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신화리에 모인 5인

기사입력 2010.07.05 17:10  
댓글 0
  • 카카오톡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한시 연회가 열렸던 방을 안내하는 장형구씨

 

이 한시(漢詩)들은 1950년대 울진군 북면 신화리(새마) 690번지에 살던 사애 장영철(四愛 張永喆, 1895-1978)의 사랑방에 당시 시문에 능했던 이상용 울진군수(1955. 8. 9~1956. 3. 31 재임)가 방문하여 지역에서 글하는 선비들과 조촐한 연회를 하며 운(韻)자를 띄워 그 운자에 맞추어 시를 지은 것이다.  

 

참여했던 사람은 이상용 군수(李相鏞 郡守), 백하 전학풍(白下 田鶴豊), 사애 장영철(四愛 張永喆), 매당 장림(梅堂 張霖, 1898-1973), 남용극(南容克) 5인이다.  

 

백하 전학풍은 북면 신화리 화동(花洞) 사람으로 학문이 깊었던 것으로 전해지며, 당일 모인 사람 중에 제일 연장이었고, 사애 장영철은 울진향교 전교를 지낸 장형구씨의 조부다.   

 

매당 장림은 전 울진군의회 의장을 지낸 장덕중씨의 조부이고, 남용극은 울진향교 전교를 지낸 행곡 구미마을 남호열의 5촌 당숙이 되는 사람인데, 당시 등기소에 근무했다고 한다.  

 

이들 5명이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시흥을 즐기는데 초저녁에 한 수를 짓고, 다음날 한 수를 지어 모두 10수가 완성되는데, 7언 율시이며 5개의 운자가 제시된 것을 알 수 있다.   

 

그 당시에 백하 전학풍이 운자를 한 번 내고, 이상용 군수가 운자를 한 번 낸 것이라고 하는데, 초저녁의 운자는 래(來), 개(開), 대(坮), 배(盃), 재(才)이며, 다음날의 운자는 등(燈), 능(能), 승(僧), 흥(興), 층(層)이다.  

 

운자는 1구, 2구, 4구, 6구, 8구의 마지막 자이며, 5명의 선비들이 운자를 맞추며 좋은 시를 지으려고 애쓰던 모습이 보이는 듯 듯하다.   

 

극도로 절제된 언어로, 더구나 운자를 이용하여 시를 짓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지만, 재치와 해학, 인생과 자연에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글이다.  

 

공자는 “詩三百에 一言之蔽之하면 曰思無邪니라.” 했다. 즉 시를 한 마디로 말하면 사악함이 없다는 뜻이다.  

 

한 편의 시를 통해서 그 사람의 전부를 알 수 있었던 시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평한 부분도 없지 않다. 운율을 가진 몇 개의 언어로 자연과 인생을 노래한 것이다.   

 

공사다망한 중에 울진읍내에서 수행원도 없이 굽이굽이 30리 길을 걸어 불쑥 시문을 즐겼던 당시의 울진군수.   

 

노는 것도 격조가 있어야 하는가? 그래도 새마 그윽한 곳에서 밤을 새며 청아한 풍류를 즐긴 그들이 돋보이는 요즘이다.  

(5인이 지은 한시의 친필 자료를 제공해준 장형구씨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드린다)

 

白下 田鶴豊(백하 전학풍)

其來云昔始今來 - 옛날에 오신다더니 지금에야 오셨는가
尊旆何從路線開 - 군수님 행차는 어느 길로 찾아왔소
款話不能投轄井 - 정답게 놀았지만 투할정하지 못하였으니
虛名儂得釣龍坮 - 나야 허명으로 조룡대 이름만 얻었나 봅니다.
莫辭佳句詩千軸 - 천축이나 되는 시를 짓는 그대의 좋은 글귀를 감추지 마시오
豈盡情懷酒一盃 - 어찌 우리 정회를 한 잔 술로 다하리오
太守文翁儒化大 - 태수가 글 좋아하니 유풍이 일어나
如斯村塾試凡才 - 우리 같은 촌로에게도 시를 시험하는구려

*投轄井(투할정) : 친구와 더 많이 있고 싶어 수레를 웅덩이에 밀어 빠지게 했다는 고사.
*釣龍坮(조룡대) :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이 백마의 머리를 미끼로 강물 속에서 백제 무왕(武王:선왕)의 화신인 청룡을 낚아 올림으로써 용의 조화를 막고 풍랑을 멎게 하였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로 실제 가보면 작은 바위로 미미한 모양을 빗댐.
*千軸(천축) : 천개나 되는 두루마리 종이.

