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田父)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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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집에 보면‘답전부(答田父)’라는 글이 있다.
정도전이 전라도 회진현(오늘날 화순) 거평부곡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어느 날 논에 엎드려 일하고 있던 늙고 남루한 차림의 농부와 나눈 대화를 기록한 글인데, 어찌나 구체적이고 통렬한 현실 비판이 담겨져 있는지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기까지 한다.
“그대는 어떤 사람인가. 그대의 의복이 비록 헤지기는 하였으나 옷자락이 길고 소매가 넓으며 행동거지가 의젓한 것을 보니 혹 선비가 아닌가. 또 수족이 갈라지지 아니하고 뺨이 통통하고 배가 나온 것을 보니 조정의 벼슬아치가 아닌가. 무슨 일로 여기에 왔는가? 나는 노인으로 여기서 나서 여기에서 늙었기 때문에 거친 들과 장기(瘴氣)가 가득 찬 궁벽한 시골에서 도깨비와 더불어 살고 물고기와 더불어 사는 처지가 되었지만, 조정의 벼슬아치라면 죄를 짓고 추방된 사람이 아니면 여기에 오지 않는데 그대는 죄를 지은 사람인가”하고 물었다.
나는 답하기를“그러합니다”하니, 그가 다시 물었다.
“무슨 죄로 이곳까지 귀양 왔는가. 입과 배(口腹)를 채우고 처자의 양육과 거마(車馬)나 궁실(宮室)의 일로 인하여 불의에 개의치 아니하고 한없이 욕심을 탐하다가 죄를 얻은 것인가. 아니면 벼슬길(仕進)의 뜻은 날카로웠으나 스스로 벼슬에 오를 능력이 없자 권세에 아부하고 수레바퀴(車塵馬足) 사이를 분주하게 뛰어 다니면서 겨우 술이나 얻어 마시고, 먹다 남은 고기 같은 것을 얻어 먹으려고 어깨를 움츠리고 아첨떨기 잘하여 구차스럽게 즐거운 척하였던가. 그리하여 겨우 한 자급(資級)을 얻게 되었으나 여러 사람의 노여움을 사게 되자 하루아침에 형세가 바뀌어 결국 이러한 죄를 얻어온 것인가.”나는“그런 게 아닙니다”하자, 그가 또 물었다.
“아니면 말투를 단정하게 하고 얼굴빛을 바르게(端言正色)하여 겉으로는 겸손한 체하나 헛된 이름을 도둑질하고 어두운 밤에는 분주하게 돌아다니면서 나는 새가 밤이면 사람에게 의지하는 태도를 지어 구차하게 애걸하였던가. 옳지 않게 결탁하고 횡(橫)으로 맺어 녹위(祿位)를 얻어서는 혹 관리의 직위에 있거나, 혹 언책(言責)의 중요한 자리에 올라도 녹(祿)만을 탐내고 그 직책을 돌보지 아니하였음인가. 그리하여 국가의 안위와 백성의 휴척(休戚)과 시정의 득실과 풍속의 미열에 뜻을 두지 않아 진(秦)나라 사람이 월(越)나라 사람의 살찌고 여원 것 보듯이 하며 자기 몸만 온전히 하고 처자를 보호하는 계책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어떤 충의지사(忠義之士)가 있어서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국가의 급한 일에 나아가 직분을 지키고 바른말을 하거나 곧은 도를 행하다가 화를 당하게 된 것을 보면 안으로는 그 이름을 꺼려하고 밖으로는 그 낭패당한 것을 다행으로 여겨 비방하고 비웃으며 스스로 계책을 얻으려다 여론이 떠들썩하고 천도(天道)가 분명하여 결국 그 저지른 죄가 발각되어 이곳에 이르렀는가.”
나는“그것도 아닙니다”라고 하자, 그는 또“아니라면, 장수가 되어 널리 당파를 일으켜 앞에서 몰고 뒤에서 옹위하며 아무 일이 없을 때는 크게 공갈을 쳐서 왕의 은총을 받아 관록과 상 받기를 바라며 오직 마음대로 하고자 하였던가. 자만심이 가득하고 기운이 성하여 선비들을 업신여기다가 적군을 만나게 되면 겉으로는 범(虎)처럼 행세해도 본질은 양(羊)이어서 겁을 잘 내기 마련이라, 한 번도 싸워보지 않고 적이 일으키는 먼지만 보고도 먼저 달아나 백성들의 목숨을 적의 칼날에 버려두고 국가의 대사를 그릇되게 했단 말인가. 아니면 높은 자리에 앉는 자가 되어 교활한 행동과 센 고집으로 남의 말을 주의하지 않으며 자기에게 아첨하는 자에게는 웃음을 보내고, 아부하는 자는 들어 쓰되 강직한 선비가 항변을 하면 성을 내고 바른 선비가 도를 굳게 지키면 배척하기에 힘썼던가. 임금이 내리시는 작록을 몰래 훔쳐 자신의 은혜로 여기게 하고 국가의 법을 희롱하여 사사로이 부리기도 하다가 악행이 지나쳐 화(禍)가 이르게 되어 이러한 죄를 얻었는가.”나는“그것도 아닙니다”고 하였다. 그러자 농부가 말했다.
