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지사 고당 전배근선생 공적비 제막

10. 26일 죽변면 봉평리에서 제막행사 열려
기사입력 2006.10.26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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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군은 26일 12시에 이희범 경주보훈지청장, 권준호 대구경북광복연합회장, 전광순 울진군광복회지회장, 남천희 울진 부군수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 고당(高堂) 전배근(田培根)선생의 공적비 제막식을 가졌다.

 

고당 전배근 선생은 죽변면 봉평리 출신으로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제에게 국권이 빼앗기자 강원도 의병장 이강년의 막하에서 의병에 일으키고, 1906년부터 의병 장진수 등과 함께 평해군수 이명근을 설득시켜 관포군 40여명과 군자금 천냥을 받아 의병활동자금을 마련. 불영사를 근거지로 영양․ 청송군, 포항 청하 등지에서 의병활동 했다.


고당선생은 1938년 6월 23일 순국했으며, 1990년 정부로부터 고인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군은 지난 3월 애국지사 주진수선생의 기념비 제막에 이어 전배근 선생의 기념비를 세우는 등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한 민족지도자의 희생정신을 널리 알리는데 앞장 서고 있다.


愛國志士 高堂 田培根先生 功績碑(애국지사 고당 전배근선생 공적비) 

담양田氏(전씨)는 고려 의종 때 좌복야 충원군 得時(득시)공이 시조요 고려가 기울자 8대손인 강원도 안렴사 회정공 子壽(자수)는 평해에서 망국의 한을 달랬고 그 아드님 봉례공晋이 비로소 울진에 터전을 정하였다.

선생은 봉례공의 현손인 별시위공 承壽(승수)의 12대 冑孫으로 효행과 의리를 가통으로  이어왔다. 아버지 常濡(상유)와 어머니 영양南氏의 장남으로 1878년 6월 2일 蔚珍 봉평리에서 출생하시고 이름은 培根(배근)이요 字는 聖三(성삼)이며 號는 高堂(고당)이시니  어려서부터 의지가 바위같이 굳고 도랑이 넓었다. 

나라가 기울어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에 격분하여 그해 12월 청송 李夏鉉(이하현)과 흥부 장터에서 의병을 일으키자고 결의하고 1906년 李康䄵(이강년)의병장의 지시로 울진에 온 金顯奎와 200여 義兵으로 부대를 편성 불영사를 근거지로  훈련하던 중 金顯奎(김현규)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자 先生은 중론에 따라 부대를 통솔 申乭石陣召募將(신돌석진대모장)이 되어 영양․청송․청하 등지에서 日本軍 10여명을 死傷(사상)하는 전공을 세웠으며 어선으로 가장한 일본군이 죽변에 상륙하자 정병을 인솔하여  패퇴시키기도 하였다. 

1907년 군대 강제해산 발표에 반대하여 선생은 8월 14일 의병 2백여명을 인솔하여 평해를 점령하고 8월 26일 평해郡守(군수) 李命根(이명근)을 설득 官砲軍(관포군) 40명과 軍資金(군자금) 천냥을 받아 군민을 위무하였다 10월말 成益鉉(성익현) 鄭敬泰(정경태) 卞學基(변학기) 등 각 의병진과 연합하여 삼척읍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면서 五十川 陵村(오십천 릉촌)에서 3일간 전투 끝에 선생은 부상을 입고 1908년 7월 울진 西面 전투에서 수적 열세로 어려움을 격기도 하였다. 

1910년 나라를 빼앗긴 후 애국동지들과 연대하여 광복정신을 함양했고 군자금을 모금, 상해임시정부에 밀송하는 등 줄곧 抗日(항일)로 일관하시었다. 고을에서는 사람들 간의 다툼이나 어려움이 있을 때 선생이 나아가 명쾌하게 해결하고 가르치니 모두 그 덕망을 흠모하였다. 
 
선생은 국권 회복의 좌절로 인한 심적 부담과 전투 중 상처의 악화로 1938년 6월 23일 殉國(순국)하시니 향년 61세였다. 선생의 애국충절을 높이 기리어 정부에서 1990년 건국훈장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선생은 평소 자녀들에게 노인을 공경하고 가정을 화목하게 다스릴 것과 목표를 세워 매사에 임하라고 하시었다. 자녀 교육이 남달랐던 부인 영양 南容玉(남용옥) 여사는 1878년에 출생하시어 1947년에 돌아가시니 묘소는 봉평 당골에 선생과 쌍봉이요 李康勳(이강훈) 광복회장이 짓고 權昌倫(권창윤)서예가의 글씨로 후손들이 묘소를 단장하고 비를 세웠다.
 
자녀는 4남 1녀로 炯奎, 炯斗, 炯七, 炯雄, 朱秉琡 이요 長孫은 永熙이다.
선생의 높으신 뜻을 기리고자 공적비건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나에게 글을 요청하니 당시 정황을 살펴서 위와 같이 기술하였고 長曾孫 世重시인이 헌시를 지으니 이를 銘(명)에 갈음하는 바이다.

 

2006. 9 . 15.
大韓民國 光復會長   尹 慶 彬  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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