 

白下 田鶴豊(백하 전학풍)

 

李相鏞 郡守(이상용 군수)

溪山十里尋眞來-계산십리로 참된 경치 찾아오자니    
苔逕逶迤排岸開-오솔길 꼬불꼬불 선경이 펼쳐있네
泉石爲誰藏別界-천석은 누굴 위해 이 별세계를 감추었던고
煙霞從古管靈臺-연하(붉은 노을)는 예부터 영대를 감싸고 있네
浮生自有離猶合-부생(뜬구름 인생)은 자연스레 이합(헤어지고 만남)이 있게 마련
雅會何妨詠且盃-이 좋은 모임에서 시 짓고 술 마심에 무슨 거리낌 있으리
於我仙緣雖不薄-나로 말하자면 좋은 인연이 작지 않으나
高筵還愧拙詩才-이 성대한 잔치에 시재(시를 짓는 재주)가 졸한 것이 부끄러울 뿐이네
*심진은 尋牛의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李相鏞 郡守(이상용 군수)

 

四愛 張永喆(사애 장영철)

聞道侯車乘暮來-듣자니 군수님 행차가 어둘 녘에 오셨다고
家僮爲報竹扉開-아이들이 일러주니 대나무 사립문을 열었네
起問早梅含雪態-나가 보니 매화는 백설의 자태
少遊新月上山坮-초승달이 동산위에 떠올랐네
賓有高筵詩滿軸-손님에게 고아한 자리 여니 시 또한 만축이나
肴無具椀酒嫌盃-안주가 변변치 못하여 술잔 올리기 꺼려지네
識荊心願伊今遂-만나기를 원했으나 지금에야 이루어
湖古論談愧不才-옛 것을 논하고자 하여도 재주가 없어 부끄럽네

 

四愛 張永喆(사애 장영철)

 

梅堂 張霖(매당 장림)

五馬長程伴暮來-긴 여정에 저물녘에나 오셨는데
坐爲承接愧先開-앉아서 영접하려니 부끄러움이 앞서네
洞門如洗香生榻-마을 입구는 씻은 듯 자리에는 향기가 돋고
草樹鮮明月共坮-초목은 신선하여 달 함께 대에 올랐네
稀世論情詩出性-세상에 드문 정담에 시 솜씨는 타고 난 것이요
終宵高致酒餘杯-밤을 새운 높은 풍치 잔에는 술이 넘치네
一觴一詠今如許-술 한 잔 시 한 수 오늘 같은 밤이오니
父母深恩恨不才-부모님 은혜는 높지만 재주 없는 것이 한이네

*원문에 杯로 되어있는데 운자로 제시된 盃자와 같은 것이다.

 

梅堂 張霖(매당 장림)

 

南容克(남용극)

屐逍遙踐約來-지팡이에 평상차림으로 풍류 따라 오셨으니
把白拭靑瓊筵開-백발머리 푸른 얼굴 잔치자리 열렸구나
幽禽慣面投深樹-날짐승은 익숙하게 깊은 숲을 찾아가고
蒼鹿知情臥石坮-푸른 사슴은 정답게 돌 위에 누웠네
入戶鳥媒林下路-집을 찾는 새들은 숲속으로 찾아 들고
憑欗魚戱月中盃-난간에 기대어 보니 고기는 뛰고 달은 술잔에 빠졌네
薄書暇日誠非偶-공무에 틈을 낸 것이 참으로 고마운데
此夜孤吟愧我才-오늘 밤 시를 읊는 나의 솜씨 부끄럽네

 

南容克(남용극)

 

白下 田鶴豊(백하 전학풍)

挑盡通宵欲灺燈-심지가 다 타도록 밤을 새우고 또 등불을 밝히려 하는데
於觴於詠難能-술 마시기도 시 짓기도 모두가 어렵구려
江山縱有依然古-강산은 아직도 옛 모습 그대로인데
冠髮何殊太半僧-머리와 갓은 어찌 달라져 태반이 스님이로세
幾處雄詩樓已碎-웅건한 시풍 감돌던 누대 부서진 곳 몇이던가
玆鄕儒化蜀將興-우리 고을 유교문풍 촉도리처럼 일어날지나
衰形不敢探螭力-늙은 몸이라 감히 이무기 잡을 힘도 없어서
頹臥騷壇落下層-시단에서 한 층 떨어진 퇴물이 되었다오

*通宵(통소) : 밤을 새움. 철야(徹夜).
*騷壇(소단) : 운치(韻致)가 있고 아담(雅淡ㆍ雅澹)한 문필가들의 사회를 일컫는 말.
*樓已碎(누이쇄) : 이택백이 시제가 다하였으니 황학루를 부셔야 한다는 고사(시제가 바닥이 났다는 뜻).
*蜀將興(촉장흥) : 제갈량이 유비를 도와 촉에다 한을 세우듯, 군수가 시를 좋아하니 문풍이 일어날 것.

