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잠(養蠶), 사양산업에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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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잠(養蠶)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우리 민족과 고락을 함께 해온 전통산업이다.
약 3천 년 전에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지는 양잠은 삼한과 고려시대를 거치는 동안 국가에서 장려시켰던 산업이다.
조선조 태종 11년에는 「후비친잠법(后妃親蠶法)」을 제정해 왕후로 하여금 궁중 안에서 직접 누에를 치게 하였고, 세조 1년에는 「종상법(種桑法)」을 제정해 농가마다 뽕나무를 심게 하고 뽕나무를 죽인 농가는 벌을 주기까지 했다.
누에를 치는데 필요한 양잠 기술 서적의 편찬 또한 활발했다.
세종 때는 언문으로 된 양잠서(養蠶書)가 있었다고 전하고, 중종(中宗)때는 김안국(金安國)이 『잠서언해(蠶書諺解)』를 간행했고, 고종(高宗)때는 『농상집요(蠶桑輯要)』와 『잠상촬요(蠶桑撮要)』등의 서적을 펴냈다.
지난 60~70년대에는 효자 수출산업으로 국가경제의 일익을 담당하면서 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농가의 궁핍한 살림에 큰 보탬이 되었다.
정부에서는 각 농가들마다 누에를 칠 것을 권장했고, 지역마다 잠업증산 교육이 실시되었다.
양잠 농가에서는 시장에서 보다 높은 품질 등급을 받기 위해 잠사에서 사용되는 좋은 짚을 고르는 일부터, 뽕밭 관리, 뽕잎 주기, 잠실의 온·습도 관리에까지 온 정성을 쏟았다.
아이들은 뽕잎 따는 어른들을 돕겠다며 뽕밭에 따라가서는 까맣게 익은 오디를 따먹고 입주위부터 손바닥까지 까만 물이 들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장날, 시장 한쪽에 차양막을 친 누에 공판장은 누에고치를 팔러 나온 농민들로 왁자지껄 종일토록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그렇게 번성하던 양잠산업은 70년대 후반부터 경쟁력을 잃고 한때 사양 산업으로 존폐의 기로에 서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십여년이 지난 지금, 누에는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누에를 이용한 새로운 바이오 제품과 한약재, 신약(新藥), 각종 차(茶)가 생산되고 있고, 명주실로서도 품질력 향상과 디자인 혁신을 통해 부가가치가 뛰어난 상품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사진소장 : 죽변면 손은주)
/ 이명동기자(uljinnews@empa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