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일구는 젊은이들 '이명창'

제가 직접 농사지었다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할 겁니다
기사입력 2006.11.06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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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걷이가 한창입니다. 말 그대로 오곡백과(五穀百果)가 맑은 가을 햇살에 제 몸을 비비며 여물어 갑니다.

상쾌한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는 황금들판이 추수를 맞이한 농부들의 바지런한 움직임으로 쉴 틈이 없습니다. 한 여름의 찌는 듯한 무더위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가을의 결실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논밭에서 일 년 내내 땀과 정성을 더했던 곡식들을 추수하는 촌로(村老)의 그을린 얼굴과 깊게 패인 주름살 속에서 드러나는 환한 웃음이, 카메라 렌즈 속에 잡힌 당신들의 모습이 때론 가슴 무겁게 다가옴을 느낍니다.

당신들이 힘겹게 맞서 살아온 현실의 삶 무게에 비할 바가 아니나, 그들의 삶을 닮아가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우리네 부모님들이 고향과 가정을 지키고 가꿔왔듯이 그들도 역시 고향을 일구고 가꾸며 꿈과 희망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이번호의 주인공인 평해읍 직산리에 거주하는 이명창(76년생)씨는 농사경력은 이제 갓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한 단계에 불과하지만, 마음가짐과 부지런한 자세는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운을 뗍니다. 굳은살이 자리 잡기 시작한 손과 햇볕에 탄 모습에서 농사꾼이 되어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약속을 여러 번 잡았지만 번번이 일을 늦게 마쳐 미루다 20일 저녁 다행히(?) 비가 내려 평해읍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어둠이 깔려 어둑어둑해진 시간에도 그날 수확한 나락을 말리기 위해 건조장에서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인터뷰에는 첫 호의 주인공이었던 나성훈(평해읍, 34세)씨가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농사를 짓게 된 계기는...
평해읍이 고향입니다. 평해중학교와 서울기계공고를 졸업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에 가기 전 2년 동안 기계·선박분야에서 회사 생활을 했습니다. 군 복무를 마치고 경기도 안양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가까운 사람 3명과 함께 구로공단에서 택배 영업을 같이 했습니다. 시작 후 1년 정도는 수입이 괜찮았지만 철이 없어서 그런지 씀씀이가 체계적이지 못해 번만큼 어디에 써버리고 없더군요. 그러다가 어떤 일을 계기로 2년 후에 세 사람이 갈라져 제 갈 길로 갔습니다. 

부채도 얼마 남게 되었고요. 한 1년 정도는 서울에서 방황을 했었습니다. 서울생활이 지겹기도 하고, (방황하는)제 자신이 한심스럽고 부끄럽고 그러더군요. 그러던 차에 아버지와 형님이 올라와서 저를 많이 토닥여 주셨지요. 그때가 불과 2년 전이었습니다. 고향에 내려와 다시 시작하면서 이제는 샛길로 빠지지 않고 제 꿈을 위해 앞으로 열심히 나아가려고 합니다. 부모님을 생각하면 고맙고 미안하고, 당신들을 편안하게 모셔야 되겠다는 마음을 하루에도 몇 번 씩 다짐하곤 합니다. 



하루 일과는...  
요즈음 한창 추수철이라 해 뜨기 전에 일어나 일 할 준비를 시작하면 저녁 별 보고 집에 들어갑니다. 부모님 세대에 비하면 엄청나게 편하죠. 그래도 봄에 비하면 요즘은 잠 좀 자는 편입니다(웃음). 
하루 평균 25~30마지기 정도 벼 베기를 합니다. (16일 오전 사진을 찍기 위해 평해읍 월송리 들에서 명창씨의 작업을 지켜보았을 때, 2마지기를 추수하는데 불과 20여 분만에 마무리했다.)

지난 9월 19일부터 영양군에서 보름정도 320마지기 정도 벼 베기를 했습니다(옆에 있던 나성훈씨가 외화획득(?)이라고 우스갯소리로 분위기를 돋운다). 영양군에서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은 작년에 많은 논의 벼가 누워 있었습니다. 아저씨 한 분이 영양에서 직접 작업을 할 수 있는 기계(콤바인)를 구하러 여기까지 왔었습니다. 우연찮게 연이 닿아 10일 동안 누워 있는 벼를 정성들여 추수를 도와 드렸더니, 올해도 고맙다고 다시 저를 찾아주셨고요, 내년에도 약속을 받았습니다. 더 많은 논에서 작업을 하려고 해도 개골 논이어서 기계가 진입할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저는 추수 작업을 영업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콤바인 작업 시, 스스로 많은 정성과 주의를 기울이려고 노력합니다. 누운 벼를 베면서 되도록 빠트리지 않고 다 벨 수 있도록, 이 논이 내가 직접 농사지은 논이라 생각하고 작업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논 주인도 만족하시고요. 나이 지긋하신 분들에 대한 봉사라 여기고 제가 한 번 더 허리를 굽혀 일을 하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그 덕택인지 영양에서 일하는 내내 시골 어른들의 넉넉한 정과 인심을 많이 얻고 배웠습니다. 올해는 이래저래 시월말까지 900마지기 정도를 작업할 예정으로 있습니다. 