 

白下 田鶴豊(백하 전학풍)

 

李相鏞 郡守(이상용 군수)

爲賀淸儀明似燈-주인의 모습은 밝은 등불 같아 하심인데
愧吾半世一無能-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니 부끄럽기만 합니다.
憑橌聽水忘機客-난간에 기대 앉아 물소리 듣고 있으니 공부를 잊은 나그네요
柱笏看山悟道僧-홀을 세우고 산을 바라보니 득도한 스님이로세
所謂綱常隨處變-우리가 말하는 강상이란 것이 도처에서 변하여가니
惟希稼穡使民興-오직 농사 열심히 하여 잘살기를 희망하네
林泉經濟於斯足-산촌에서 이정도 사는 것도 충분하다 하겠거늘
况又書樓高百層-하물며 서가에는 책이 백층이나 쌓여있네

*稼穡(가색) : 쌀이나 보리, 밀 따위의 주식이 되는 곡물에 의거하여 경영하는 농업.
*홀(笏) : 벼슬아치들이 메모하는 판.

 

李相鏞 郡守(이상용 군수)

 

四愛 張永喆(사애 장영철)

裁詩欲又更挑燈-시를 지으려고 다시 등잔불을 돋우지만
拙句堪燐尙未能-나의 시가 아직도 능숙하지 못함이 가련하네
看書如學洛經士-책을 보고 있으면 공부하는 선비 같고
含黙還疑掛錫僧-입을 다무니 득도한 스님인가 의심하네
鷄聲到枕眠先悟-닭 우는 소리 베개머리에 들려오면 잠이 먼저 깨이고
月色斜窓臥復興-달빛이 창에 비추면 누웠다 다시 일어나네
永夕玆遊誰力謂-밤을 지새운 오늘 이 자리는 누구의 힘이겠소
賢候瓊話仰千層-훌륭하신 군수님 말씀 높다랗게 보입니다.

*괘석(掛錫) : 석장(錫杖)을 걸어 둔다는 뜻으로, 수행하는 중이 절에서 대중과 함께 지냄을 이르는 말.지승이 잡고 있는 지휘봉.

 

四愛 張永喆(사애 장영철)

 

梅堂 張霖(매당 장림)

軸收肴案又挑燈-시 짓다가 술 마시다가 다시 등잔을 돋우니
下箸甘香主供能-훌륭한 술과 안주는 주인의 솜씨가 능함이요
達爵無分詩許友-군수님 지체를 가리지 않고 시우로 허하셨으니
公私極樂座皆僧-공사 간에 두루 극락이요 좌중이 모두 스님이네
殷勤此席輿情訴-이 자리에서도 은근히 민심을 살피시고
勸課當年百廢興-농사를 권장하고 백폐를 없애려 하네
外似農工平坦樣-겉보기에 농과 공이 평탄한 모양 같지만
箇中優劣自生層-그 중에도 우열은 저절로 층이 생긴다네

 

梅堂 張霖(매당 장림)

 

南容克(남용극)

一境玲瓏不夜燈-한마을이 영롱한 불빛으로 불야성이 되었는데
縱無絲管有詩能-관현의 연주가 없어도 시는 지을 수가 있었다네
浮緣寄世誰非客-뜬구름 같은 이 세상 인연에 나그네 아닌 자 누구며
禪語驚筵我亦僧-선문답으로 자리를 놀라게 하니 나또한 스님일세
休道世情混玉石-인정의 옥석을 혼돈하여 말하지 마오
何關時事係亡興-시국의 흥망에는 아무 관심도 없다오
簡招珍重主公意-조촐하게 초대한 주인의 진중한 뜻에 따라
膏抹我從盤谷層-나 또한 반곡의 모임에 쫓아올 수 있었다오

*盤谷(반곡) : 중국의 지명으로 이원이 숨어살던 곳. 한유가 지은 ‘이원을 보내며’라는 시가 전한다.

 

南容克(남용극)

[역주. 신상구 편집인 기자 uljin@uljinnews.com]
<저작권자ⓒ빠른뉴스! 울진뉴스 & www.ulji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울진뉴스/월간울진(http://uljinnews.com |   창간일 : 2006년 5월 2일   |   발행인 / 대표 : 김흥탁    |   편집인 : 윤은미 
  • 사업자등록번호 : 507-03-88911   |   36325. 경북 울진군 울진읍 말루길 1 (1층)   |  등록번호 : 경북, 아00138    |   등록일 : 2010년 7월 20일                         
  • 대표전화 : (054)781-6776 [오전 9시~오후 6시 / 토, 일, 공휴일 제외(12시~1시 점심)]   |  전자우편  uljin@uljinnews.com / ytn054@naver.com
  • Copyright © 2006-2017 uljinnews.com all right reserved.
빠른뉴스! 울진뉴스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