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아픈 데 없이 잘 지내셨는지
궁금했습니다
꽃 피고 지는 길
그 길을 떠나
겨울 한번 보내기가 이리 힘들어
때 아닌 삼월 봄눈 퍼붓습니다
겨우내내 지나온 열 끓는 세월
얼어붙은 밤과 낮을 지나며
한 평 아랫목의 눈물겨움
잊지 못할 겁니다
누가 감히 말하는 거야 무슨 근거로 무슨 근거로 이 눈이 멈춘다고 멈추고 만다고… 천지에, 퍼붓는 이… 폭설이, 보이지 않아? 휘어져 부러지는 솔가지들,… 퇴색한 저 암록 빛이, 이, 이, 바람 가운데, 기댈 벽 하나 없는 가운데, 아아… 나아갈 길조차 묻혀버린 곳, 이곳 말이야…
그래 지낼 만하신지 아직도 삶은
또아리 튼 협곡인지 당신의 노래는
아직도 허물리는 곤두박질인지
당신을 보고 난 밤이면 새도록 등이 시려워
가슴 타는 꿈 속에
어둠은 빛이 되고
부셔 눈 못 뜰 빛이 되고
흉몽처럼 눈 멀어 서리치던 새벽
동트는 창문 빛까지 아팠었지요.
………어째서… 마지막 희망은 잘리지 않는 건가 지리멸렬한 믿음 지리멸렬한 희망 계속되는 호흡 무기력한, 무기력한 구토와 삶, 오오 젠장할 삶
악물린 입술
푸른 인광 뿜던 눈에 지금쯤은
달디 단 물들이 고였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한번쯤은
세상 더 산 사람들처럼 마주 보고
웃어보고 싶었습니다.
사랑이었을까 잃을 사랑조차 없었던 날들을 지나 여기까지,
눈물도 눈물겨움도 없는 날들 파도와 함께 쓸려가지 못한 목숨,
목숨들 뻘밭에 뒹굴고
당신 없이도 천지에 봄이 왔습니다
눈 그친 이곳에 바람이 붑니다
더운 바람이,
몰아쳐도 이제는 춥지 않은 바람이 분말같은 햇살을 몰고 옵니다
이 길을 기억하십니까
꽃 피고 지는 길
다시 그 길입니다
바로 그 길입니다
한강, 시 『편지』 전문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만세다!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는 처음에 시인으로 문학 인생을 시작했다. 시 『편지』는 그가 연세대 4학년 때 발표한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교내 윤동주 문학상』을 받았다. 우리는 요즘 편지를 거의 쓰지 않는다. 카톡이라는 문명 이기로 소통하고 산다. 편지라는 말도 젊은 세대에게는 낯설기만 할 거다.
소개한 『편지』라는 시는 길이가 꽤 긴 작품이다. 형식도 중간에 산문 같은 시가 들어가 있다. 민족시인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연상케 하는 시 형식이다. 찬찬히 읽어보면 평범한 내용 같지만, 그렇지 않다. 겨울,삼월, 봄눈, 얼어붙은 밤낮, 폭설, 부러지는 솔가지, 벽, 협곡, 당신, 창문, 눈물, 목숨, 뻘밭, 햇살, 꽃, 기억, 갈등의 절망과 희망을 상징하는 시어(詩語)들이 나온다. 이러한 낱말들은 한 인간의 삶을 은유한 표현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삶 또한 사회공동체와 불가분의 관계임을 말하고 있다. 이는 마치 자연 생태계와 같이 얽혀 있는 인과 관계이다. 개인 삶의 여정이 공동체 진실과 그것이 얽혀진 역사와 맞닿아 있음을 은유하고 있다. 여기에서 편지에 대한 감상은 독자 몫으로 두고 노벨 수상작『소년이 온다』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해 보겠다.
필자는 한강 작가 수상 소식을 듣고, 책꽂이에서 8년 전에 읽은 『소년이 온다. 2016년도판(창비, 초판 26쇄)』를 다시 꺼내 읽었다. 두 번 읽은 셈이다.
이 작품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당한 동호(실제주인공: 문재학열사)라는 소년을 통해 한 인간의 삶이 어떻게 파괴되어 갔는가. 또한,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무지막지한 야만적인 폭력현장에 끝까지 함께하며 희생당한 사람들을 묘사한 작품이다.
읽는 이들에게는 혹은 충격을 주고, 혹은 살 떨리게 하는 눈물겨운 이야기이다. 필자에게 있어서 이 작품은 역사, 민주주의, 인권, 폭력,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 양심, 개인의 연약함, 절망과 희망 등을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이었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 저녁 8시(한국시각)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국 작가 한강을 선정하면서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선보였다』고 수상 까닭을 밝혔다. 『소년이 온다』는 이미 국내외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당시 작품 평은 다음과 같다.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아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소년이 온다』의 이 문장처럼, 여전히 5·18을 헐뜯고 비난하는 세력이 건재한 현실에서 광주는 다시 태어나 살해된다. 고 평했다.
한강 작가는 박근혜 정부 문화계 탄압의 상징인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꼰대 같은 행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이 대한민국 역사 왜곡 작가에게 노벨상을 주었다고 한국주재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고 한겨레(2024. 10. 17. 이하같음), 국민일보, 조선일보 등이 보도했다.
작가 한강이 역사적 진실을 문학으로 승화시켜 세계가 부러워하고, 한국의 위상을 드높였는데 칭찬하기는 커녕 훼방을 놓다니 개탄스러운 일이다.
어느 분 왈, 『나이 들면 모두 저렇게 되남. 철이 언제 들라나. 옳고 그름도 판단을 못하니, 지금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저러고 있으니, 나라 망신이 아닌가? 허허, 참!』 필자도 신문 기사를 읽고 어이가 없었다. 철없는 인간들의 철없는 표현의 자유를 너그럽게 보아주자. 민주주의 장점이 그게 아닌가? 필자의 글이 길어 졌다. 이쯤에서 『소년이 온다』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한 문장을 옮겨 본다.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문단 한 귀퉁이에 있는 필자로서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다시 한번 축하한다. 그리고 권한다.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등 작품을 꼭 읽어보시길.
(김진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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