보람과 힘든 점이 있다면...
가장 큰 보람이자 행복이라고 한다면 부모님과 함께 제 가족들과 같이 생활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일을 도와가면서 돈을 벌고 가정도 꾸려가는 것이 좋습니다. 효도하면서 일 할 수 있으니까요. 제 성격이 한 번 시작한 일에 대해서는 끝을 보려고 하다 보니 몸이 다소 고단하지만, 그만큼 하루를 열심히 생활했다는 반증이 아니겠습니까? 고향에 내려와 본격적으로 농사일을 배우면서 몸은 다소 피곤해도 심적으로는 편안합니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이상일, 66세)의 도움이 많았습니다. 

반면에 힘든 점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이지만, 산부인과와 소아과 하나라도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의료 등 복지혜택이 가장 아쉽죠. 집사람한테 못 챙겨주는 것이 미안하고 안쓰럽고 그렇습니다. 농사일에 대해 특별히 힘든 점은 없습니다. 일할 때가 제일 즐겁고 좋습니다. 아버지 세대가 주로 인력에 의존해 농사를 지었다면, 제가 시작한 지는 얼마되지 않았지만 기계화를 50% 정도 진행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혼자 능히 작업할 수 있도록 기계화를 이루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농사와 농부라는 직업에 대한 생각은...
자부심을 느낍니다. 1차 산업이 죽으면 나라 자체가 기반을 잃어버리는 것 아닌가요? 농산물에 대해 수입에 크게 의존하게 되면 나라가 결국 힘을 잃을 수밖에 없잖아요. 

다시 농촌을 살리기 위해서는 지금의 몇 배의 비용이 소모될 테고요. 결국 식량자원이 무기화가 되는 것 아닙니까? 저도 농업에서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일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어떤 책에서 봤던‘농업은 생명공학이다’라는 구절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네에서 반장을 하고 있다 보니까, 동네 어른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시간도 짬짬이 내야 하고요. 고향에서 지낸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여러 가지로 보람을 많이 느낍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10년 안에 울진에서 최고로 농사를 많이 짓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앙기와 콤바인 등 기계를 이용한 영업 활동을 더 활발히 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3~4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고요. 열심히 떳떳이 할 것을 다짐도 하고 노력할 것입니다. 시간 날 때마다 이웃의 일손을 도우러 다녀야 하고요. 여유가 있을 때 노는 것 보다 손 하나라도 더하는 것이 상부상조(相扶相助)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아직 아버지 그늘 밑에서 자라고 있지만, 부모님의 여생이 조금이라도 편안해질 수 있도록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야 되겠지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농·어민 후계자(창업영농후계인)들은 해당 관련 자금을 저리(低利) 이자로 사용하고 있지만, 안타까운 것은 작목반과 후계자들이 뭔가를 시작하고, 새로이 농업을 통해 정착을 하려는 사람들은 전액 융자를 신청해야 되는 것이 현 상황입니다. 그 이자를 갚아 나가는 것도 벅찰 때가 많고요. 이런 사람들이 농업에 전념할 수 있는 장치가 철저한 검증을 통해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또 군 보조사업의 신청에 있어서도 저와 같은 젊은이들이 열의는 가득하지만, 해당사업에 대한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앞으로 우리 군의 농업을 이끌어 갈 진정으로 농사를 짓는 젊은이들을 키울 수 있는 사업과 투자와 지원이 절실합니다. 우리 군의 농사짓는 연로하신 어른들을 고려해 볼 때 10년 뒤 누가 농업을 이어가겠습니까? 그리고 군 지원 사업 중 농기계에 대해 소규모의 지원만 이뤄지고 있습니다. 트랙터나 콤바인 등 고가의 장비는 일 년 부지런히 벌었다고 하더라도 기계 값 갚기에도 벅찰 때가 있습니다. 직접 농사짓는 사람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정책이 진행되고 고민됐으면 좋겠습니다.   

농사일은 하늘의 도움이 절대적입니다. 지난 7월의 긴 장마의 악영향으로 작년에 비해 소출량이 대체로 줄어든 상황이라고 들에서 만난 농부들은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농부들의 정성과 땀이 줄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흘린 땀의 무게만큼이나 그들에게 수입이 늘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평생을 벗 삼아 지내온 논과 밭에서 오늘도 내년의 농사를 위해 종자를 파종하고 거름을 준비합니다. 우리가 쉽고 가벼이 여기는 것들 뒤에는 누군가의 갖은 정성이 있었을 것입니다. 풍요로워지는 만큼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 김석칠기자(ksch014@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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