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만들기의 즐거움
-
어릴 적부터 음식 만드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제 유년의 기억 속에는 온통 어머니의 음식 냄새와 음식을 만드시던 정지간 풍경으로 가득합니다. 틈만 나면 부엌에서 맴돌며 어머니께서 만드시는 음식을 미리 손가락으로 꾹꾹 찍어 맛을 보거나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신기하게 쳐다보며 자랐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게다가 그때나 지금이나 맛있게 만드는 것도 그랬지만 맛난 음식들을 보기 좋게 담아 그럴싸하게 상차림 하는 것을 보는 일은 놓칠 수 없는 흥미로움이기도 했습니다.
일전에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지휘자 정명훈씨가 펴낸 화제의 요리책을 사 본 적이 있습니다. 요리책을 펴낸 당사자도 그런 말을 했지만 음악을 하는 사람이 요리를 즐겨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음식 만들기는 심취하여 정성과 시간을 쏟아야 하는 품목입니다. 그러니 음악을 하는 지휘자가 요리책을 펴냈다 해서 이상할 것이 하나 없었습니다. 오히려 다른 누구의 전문 요리책보다 훨씬 요리 방법이 소상하고 조리품목도 다양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음식 맛을 낸다는 것은 몹시 까다롭습니다.
말하자면 만드는 사람의 감정 상태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 것이지요.
조금만 귀찮아 하거나 소홀히 만들어 버리면 금방 표가 나고 마는 것이 바로 음식이란 생각을 해보면 또한 예술의 범위가 바로 그러하지 않겠는지요.
어릴 적 제 친정어머니를 생각하여도 그렇습니다. 없는 것이 더 많은 살림살이였고 늘 하시는 일이 산더미 같던 어머니의 손은 거칠어 갈퀴 같아도 음식을 만드시는 손길은 여름철 꽃밭을 넘나드는 나비처럼 날렵하고 고왔던 기억이 납니다. 칼질도 그렇고 나물 하나를 무치실 때도 손놀림이 어찌나 지극 정성이셨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사무치도록 눈물이 납니다.
수제비를 반죽하시거나 칼국수를 만들고 만두를 빚으시던 어머니의 손은 숙수간의 요리사 못지않게 재빠르고 빼어나셨습니다. 그러했으니 어머니의 만두나 칼국수는 우리 식구들 뿐 아니라 뭇 사람들의 입맛을 달콤하게 만드시고도 남으셨겠지요.
늘 작은 것에도 소홀하지 않으셨던 친정어머니의 손길은 음식을 담는 멋도 꽤나 부리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벅차도록 바쁘신 틈에도 잠자리에 드는 시간 아니면 앉아 쉬는 법 없이 어머니의 손에서는 무엇이건 만들어졌고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한지에 들기름을 먹인 다음 고운 볕에 말려두는 일이었습니다. 잘 말려진 한지를 그때그때 알맞게 자르신 다음 낡은 대나무 소쿠리나 놋 그릇 위에 반듯하게 펴놓고 손수 빚어 찐 만두나 떡들을 담아주시면 세상 어떤 것보다 맛있고 즐거웠습니다. 뿐 인가요. 비가 장대같이 퍼붓는 장마철이면 또 어김없이 아궁이 앞에 괴어둔 돌 위에 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부침개를 부치셨지요. 호박꼭지에 기름을 슬쩍 묻혀 문지른 다음 이것저것 집에 나도는 야채들을 넣은 부침재료를 얹어 치지직 타들어가듯 부치시면 우리 형제들은 강아지처럼 꼬리 흔들며 옹기종기 둘러앉았었지요.
겨우내 장독간 항아리 안에 얼려 두고 먹던 차가운 홍시조차도 옹기 뚜껑에 담아내실 때면 솔잎을 밑에 깔아 멋을 부리셨고 수제비나 떡국을 담아 주시던 놋그릇은 어머니의 귀족 같은 멋을 내품한 것이었다고 미루어 짐작해보기도 합니다.
매일 아침 설거지 때면 장독간에 앉으셔서 깨진 기와 장 부스러기로 닦으시던 놋그릇들은 귀찮으실 법도 했건만 하루도 쉬지 않으시고 그 작업만은 병석에 누우실 때까지 계속되었지요. 그러고 보면 그때 어머니의 부엌은 단순히 식구들의 양식을 지어내던 장소만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열여덟 어린 나이에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와서 많은 식구들을 건사하며 살아가는 일이 어찌 쉽기만 했을 지요. 어쩌면 어머니의 눈물과 한숨으로 부뚜막이나 놋그릇들이 반질반질 잘 닦여져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 제 부엌도 어머니의 그 정지간 같을 때가 있기도 한 것을요.
그러하니 제가 즐겨하는 음식 만들기도 그러한 어머니의 내력으로부터 이어져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하루 종일 가게에 있다가 집으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앞치마를 두르고 싱크대 앞에 서는 일부터 합니다.
제 음식의 기본이 되는 멸치야채 국물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확인하고 쓰다 남은 야채들을 더 넣어서 뭉근히 끓여야 하는 일은 매 끼니 때 마다 해야 할 일이며 식구들이 좋아하는 음식, 혹은 건강에 좋은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 그다지 좋지 않은 머리라도 쓰는 일은 제가 누리는 즐거움의 일부가 된지 오래입니다.
물론 그 옛날 어머니께서 식구들을 위해 애쓰시던 수고로움에야 비할 바 아니지만요.
게다가 제가 만드는 음식들은 어디에 내놓을만한 특별한 요리라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그 때 그 때 제 철에 나오는 야채들을 이용해서 향신료라고 불리는 것들은 잘 쓰지 않고 마늘조차도 되도록 덜 넣는 재료가 가진 향이나 맛만을 최대한 살려 담백한 맛이 나도록 하는 것이 저만의 음식 만들기 방법이라고 방법이긴 합니다.
누구나 제 입맛이나 가족들의 입맛을 중시하고 그에 맞게 음식을 만드는 것이 그 집안 음식을 만드는 수장의 특권이 아닐 런지요.
근간에 들어서는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이기도 하고 번거로움이 크다 해서 집에서 만들기보다 나가서 사먹거나 반 조리된 음식물들을 대형슈퍼에서 사와서 먹는 집들이 많다고들 하더군요. 그것이 오히려 경제적이라는 말을 하면서요. 글쎄요, 살아가기 위해 먹는 음식이란 것이 꼭 경제적인 덕목만으로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있을 런지요.
가족이라는 의미가 경제적인 가치로만 가늠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너무들 쉽게 편하게만 살기위해 오히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시간들을 턱걸이하듯 안간힘쓰며 살고들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