회가 열리던 10월 어느 날 가을비가 많이 내렸었는데도 대다수의 관객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객석을 지키며 경청하고 격려해 주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이탈리아 유학을 마친 후의 장래 계획 또는 목표는...?
열심히 공부하고 실력을 키워서 졸업한 후에는 성악의 본 고장인 이탈리아 현지의 국립음악원 교수로 남고 싶다. 남편도 같은 계획을 갖고 있다. 아니면 국내로 들어와서 후배들을 지도하고 싶다. 몇 년 뒤 어떤 상황이 되던 한평생 음악과 함께 하고 싶은 희망과 욕심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성악을 전공하고 싶은 지역 후배들에게 한마디...
자신의 소질을 키워줄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우선은 음악, 소리에 미칠 수 있어야 한다.
노래를 하고 싶다는 자신의 의욕이 최고로 중요하다. 자기의 소리를 알아야 하고 또 어디서도 기죽지 않을 자신감이 꼭 필요하다.쉽게 수그러들지 않는 의욕과 음악을 위해 끝까지 갈 용기가 있다면 누구나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노래는 호흡이 가장 중요하다. 결국 들숨과 날숨이 조화를 이루어야 좋은 소리가 나온다. 나는 대학 4년 내내 자나 깨나 호흡 연습을 했다. 심지어 인파가 북적대는 대구시내에서 시내버스를 기다리면서까지 주변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호흡연습도 하고 노래 연습도 하다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다.
애초 음악을 택하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2학년 초까지는 열심히 그림을 배웠다. 미술대학에 가고 싶었다. 어느 날 우연히 TV에서 성악가 조수미씨가 부르는 “밤의 여왕(Queen of the Night)”의 아리아를 보게 됐다. 그 화려한 목소리의 기교를 들으면서 ‘나도 저런 음악을 부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마 고 1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 가사 전체를 한글로 적어 외웠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프랑스어였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 몰래 경상북도 학생 콩쿠르에 참가해서 노래를 불렀는데 은상을 수상했다. 평상시 항상 노래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정작 엄마, 아빠만 모르고 계셨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대학에 가고 싶다는 입장을 밝히고 포항까지 오가면서 어느 대학 교수로부터 개인 레슨을 받았다.
살아오면서 가장 고마운 사람은...?
물론 엄마, 아빠다. 엄마는 젊은 시절 양장점을 했었는데 지금까지 모든 공연에서 입었던 옷은 엄마가 직접 디자인하고 바느질한 옷이다. 공연 때마다 단 한 번도 같은 옷을 입히지 않았을 만큼 엄마는 나를 이해하고 사랑해 주셨다. 고3때 포항까지 성악 개인 레슨을 받으러 다닐 때는 엄마가 손수 차를 운전하며 태워주었고 또 함께 울진으로 돌아왔다.
아빠는 그렇게 힘든 목공 일을 하시면서도 온갖 경제적인 뒷바라지를 아쉬울 거 없도록 다해 주셨다. 결혼하고 곧장 떠난 이탈리아 유학도 아빠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엄마 아빠를 많이 아주 많이 사랑하고 존경한다.

용민휘씨 가족(좌로부터 아버지,본인,남편,어머니)
언제 이탈리아로 돌아가는가? 그리고 바람이 있다면...
10월부터 새 학기가 시작되는데 9월초에 들어갈 예정이다. 공부에만 전념하기 위해 아들 ‘사랑’이는 엄마에게 맡겨 두고 갈 계획이다. 엄마 아빠도 절집처럼 조용한 집안에 애기 소리가 들린다고 좋아하신다. 엄마, 아빠, 그리고 사랑이에 대한 그리움은 유학 후에 그래왔던 것처럼 컴퓨터 화상 채팅으로 일부분 달랠 생각이다.
성악을 전공하고 자비로 유학을 떠난 나뿐만 아니라 어려운 여건과 환경 속에서 음악, 미술 등 지역 출신들로 힘들게 예술 활동을 하는 이들을 위한 후원회가 생겼으면 좋겠다.
다른 지역, 특히 외국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단체나 기업, 개인들이 많이 있는데, 울진 지역에는 아직 그런 것이 없다.
예술가들이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중도에 예술적 활동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부의 후원은 물론 단체나 기업, 개인들의 후원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 이명동기자(uljinnews@empa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