“그러한가? 그렇다면 그대의 죄목을 나는 알겠도다. 그 힘의 부족한 것을 헤아리지 않고 큰소리를 좋아하고 그 시기의 불가함을 알지 못하고 바른말을 좋아하며 지금 세상에 나서 옛사람을 사모하고 아래에 처하여 위를 거스른 것이라면 이것이 어찌 죄를 얻은 원인이 아니리오. 옛날 가의(賈誼)가 큰소리치는 것을 좋아하고, 굴원(屈原)이 곧은 말하기를 좋아하고, 한유(韓愈)가 옛 것을 좋아하고, 관용방(關龍逄)이 윗사람의 잘못된 뜻에 거스르기를 좋아했다. 이 네 사람은 다 도(道)가 있는 선비였는데도 혹은 폄직(貶職)되고 혹은 죽어서 스스로 자기 몸을 보전하지 못하였거늘, 그대는 한 몸으로서 몇 가지 금기(禁忌)를 범하였는데 겨우 귀양만 보내고 목숨은 보전하게 하였으니 나 같은 촌사람이라도 국가의 은전이 너그러움을 알 수가 있도다. 그대는 지금부터라도 조심하면 화를 면하게 될 것이오”하였다.
이 글을 읽어 보면, 농부는 단순히 집권층 몇 사람의 비리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상하층 전반에 대한 전횡과 비리를 열거하면서 당시 사회의 부패상을 하나하나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다. 고려(高麗)가 망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경제, 즉 토지문제를 둘러싼 부패를 개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상황을 보면 전국적으로 세력가가 남의 토지를 폭력으로 빼앗는 현상이 극에 달하였고 지주는 소출의 태반 외에도 각종 명목으로 농민들을 수탈하였다.
이렇게 권문세족의 대토지 소유는 고려사회의 경제적 위기를 가중시킨 주된 요인이었다.
그리하여 부자는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져서 마침내는 스스로 살아갈 길이 없어서 농토를 버리고 직업이 없이 떠돌아다니거나 직업을 바꾸어 말업(末業)에 종사하기도 했으며 심한 경우에는 도적이 되기도 하였다. 물론 민란(民亂)이 자주 발생하였고 그로 인해 결국 나라가 망하기에 이른 것은 필연이었다.
토지제도의 문란은 백성들의 생활을 궁핍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나라의 재정이 고갈되는 지경에 이르러 결과적으로 왕조의 몰락으로 이어진 것이다.
최근 서울 강남의 아파트 값이 떨어지는 추세라면서 끝을 모르고 오르기만 하던 부동산 가격이 곧 안정세를 회복할 것이라는 장밋빛 기사들로 연일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우리 같은 서민들에게는 전혀 피부에 와 닿지도 않는데도 방송이나 신문에서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여기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말이다.
그러나 청년 실업률이 점점 늘어나고, 일자리 창출이 어렵다는 뉴스를 접하고는 또 다시 걱정이 밀려온다. 도대체 경기가 회복된다는 건지 아니면 더 나빠진다는 건지 한참을 생각하게 만드는 게 요즈음 뉴스이다.
오늘날 평범한 직장인이 수도권에 25.7평짜리 집 한 채를 사기 위해서는 자기 봉급으로는 평생을 모아도 살 수 없을 만큼 값이 올랐다고 하니 과연 이 세상이 제대로 된 세상인가. 부부의 연(緣)을 맺고 자식을 낳아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생활을 만들어 가야하는 근본이 되는 보금자리를 이루는 데 평생을 다 보내야 한다니 정말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세상이다. 예나 지금이나 부동산 문제는 나라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가장 민감한 부분임을 역사는 말하고 있다.
모름지기 백성을 위해 일하겠다는 정치하는 사람이나 국가의 녹(祿)을 받고 있는 공직자라면 정도전에게 뼈아픈 말로 세상을 풍자하던 그 농부의 말을 곱씹으며 곰곰이 생각해 볼 때이다. 지금 서민들이 바라는 것은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가 아니다. 그저 상식이 통하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인정받는 지극히 평범한 사회인 것이다.









