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최초, 백비(白碑)발견

당시 비의 제작과정과 지역상황 파악에 도움
기사입력 2006.09.09 20:12  
댓글 0
  • 카카오톡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백비(白碑) 앞면>

지역에서는 최초로 비석면에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백비(白碑)가 발견되어 관련 사가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이번에 새로 발견된 백비는 화강암 재질로 만들어졌으며, 전체적으로 잘 다듬어지고 비신과 비수가 반원형(半圓形)이지만 네모반듯한 방형(方形)에 가깝고 하부에 1단의 층이 있다.
 

비신은 한쪽 변이 긴 세장방형(細長方形)이며 문양은 비수의 앞면과 뒷면은 동일한데 가운데에는 봉오리가 막 피어나고 있는 연꽃을, 상부에는 일휘문(日暉紋-해와 빛 무늬)을, 그리고 주변부는 운문(雲紋-구름 무늬)을 양각하고 있다. 

또 상부에는 활짝 핀 연꽃과 주변으로 운문을 장식하고 있다.

비신에 일절 글자나 문양이 장식되지 않은 이 백비는 크기가 길이 128(비수 27, 비신 101)cm에 너비가 48(비수 48, 비신 상부 41, 비신 하부 38)cm며, 두께는 비수가 13.5cm, 비신이 12.5cm이다.
 

주변에서 극히 찾아보기 힘든 이 백비는 상하수도 사업을 하기 위해 울진읍내 명성탕 앞 인근에서 굴삭기로 땅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출토되어 울진군청에 신고 되었다.
 

비의 제작 시기나 문양, 형태로 볼 때 조선 중기 이후에 만들어진 비석으로 추정되는 이 비는 비문이 기록되지 않은 미완성의 백비로써 정확한 성격이나 연대를 알기 어렵다.


<백비(白碑) 뒷면>

다만 비수에 장식된 문양 등으로 미뤄 비석이 제작될 당시 지방관의 선정이나 치적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선정비나 불망비 정도로 추정될 뿐이다. 

 

울진군 학예연구사 심현용씨는 “어떤 이유로 제작과정에서 중단된 백비가 발견됨으로써 비의 제작과정의 한 단면을 알 수 있게 됐고, 또 완성되지 않은 점 등으로 당시의 지역상황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석비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백비(白碑) 비수 앞면>

한편 지난 8월16일에는 평해읍 남대천 월송보 아래 하천에서 조선조 순조때 평해군수를 지낸 채학영(蔡學永)의 애민선정비가 발견됐다.


<채학영(蔡學永) 선정비 앞면>

이전에 조사되어 있는 60여기의 선정비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청색 화강암 재질의 이 석비는 일부가 깨어지는 등으로 훼손됐으나 전반적인 형태는 잘 남아 있다.
하부 아랫면의 정 자국을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매끄럽게 다듬어진 이 비는 비신과 비수가 한 돌(一石)로 제작됐다.


반원형의 비수에 세장방형의 비신에는 아무런 문양도 장식되어 있지 않다.
비신에는 앞·뒤로 해서체의 명문이 세로로 각자되어 있는데, 비양(碑陽)에는 “郡守蔡公學永愛民善政碑(중)”, 그 주위로 “三載百袪  府中和調(좌)  定削軍丁  大小俱謠(우)”, 비음(碑陰)에는 “道光七年七月 日 竪(중), 그 주위로 “城下(좌)  雨洞(우)”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선정비의 크기는 길이 130cm에 상부 너비 50cm, 하부 너비는 48cm, 두께가 17cm이다.
 
이 비의 건립 시기는 중국 청나라 선종(宣宗)때의 연호인 도광(道光) 7년 7월(조선 순조 27년)로써, 이것은 평해군수를 지낸 채학영이 1827년 6월 평해군수를 끝내고 울산으로 떠난 약 한 달 뒤인 1827년 7월에 제작된 것이다.

선정비의 비문에는 “성하 우동(城下 雨洞)”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서의 성(城)은 평해읍성을 말하는 것으로서, 애초 이 비석이 세워진 위치가 성 아래 우동이라는 마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울진군 관계자는 지금도 그 당시와 비슷한 위치며, 지명의 음운과 같은 비우자(雨)등을 사용하는 점 등으로 미루어 당시의 우동마을을 지금의 학곡2리 우후동(雨後洞-빗뒤마을)으로 추정했다.

 
<채학영(蔡學永) 선정비 뒷면>

 

다만 우동이라는 지명이 ‘관동지’, ‘관동읍지’, ‘대동지지’, ‘평해군지’ 등의 고문헌에서 발견되지 않는 점 등으로 확실한 단정은 유보했다.

이번에 발견된 선정비의 주인공 채학영은 1825년(순조 25) 1월17일 평해군수로 부임했다가 1827년(순조 27) 6월 울산 병우후(蔚山兵虞侯)로 이임됐다.
조선왕조실록은 그가 강화 본영의 중군, 전라우도 수군절도사, 전라도 병마절도사, 창원부사, 부총관, 좌변포도대장 등을 역임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채학영 애민 선정비는 울진문화원 부설 후포역사연구회(회장 정돌만)에서 발견하여 신고했다.

<저작권자ⓒ울진뉴스 빠른뉴스! & www.ulji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울진뉴스/월간울진(http://uljinnews.com |   창간일 : 2006년 5월 2일   |   발행인 / 대표 : 김흥탁    |   편집인 : 윤은미 
  • 사업자등록번호 : 507-03-88911   |   36325. 경북 울진군 울진읍 말루길 1 (1층)   |  등록번호 : 경북, 아00138    |   등록일 : 2010년 7월 20일                         
  • 대표전화 : (054)781-6776 [오전 9시~오후 6시 / 토, 일, 공휴일 제외(12시~1시 점심)]   |  전자우편  uljin@uljinnews.com / ytn054@naver.com
  • Copyright © 2006-2017 uljinnews.com all right reserved.
울진뉴스 빠른뉴스!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